'공연 음란'이라더니 이젠 '청소년 유해'?···퀴어 축제 반대자의 바뀐 논리

고희진·조문희 기자

퀴어문화축제는 청소년에게 유해할까. 1일 열리는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개최 금지를 요구했던 이들은 ‘청소년 보호’를 이유로 내세웠다. ‘공연음란 행위’를 주요 반대 근거로 삼던 과거와 달라진 것이다. 법원은 “(퀴어 축제에서) 아동·청소년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가 이뤄질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이들의 신청을 기각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축제 반대자들의 주장이 청소년의 건강한 성정체성 형성을 막고 있다고 말한다.

■법원, “청소년에 해롭다 단정하기 어려워”

지난달 30일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김정운 부장판사)는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등 4개 단체와 고모씨 등 26명의 개인이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를 상대로 낸 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기독·보수단체 등은 퀴어문화축제가 유해환경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할 권리, 인격형성권, 건강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집회에 아동·청소년의 참가를 금지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집회에 참석하지 않을 자유가 있으므로 집회 개최가 채권자들의 권리에 어떠한 직접적인 침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채권자들이 제출한 자료만으로 집회에서 아동·청소년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가 이뤄질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집회의 의미, 성격, 참가 인원, 규모 등에 비춰볼 때 아동·청소년에 한해서 집회의 참가를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거나 가능하다고도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공연 음란’에서 ‘청소년 위험’으로

퀴어문화축제 개최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은 과거에도 있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는 2016년,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는 2108년 비슷한 일을 당했다. 2016년의 경우 반대 측이 집회 금지를 주장한 주요 이유는 ‘공연 음란 행위’ 때문이었다. 반대 측은 퀴어 축제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에서 알몸을 내놓거나 음란물을 판매한다고 비판했다.

2018년에는 학부모회 등이 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의 주요 주체였다. 이들은 거주지 근처에서 퀴어 축제가 벌어져 “자녀들의 주거 또는 사생활이 평온할 자유, 친권자로서의 자녀들에 대한 보호·교양권이 침해되고 자녀들도 정신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가처분 신청에는 청소년 당사자가 등장했다. 개인 자격의 가처분 신청자 26명 중 6명이 청소년이었다. 신청자들은 청소년 당사자를 앞세워 퀴어 축제가 “아동 및 청소년으로서 유해환경으로부터 피보호권, 인격형성권, 건강권”을 침해받는다고 주장했다.

한채윤 서울퀴어문화축제 기획단장은 “가처분 신청의 논리가 변했다”며 “과거에는 ‘학부모로서 반대한다’였고, 이번엔 청소년을 내세워 ‘우리들 청소년이 위험하다’로 주장한다”고 말했다.

■“청소년, 성담론서 배제될 이유 없어”

청소년 성소수자 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퀴어축제 반대 단체들이 ‘청소년 보호’를 축제 금지의 이유로 내세운데 반발했다. 반대 단체들의 주장에는 청소년의 욕망과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임하린양(19·가명)은 “혐오 세력은 청소년들을 성담론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규제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며 “청소년들이 건전한 성의식, 건강한 가치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주체로서 인정받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청소년의 감정, 논리, 경험, 결정, 욕구도 유효하다는 걸, 아직 보호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청소년 또한 한 인격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며 “(퀴어축제에 참여하면) 성소수자로서 정체화하고 있는 입장에서 다른 LGBTQ+와 연대할 수 있고, 그 공간에서는 혐오받지 않을 거라는 게 엄청난 안정감을 준다”고 했다.

안창현군(19)은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학교 다니면서 받아본 적이 없다”며 “세상은 점점 다양해지고 구체화하고 있는데 이런 흐름을 부정만 한다고 좋을 게 없다”고 말했다.

강명진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성적 지향, 성소수자의 유해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라며 “반대 측은 실질적으로 집회를 금지시키겠다기보다는 퀴어축제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프레임을 심어주기 위해 이같은 일을 벌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 청소년 보호 논리는 계속 가둬 놓다가 사회에 갑자기 던져놓는 형태”라며 “아동·청소년이 성장할 때부터, 사회의 다양성을 체험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삶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20회를 맞이한 서울퀴어퍼레이드는 1일 오전 11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조직위는 80여개의 부스를 운영하고, 오후 4시 서울광장에서 출발해 을지로 입구, 종로1가, 광화문 등을 행진할 예정이다.

2015년 6월 9일 서울광장에서 샬롬선교회, 전국학부모연합, 건강한사회를 위한 국민연대 등 동성애를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이 동성애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 이석우기자 foto0307@kyunghyang.com

2015년 6월 9일 서울광장에서 샬롬선교회, 전국학부모연합, 건강한사회를 위한 국민연대 등 동성애를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이 동성애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 이석우기자 foto030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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