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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로컬③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 조경 전문가, 국제회의 기획자, 파티셰, 바리스타, 조리사···. 갖가지 경력의 청년 6명이 충북 괴산에서 농부로 살고 있다. 타이틀은 ‘농부’지만 버섯, 채소, 쌀, 곤충 등 각자 짓는 농사도, 먹고사는 일도 서로 다르다. 4명은 4~5년 전 서울에서 귀농한 부부들이고, 2명은 괴산에서 부모의 농사를 물려받은 후계농이다. 올 초 이들은 논과 밭이 펼쳐진 한적한 감물면에 카페를 만들었다. 이름은 ‘뭐하농 하우스’. ‘무언가를 하는 농부들의 공간’이란 뜻이란다.

충북 괴산에서 6명의 청년 농부가 만든 ‘주식회사 뭐하농’의 이지현 대표가 지난 6월17일 ‘뭐하농’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자라고 있는 농작물에 대해 설명하는 ‘채소 도슨트’다. 그의 뒤로 아이들이 흙장난을 할 수 있는 작은 흙놀이터가 보인다.

충북 괴산에서 6명의 청년 농부가 만든 ‘주식회사 뭐하농’의 이지현 대표가 지난 6월17일 ‘뭐하농’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자라고 있는 농작물에 대해 설명하는 ‘채소 도슨트’다. 그의 뒤로 아이들이 흙장난을 할 수 있는 작은 흙놀이터가 보인다.

카페 내부는 꽃과 나락, 비료 포대, 물뿌리개, 손수레 등으로 장식했다. 카페 앞 150평 밭에는 토마토, 비트, 무, 바질, 쑥갓 등 채소와 허브를 심었다. 밭이라기보다는 정원에 가깝다. 계절마다 채소 꽃이 피고, 이랑과 고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들이 거닐 수 있는 길을 냈다. 읍내도 아닌 한적한 면 단위 시골에 왜 이런 카페를 만들었을까. 지난 6월17일 감물면 ‘뭐하농 하우스’에서 ‘뭐하농’의 사람들을 만났다.

카페 ‘뭐하농 하우스’ 내부 모습.

카페 ‘뭐하농 하우스’ 내부 모습.

카페 내부는 꽃과 나락, 비료 포대, 물뿌리개, 손수레 등으로 장식했다.

카페 내부는 꽃과 나락, 비료 포대, 물뿌리개, 손수레 등으로 장식했다.

평일인데도 카페엔 가족 단위 손님들이 제법 있었다. 한 할머니는 손주와 함께 정원 같은 밭을 거닐고 있었다. 보통 농가에서는 무, 감자, 마늘 같은 뿌리 식물의 꽃대가 올라오면 잘라낸다.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서양 무 ‘래디시’가 허리 높이까지 자라 흰 꽃과 분홍 꽃이 피어 꽃 사이로 흰나비 수십 마리가 날아다녔다. “손님들이 정원에 나와서 꽃 사진을 찍다가 뒤늦게 알아차려요. ‘아, 이게 무였구나’ ‘상추구나’ ‘여기엔 당근이 있네?’ 농장인데 아름다운 정원처럼 보일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그래서 이름이 ‘팜 가든’이에요. 농사가 아름답고 멋진 일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뭐하농’ 대표 이지현씨(34)가 말했다.

서양 무 ‘래디시’가 허리 높이까지 자라 있었다.  흰 꽃과 분홍 꽃이 피어 꽃 사이로 흰나비 수십 마리가 날아다녔다.

서양 무 ‘래디시’가 허리 높이까지 자라 있었다. 흰 꽃과 분홍 꽃이 피어 꽃 사이로 흰나비 수십 마리가 날아다녔다.

카페 직원이 ‘팜 가든’에서 루콜라를 따고 있었다. 샐러드 요리에 넣는다고 했다. 주말에는 카페를 방문한 어린아이들이 농작물을 수확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한편에는 고운 흙과 장난감을 가져다 둔 작은 ‘흙 놀이터’도 만들었다. 카페와 가든 설계는 이씨가, 실제 작업은 조경 전문가인 남편 한승욱씨(38)가 담당했다.

“도시에는 아이들의 공간이 많지 않잖아요. 예쁜 카페들은 ‘노키즈 존’이거나 ‘노펫 존’이 대부분이고요. 그래서인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카페 사진을 보고, 가족 단위나 반려동물과 함께 오는 손님들이 많아요. 주로 인근 충주와 청주에서 오고, 서울 손님들도 있어요.”

