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조사·처벌 원함’이 ‘애통’으로…공군 보고, 조작 수준

반기웅 기자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작성 4건의 보고서 보니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30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의 허위보고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30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의 허위보고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이 중사 사망 당일 참모총장 보고엔 사건 내용 등 상세 기술
국방부 전달용엔 성범죄 피해 지우고 ‘특이사항 없음’으로
공군 수사라인 사건 은폐·축소 정황에 국정조사 여론 커져

공군 군사경찰단이 이모 중사의 성추행 사망 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에 보고하면서 피해사실을 의도적으로 축소·은폐한 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성추행과 2차 가해 수사에 더해 공군 지휘부와 군사경찰단을 상대로 축소·은폐 의혹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군의 자체 수사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서 국회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30일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이 작성한 보고서 4건을 보면, 공군 수사라인과 이를 보고받은 공군참모총장은 이 중사가 강제추행과 2차 가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을 명확히 인식했다. 공군 수사라인이 이 중사 사망 당일인 5월22일과 23일 공군참모총장에게 상신한 보고서 2건에는 사건 내용, 수사 상황, 유가족 반응, 부검·장례관계 등이 상세히 적혀 있다. 특히 5월23일 작성된 세부보고서에는 이 중사가 소속 부대원들이 가해자에 대한 선처를 요구해 힘들어했다면서 2차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유가족의 요구도 기술돼 있다.

그러나 5월23일 공군 수사라인이 국방부 조사본부에 전달한 보고서에는 이 중사의 성범죄 피해가 모조리 누락됐다. 유가족에 대해서도 “사망동기를 명확히 밝혀달라며 애통해하는 것 외 특이반응 없음”이라고 적었다. ‘허위보고’를 넘어 ‘문서조작’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서욱 국방부 장관도 지난 9일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보고에서 국방부 조사본부 서면보고 내용에 이 중사가 성추행 사건 피해자라는 점이 포함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군 내 보고체계를 살펴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국방부 검찰단과 국방부 조사본부는 지난 4일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을 압수수색해 이 문건들을 모두 확보해놓고도 지난 25일이 되기까지 핵심 인물인 공군 군사경찰단장조차 입건하지 않았다”며 “문건과 정황을 모두 확보하고도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던 국방부 검찰단장과 국방부 조사본부장을 즉시 보직 해임해 사건 수사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적 관심사인 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했는데도 공군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면 ‘군기문란’에 가까운 중대 사안이다. 성추행 및 2차 가해에 관한 내용이 국방부 조사본부에 전달한 보고서에는 왜 통째로 누락됐는지, 윗선의 지시나 묵인이 있었는지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국방부는 파문이 커지자 입장문을 내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 국방부는 “합동수사를 통해 6월 초 이미 공군 군사경찰단이 국방부 조사본부에 중요한 사실을 누락한 채 보고한 사실과 이와 관련된 자료를 확보해 수사를 진행해왔다”며 “증거를 확보하고도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국방부 해명에도 공군 수사라인의 부실한 초동 수사와 축소·은폐 보고 의혹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이 중사 사망과 관련해 허위보고를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공군 수사라인 관계자들은 국방부 조사 과정에서 서로 상반된 진술을 하는 등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군 내에서조차 ‘제 식구 봐주기’ 수사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 중사의 유가족은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군인권센터를 비롯한 시민단체들도 국정조사를 요청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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