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권수 80권, 작업 기간 30년…마르크스-엥겔스 전집 번역 시작한 강신준 소장

이혜인 기자

“20세기에 마르크스로 인해서 자신의 인생과 선택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던 사람이 있었을까요. 마르크스를 매개로 한 사상적 대립의 영향을 하나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르크스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지금 한국에서 사상가 칼 마르크스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한 명만 꼽으라고 한다면 강신준 맑스엥겔스연구소장(동아대 명예교수)의 이름이 떠오른다. 그는 1987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식 출판된 마르크스 대표 저작물 <자본> 1권의 감수 작업과 2,3권 번역을 맡았다. 마르크스의 책을 가지고 있기만 해도 잡혀들어가던 시절이다. 그는 “노동운동을 하는 친구들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었는데, 나는 사상과 출판의 자유를 위한 일을 해 한국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번역을 맡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강 소장은 2008년에 <자본> 독일어 원전 번역본도 도맡아 번역하는 등 한국사회와 마르크스를 잇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평생을 마르크스 연구자로 살아온 그가 생전에 다 못 끝낼 것으로 보이는 방대한 양의 마르크스 문헌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마르크스와 그의 동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자필원고와 그에 대한 해석이 가장 정확하게 담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arx/Engels Gesamtausgabe·MEGA)을 번역하는 작업이다. 국내에서도 마르크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출판물들은 많이 나왔으나, 메가는 마르크스-엥겔스의 사상이 왜곡없이 총망라돼 담긴 ‘학술적 정본’이라는 의미가 있다.

최근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와 도서출판 길에서 MEGA의 한국어판 1·2권이 출간되면서 긴 여정이 시작됐다. 총 작업 권수 80여권, 작업 기간은 30여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에서 만난 강 소장은 “MEGA 번역 작업이 완료돼야만 스탈린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진정한 마르크스 사상에 대해 알 수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근 발간된 MEGA 한국어판  1, 2권. 도서출판 길 제공.

최근 발간된 MEGA 한국어판 1, 2권. 도서출판 길 제공.

마르크스의 저작물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3권으로 나온 <자본>과 <독일 이데올로기>다. 하지만 이는 마르크스가 생전에 남긴 저작물의 일부를 모은 것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방대한 양의 유고를 남겼다. 마르크스-엥겔스 유고는 엥겔스 사후에 독일 사민당에 기증됐다가,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일부는 네덜란드 사회사연구소에 넘겨지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졌다.

흩어져있던 유고들을 한 데 모아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의 형태로 복원을 시작한 것은 러시아다. 러시아의 문헌학자 다비드 리야자노프는 당시 레닌의 지원을 받아 전집 출간에 착수했다. 하지만 레닌 사망 후에 스탈린이 리야자노프를 숙청하면서 전집 작업이 중단된다. 스탈린은 기존에 진행되던 작업과 별개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복원작업을 다시 진행해 <제1소치네니야>(총 28권)를 내놓는다. 스탈린 사후인 1954~1966년에 러시아에서는 제1소치네니야를 보완한 <제2소치네니야>(총 39권)가 출간된다. 1·2 소치네니야 외에도 마르크스-엥겔스 저작물을 총망라한 전집은 1950년대 동독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에서 내놓은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MEW·43권)이 있었다.

강 소장은 “<소치네니야>는 스탈린이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글들을 뽑고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것들은 고의로 누락시켜 왜곡된 부분이 있다”며 “<제2소치네니야>의 분량만 봐도 마르크스-엥겔스 문헌 전체 분량의 3분의 1 정도 밖에 안될 정도”라고 말했다. 또 “MEW는 제2소치네니야의 결함을 보완하려했으나, 이것 역시 대중적 판본으로서의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맑스엥겔스연구소의 연구원들이 번역 작업의 원전으로 삼은 MEGA는 독일에 있는 ‘국제 마르크스-엥겔스 재단’이 내놓은 것이다. 1920년대부터 중단과 재개를 거듭하며 현재는 전체 목표 권수 114권 중 69권까지 출간된 상태다. MEGA는 마르크스-엥겔스의 원고를 원문 그대로 복원한 ‘본문 책자’와, 복원 과정에서 어떤 해석과 기술적인 작업을 거쳤는지 설명하는 ‘부속 책자’까지 총 2개의 책자가 합쳐져서 각 한 권을 구성하고 있다. 누락된 유고가 없고 스탈린 정권에서 왜곡된 편집이 없어 진정한 의미의 학술적 정본이다.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번역 대장정 시작하는 강신준 맑스엥겔스연구소장(동아대 명예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번역 대장정 시작하는 강신준 맑스엥겔스연구소장(동아대 명예교수) /우철훈 선임기자

10~20여명의 연구원이 5년 가까이 달라붙어 작업했으나 이번에 한국어판 두 권이 겨우 출간될 정도로 고되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한국연구재단의 5년 짜리 지원사업으로 선정됐으나, 전체 목표치인 80여권을 완료하기에는 비용과 지원기간 모두 충분치 않다. 맑스엥겔스연구소와 도서출판 길은 우선 MEGA의 앞부분 17권만 번역하자는 목표를 두고 있다. 강 소장은 “한국어판 출간 계약을 2012년에 맺고 이후 후원을 받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으나 성공적이진 못했다”며 “미래에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하고는 있으나 막막하다”고 말했다.

고되고 값비싼 작업을 통해 마르크스에 대해서 더 알 것이 남아 있는 것일까. 강 소장은 “작업이 다 끝나야지만 기존에 우리가 마르크스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마르크스의 한 예로 ‘신용론’을 들었다. 그는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이들 중에 마르크스가 화폐, 금융 등과 관련된 신용론에 취약하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며 “마르크스의 신용론은 <자본> 3권에만 짧게 나오기 때문인데, 마르크스가 남겨놓은 초고들을 훑으면 마르크스의 신용론 혹은 금융론을 한 권의 책으로 모을 정도가 된다”고 설명했다.

강 소장은 마르크스가 이 시대에도 여전히 많은 것들에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로 기존의 경제 이론이 자본주의에 대해 답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경제에 대한 합의와 뚜렷한 상이 없기 때문에, 지금 가상화폐 광풍처럼 점점 더 불안정한 상태가 오는 거죠. 마르크스는 100년도 더 전에 자본주의의 문제를 앞서 지적하고 해답을 내려 했습니다. 노동하지 않는 사람이 가져가는 부(잉여가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지적했죠. 마르크스의 이야기는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한국어판 출간 후원에 대한 문의는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051-200-8691)로 하면 된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