‘주식회사 뭐하농’의 이지현 대표가  팜 가든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주식회사 뭐하농’의 이지현 대표가 팜 가든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 재밌는 일을 위한 ‘베이스캠프’

이지현·한승욱씨 부부가 괴산의 청년 농부들과 결성한 ‘뭐하농’은 농업을 기반으로 문화사업을 진행하는 주식회사이다. “사실 돈을 더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에요. 저희는 각자 농장에서 먹고살 만큼은 돈을 벌거든요. 농촌에서 계속 살아가고 싶은데 사람이 농사만 짓고 살 수는 없잖아요. 내가 사는 곳이 ‘다양한 문화가 있는 재밌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모였어요. 원래 하던 일을 ‘농부’로서 병행하면 ‘농업’이 확장될 수 있거든요. 농부가 음식을 만들고, 조경을 하고, 교육을 하면 농업의 영역이 그만큼 커지는 거예요.”

‘뭐하농’에는 헌장이 있는데 첫 번째 조항이 ‘즐거운 사람이 만들어가는 공동체’다. “즐겁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는 게 1번이에요. 내가 농사고 농사가 나니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죠. 진짜 좋아하는 일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내 삶인 거예요.” 괴산의 농부들은 ‘농부의 영역’을 확장시켜 로컬의 삶을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

‘뭐하농 하우스’의 시그니처 메뉴는 정찬묵 농부가 생산한 쌀로 만든 ‘뭐하농 라떼’다.

‘뭐하농 하우스’의 시그니처 메뉴는 정찬묵 농부가 생산한 쌀로 만든 ‘뭐하농 라떼’다.

이씨는 “농부가 고단한 직업이 아니라, 재밌고 멋진 직업이라는 이미지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카페 뭐하농 하우스는 재밌는 일들을 진행하기 위한 ‘베이스캠프’라는 설명이다. 마침 벼농사를 짓는 ‘뭐하농’ 멤버 정찬묵씨(33)가 한때 경기 수원에서 바리스타로 활동하며 커피숍을 운영한 덕분에 카페 창업은 어렵지 않았다. 정씨가 직접 설비를 들이고, 원두를 선별하고, 시럽까지도 직접 골랐다. 각종 시설을 점검하는 일은 조리사이면서 아버지와 함께 반딧불이와 나비를 키우고 있는 임채용씨(27)가 맡았다.

괴산 ‘뭐하농’이 넓힌 농부의 역할 중에는 도슨트도 있다. 미술 작품이나 예술품 대신 작물을 설명하는 ‘채소 도슨트’다. 이씨가 팜 가든의 토마토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토마토 옆에 쑥갓을 심었어요. 토마토에 꼬이는 벌레들을 쫓거든요. 쑥갓에도 꽃이 올라오는데 국화과 꽃이에요. 향기가 정말 좋아요. 꽃이 피면 꺾어서 카페 안에 꽃꽂이를 해둘 거예요. 토마토 주변에 바질도 함께 심었어요. 바질은 토마토랑 같이 심으면 바질의 향이 더 짙어져요. 토마토는 더 달콤해지고요. 비트와 비트 사이에는 무를 심었어요. 비트는 잎이 달콤해서 노루와 야생동물이 다 따먹어요. 줄기에 작은 가시가 나는 무가 크게 자라면 작은 비트들을 숨겨주죠. 무 덕분에 비트들이 완벽하게 다 자라났어요.”

‘주식회사 뭐하농’의 이지현 대표

‘주식회사 뭐하농’의 이지현 대표

팜 가든에 작물을 심는 건 유기농 밭농사를 하는 김진민씨(28) 담당이다. 아이들이 손으로 감자나 비트를 뽑을 수 있도록 일부러 얕게 심었다. 김진민씨의 배우자 김지영씨(33)는 서울에서 국제회의 기획자로 일했다. 여기서는 채소 도슨트와 교육을 맡았다. 셋째 아이를 낳고 잠시 쉬고 있어 지금은 대표 이씨가 도슨트를 진행 중이다. 텃밭을 일구는 도시 손님들의 상담에 조언도 해준다. “텃밭에 심은 감자가 시들고 두둑이 다 갈라졌다”고 하니, “레몬그라스를 심어두면 땅이 스스로 회복해 다음 감자 농사는 잘 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내년에 열리는 괴산 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에서 유기 농사에 대해 설명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6명의 농부들은 모두 ‘주식회사 뭐하농’의 주주들이다. 각자 자신의 농사를 지으면서 여러 사업에 참여한다. 이씨는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대주주이자 ‘뭐하농’의 경영자다. 전직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 연구원 시절처럼 정부 지원 사업에 공모해 프로젝트를 따내기도 한다. “그런데 시골에서 생활하다 보니 저에 대한 오해도 있어요. 여자인 저는 ‘바지사장’이고, 남자인 남편이 ‘진짜 대표’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 거예요. ‘회사에 대한 문의가 있다’면서 남자 멤버들과 이야기하려는 분들도 많고요. ‘뭐하농’의 남자들은 ‘시골 분들이라 여성 대표를 대하는 일이 익숙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하는데 많은 분이 ‘진짜 중요한 일을 하는 애들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들 아니야?’ ‘결정권은 남자들한테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많이 속상했죠.”

