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빈도 아닌 공적 영역에서 성적 언동 있었는지가 관건”

최민지·오경민 기자

인권위 “박원순 전 서울시장 행동, 성희롱 해당”

“늦은 밤 부적절한 메시지·사진 등 전송” 피해자 주장 인정
비서실의 묵인·방조와 피소 사실 전달 경위는 확인 못해

국가인권위원회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등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했다.

인권위는 25일 전원위원회를 거쳐 발표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에서 “피조사자의 진술을 청취할 수 없어 일반적 성희롱 사건보다 사실관계를 좀 더 엄격하게 판단했다”며 “수위나 빈도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성적 언동이 있었는지가 관건이므로 성희롱으로 판단하기 충분하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특히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이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유력한 정치인”과 “하위직급 공무원” 사이의 “권력관계”에서 발생한 것이란 점도 분명히 했다.

■ 피해자 주장 대부분 사실로 인정

박 전 시장이 피해자 A씨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과 손톱을 만진 것도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피해자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증거자료, 박 전 시장의 행위가 있던 당시 피해자에게 들었거나 메시지를 직접 보았다는 참고인들의 진술,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일관성 등에 근거할 때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이러한 일이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벌어졌음에도 비서실 직원들이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것은 “비서 업무로 정당화되어 본질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라며 “돌봄노동·감정노동은 여성에게 적합하다는 인식과 관행이 반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A씨가 박 전 시장의 업무 외에 샤워 전후 속옷 관리, 약을 대리처방 받거나 복용하도록 챙기기, 혈압 재기 및 명절 장보기 등 사적 영역에 대한 노무를 수행한 것으로 파악했다.

인권위는 비서실이 직원 정모씨가 A씨를 성폭행한 사건을 인지하고도 정씨가 A씨의 피해 사실을 왜곡·축소해 퍼뜨리는 것을 방치하고 보호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2차 피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에 파견된 경찰이 정씨의 요청을 받고 A씨에게 합의와 중재를 요청한 사실도 드러났다. A씨가 이 사건 조사와 2차 피해 관련 조치를 요구했음에도 서울시는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무대응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권위는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 조직 내 낮은 성인지 감수성

인권위는 서울시장 비서실이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을 묵인·방조한 정황과 피소 사실이 박 전 시장에게 전달된 경위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A씨의 동료 및 상급자들이 속한 비서실이 성희롱의 속성 및 위계구조 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피·가해자의 관계를 ‘친밀한 관계’라고만 바라본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성희롱은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면서 “두 사람이 권력관계 혹은 지위에 따른 위계관계라는 것은 명확하고 이러한 위계와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조직문화 속에서 성희롱은 언제든 발생할 개연성이 있으며 본 사건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결론냈다.

앞서 경찰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피고소인 사망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하고 검찰에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서울시 관계자들의 성추행 방임·방조 혐의 수사 또한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여성단체들은 지난해 8월 박 전 시장 의혹에 대해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경찰과 검찰, 인권위의 수사 및 조사가 진행 중임을 이유로 조사 개시 결정 여부를 미뤄왔지만 검찰과 경찰에 이어 이날로 인권위 조사 절차마저 끝나면서 조사를 개시할 수 있게 됐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