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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컬리의 ‘블랙리스트’가 불법 아니라고?

반기웅·박병률 기자
[윅픽] 마켓컬리의 ‘블랙리스트’가 불법 아니라고?

마켓컬리는 국내에서 신선식품 새벽배송 시장의 문을 연 기업입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 신선식품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마켓컬리의 매출도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해 연간 매출은 9523억원으로 전년(4289억원)대비 122%나 증가했습니다. 지난 30일 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지던 새벽 배송 서비스 권역을 타지역으로 넓히겠다는 계획도 발표했습니다.

마켓컬리의 물류 시스템을 지탱하는 인력은 물류센터 현장 노동자들입니다.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꺼내서 분류하고 포장하는 일을 하지요. 이분들 대부분은 일용직 노동자들입니다. 흔히 ‘알바’라고도 불리죠. 근무 신청도 알바 사이트를 통해서 합니다. 채용 관련 업무는 주로 채용대행업체가 합니다. 알바 사이트에 공고를 내고 지원자의 출근 여부를 정해 출근 확정 문자를 보내는 일을 하는 거죠.

그런데 마켓컬리와 대행업체 사이에는 서로 공유하는 노동자 명단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특정 노동자의 이름과 주민번호, 연락처 같은 개인 정보가 담겨있습니다. 컬리는 이 명단을 저성과자나 근무태도가 불량한 노동자를 걸러내기 위한 업무 평가 명단이라고 합니다.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행위를 두고 현장에서는 ‘블랙 처리한다’고 하죠. 여기에 이름이 올라가면 알바 사이트에서 근무 신청을 해도 일을 주지 않습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이 명단에는 꼭 근무태도가 불량한 사람만 오르는 게 아닙니다. 현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거나 갑질,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사람도 블랙 처리가 됩니다. 부당한 일을 겪고 문제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해고되는 거죠.

만약 노동자에 대한 업무 배제(블랙 처리)를 징계라고 주장하려면 정당한 징계 절차나 징계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마땅할 텐데 컬리의 블랙 처리에는 그 기준이 없습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공유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라는 점입니다. 근로기준법 제40조는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명부를 작성하거나 통신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켓컬리의 블랙리스트는 특정 노동자를 업무에서 배제하기 위해 만들었죠. 법조계는 이런 행위가 ‘취업 방해’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블랙리스트를 다수의 채용대행업체들과 공유를 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범죄라고 판단합니다. 노동문제연구소 ‘해방’이 마켓컬리를 근기법 위반으로 고발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무분별한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한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개선될 수 없습니다. 정당한 문제제기를 해도 해고되는 상황에서는 누구도 목소리를 낼 수 없겠지요. 종종 출근 확정 문자를 받고 도착한 물류센터 현장에서 이유 없이 ‘탈락’해 집으로 돌아가는 부당한 일도 겪지만 항의하지 못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동조합은 아예 결성할 엄두도 내지 못하겠지요.

마켓컬리가 블랙리스트를 운용할 수 있는 배경에는 마르지 않는 ‘인력 저수지’에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와 영세 사업자들이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시장에 몰리고 있지요. 노동력 공급이 꾸준히 이뤄지기 때문에 노동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골치 아픈 노동자는 비워내고 그 자리에 말 잘 듣는 ‘신입’을 채워 넣으면 그만이지요. 블랙리스트가 세상에 알려지고 비판 여론이 커지자 마켓컬리는 상용직 처우 개선을 통해 상용직 채용 비율을 높이고 물류센터 노동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과연 컬리는 약속을 지킬까요.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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