충북지역의 한 기관에서는 이씨가 명함을 내밀며 대표라고 소개하니 “여자를 대표로 앉히다니 깨어있는 조직”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 순간이 “모욕적”이었다고 했다. “상대가 인사를 하며 정작 본인 명함은 제가 아나라 옆에 있던 남편에게 주는 거예요. 굉장히 상처를 받았어요. ‘아직도 여자들이 사회활동을 하는 데 이런 시선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식회사 뭐하농’의 이지현 대표

‘주식회사 뭐하농’의 이지현 대표

■ 귀농 청년만 아는 ‘진짜 농촌살이’

‘뭐하농’은 지난 6월 초부터 귀농, 귀촌하려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두달살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녔지만, 서울의 삶이 행복하지는 않았아요. 결혼하고 남편과 저녁을 먹은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지금 행복한 삶’을 살려면 도시를 떠나야겠더라고요. 엄마도 반대하고, 시골에 계신 분들도 다 반대했어요. 보통 도시에서 사는 것이, 회사를 다니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내가 만들어가는 삶’은 도시보다 농촌에서 가능해요. 또래에게 재밌게 살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 없이 가능하도록 말이에요.” 뭐하농 구성원들은 두달살이를 하고 있는 13명의 청년들에게 농사법과 농기계 작동법 등 농업 실무와 농촌 생활에 적응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6명이 나눠 교육하면 농번기에도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주식회사 뭐하농’을 만든 청년 농부들. 정찬묵, 김진민, 김지영, 임채용, 이지현, 한승욱씨(왼쪽부터) | 뭐하농 제공

‘주식회사 뭐하농’을 만든 청년 농부들. 정찬묵, 김진민, 김지영, 임채용, 이지현, 한승욱씨(왼쪽부터) | 뭐하농 제공

이지현·한승욱씨 부부는 자신들의 비닐하우스에서 버섯 농사를 강의한다. “버섯은 돈 때문에 시작했어요. 다른 작물은 밭을 만들고, 심고, 수확하면 딱 6개월이 걸리거든요. 저희는 모아둔 돈이 없어서 바로 수입을 낼 수 있는 작물을 찾다 보니 표고버섯이었죠. 버섯은 한 달에 한 번 수확할 수 있으니까 매월 꼬박꼬박 월급처럼 돈이 들어와요. 1년에 12번 길러본 거예요. 농사 경험이 없는 저희 부부에게 가장 빨리 배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죠.”

돈을 빨리 벌 수 있기는 하지만 힘든 점도 있다. 배지 하나에서 표고가 수십개씩 나오는데 그중에서 2~3개만 남기고 골라내는 일이 고역이라고 했다. 시설 투자 비용이 높은 것도 단점이다. 그래서 버섯 농사를 시작한 직후에 이씨는 과외 아르바이트도 했다. 버섯 배지 5000개에서 시작한 농사는, 현재 3만개로 규모가 6배로 커졌다. “지금은 서울에서 우리 부부가 벌던 것 이상으로 수입이 생겼어요.” 기반 없이 시작한 귀농인들만 전해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카페 ‘뭐하농 하우스’와 팜 가든 전경.

카페 ‘뭐하농 하우스’와 팜 가든 전경.

서울에서 8년간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김성훈씨(38)는 지난해 괴산으로 귀농해 아스파라거스 농사를 시작했다가 어려움을 느껴 ‘뭐하농’이 진행하는 두달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제가 농사를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건지 전혀 감을 못 잡겠더라고요. 겁도 많이 났어요. 근데 주변 분들에게 물어보면 ‘정리하고 서울가라’고만 해요. 계속 그런 말을 듣다 보면 힘들거든요. 여기는 또래가 농사를 가르쳐주니 좀 더 (배우기) 수월하고 적응하는 데도 도움이 돼요.” 김씨는 농사를 지으면서 자신의 경력을 살린 농가 회계나 농작물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농부들 각자의 경험을 살려 농사를 짓는 ‘뭐하농’은 앞으로 어떤 회사가 될까. 대표 이씨는 이렇게 말했다. “ ‘즐겁게 살자’며 세운 농부들의 회사예요. 저희의 자리에서 농부로서 재미있는 일을 찾고 싶어요. 그런 마음 덕인지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저희끼리 놀면서 지내도 ‘놀이터’가 계속 넓어지는 느낌이에요. 도시 청년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요. 같이 즐겁게 살 친구들을 모으는 거죠.”


글 이재덕 기자 · 사진 채용민 피디 duk@kyunghyang.com


도시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로컬에서 다른 삶을 살아 보려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하거나, 가게를 내거나, 농사를 짓습니다.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버티컬 채널 ‘밭’(facebook.com/baht.local)은 로컬에서 어떤 삶이 가능한지를 탐구합니다. ‘서울 말고 로컬’ 연재로 나만의 밭을 일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facebook.com/baht.lo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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