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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이 나서 학습관·대학 등록금 지원하자···“맘 놓고 지역에 남아요”[밭]
작은 학교④ 강원 화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2020학번 박해인씨(21·가명)는 강원 화천 출신이다. 이달 초 기숙사 월 관리비 25만원을 냈고, 보름 뒤에는 새학기 등록금도 납부해야 한다. 박씨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화천군에서 지역출신 대학생들에게 대학 4년 등록금 전액과 최대 50만원까지 월세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화천에서도 면 단위 농촌 마을인 간동면 유촌리에서 초·중·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친구들이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인근 도시 춘천으로 빠져나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남은 친구들끼리 그런 얘기를 했어요. ‘다 떠나네. 다들 좋은 데로 가는구나.’ 유치원 때부터 함께 지냈던 친구들이 떠나니까 쓸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화천군에 따르면, 학창 시절 화천을 떠나는 아이들의 비율은 2015년 기준 49.3%나 됐다. 10명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5명만 남아있다는 뜻이다. ‘대학 등록금 전액 ... -
학교도 마을도 함께 성장하는 곳···“일 벌이면? 응원합니다”[밭]
작은 학교③ 경남 남해 상주리 경남 남해의 ‘끝자락 마을’ 상주면 상주리. 사찰 보리암을 둔 금산과 ‘은모래’라고 불리는 너른 백사장이 있다보니 농업이나 어업보다는 펜션 등 관광업으로 버는 수입이 더 많은 동네다. 금산 자락에는 수백 년 걸쳐 만들어진 다랑논들이 있는데, 주민들은 다랑논을 일궈 벼농사를 짓고 벼베기가 끝나면 그 자리에 마늘을 키운다. 어른들이 마늘 파종에 바빴던 지난 가을, 상주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아이들의 작당이 시작됐다. 망치와 드릴을 쥔 11명이 운동장 벚나무 아래 모였다. 크고 작은 목재들을 이리저리 맞춰 못질하고 나사를 박았다. 담임 교사와 몇몇 주민들이 작업을 도왔다. 저학년 아이들이 ‘뭘 만드나’ 궁금해 서성댔다.한달 뒤, 벚나무 아래에는 3.5m 높이의 2층 목재 구조물이 만들어졌다. 6학년 아이들은 ‘비밀 기지’라고 부른다. 아이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낮잠 자려고” 1층에 평상을 설치했고, 평상 옆에 “숨어있기 좋은” 공... -
공공주택으로 품어 준 학생들···살아난 학교가 마을도 살렸다 [밭]
작은 학교② 충북 괴산 제비마을 “우리 학교에 오면 집을 드립니다.” 2018년 여름 ‘2019년도 백봉초등학교 전·입학생 모집공고’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져가기 시작했다. 충북 괴산 청안면 제비마을(부흥1~5리)에 있는 백봉초에 자녀를 전입학시키는 가정에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보증금도 없고, 월 임차료도 없다. 내는 돈은 월 관리비 5만원이 전부다. 다자녀 우대, 주소 이전 등의 조건이 붙었다. 일단 입주하면 자녀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 수 있다. 폐교위기에 놓인 백봉초를 살리기 위해 주민, 학교, 군청이 내놓은 방안이다. 당시 백봉초 총동문회장이었던 한석호씨(64)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는데 하나둘 문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9년 총 6가구를 선발하는데 20여가구가 입주 의사를 밝히더니, 이듬해 추가로 지은 임대주택 입주민 6가구를 뽑는 공고에는 100여가구가 문의해왔다.올해도 2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
휴대폰·학원뿐이던 도시 아이들의 삶에···‘친구·자연’이 찾아왔다 [밭]
작은 학교① 강원 춘천 고탄리 많은 농촌 학교들이 해마다 신입생 수를 걱정한다. 학생이 20~30명뿐인 작은 학교들은 분교나 폐교 결정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이미 전국 1184개 면 중 31곳(2018년 11월 기준)에는 초등학교가 한 곳도 없다. 초등학교가 딱 한 곳인 면 단위 농촌은 666곳에 달한다. 농촌에 사는 아이들은 다른 면으로 장시간 통학하거나, 아예 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 젊은 부부들이 농촌을 떠나게 되면 마을에는 고령의 어르신만 남는다. ‘학교의 부재’는 마을의 소멸로 이어진다.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리기 위해 주민들이 나선 지역들이 있다. 도시 아이들이 한 학기 이상 농가에서 지내며 농촌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농촌 유학’을 진행하는 마을도 있고, 도시에서 온 초등학생 가족들에게 공공임대주택과 장학금을 주는 마을도 있다. 대안학교나 혁신학교로 전환해 학생들을 유치하는 작은 학교도 있다. 농촌의 학교들은 분명 매력적이다. 농촌이라고 해... -
가을 텃밭 농사는 '김장'을 위해 달린다 [밭]
텃밭일기⑥ ‘도시농부 여러분, 한 해 동안 즐거운 도시농부의 삶을 살아오셨는지요. 4월부터 시작된 우리의 농사가 곧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11월30일까지 배추·무 등의 작물을 정리해주세요.’절기상 김장철의 시작을 알리는 ‘소설’(양력 11월22일)에 구청에서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렇지, 텃밭은 내 것이 아니었지.’ 공원 내 꽃밭을 개간해 만든 모래땅, 3평짜리 텃밭은 작지만 우리 가족에게 많은 것을 내어줬다. 4~5월에 씨를 뿌리고, 6~9월 수확하는 여름 농사 기간, 텃밭은 농사를 ‘1도 모르는’ 텃밭러에게 가지, 상추, 토마토, 고추, 당근, 시금치, 감자 등을 안겨 주었다. 8월 중순 시작된 가을 농사도 어느덧 마무리할 때가 왔다. 심어만 놓으면 쑥쑥 자라는 여름 텃밭 농사와 달리, 가을 농사는 난도가 한 단계 높다. 벌레와 날씨를 더욱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벌레만 횡재한 첫 농사가을부터는 시간이 날 때마다 텃밭의 무와... -
소는 누가 키우나 [밭]
사표 쓰고 귀농⑧ “무슨 농사를 지으려고?” 귀농을 꿈꾸는 내게 직장 선배들이 물었다. “글쎄요. 취재를 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어요.” 쉽고 편한 농사가 하나도 없다. 괴산으로 귀농한 농부는 “자신에게 잘 맞는 농사가 있다”고 조언했다. “나는 고추가 잘 맞아요. 쪼그려 앉아 일하고 따는 걸 잘하거든. 근데 참깨, 들깨는 안 돼요. 잔손이 너무 많이 가고 갈무리가 힘들어.” 한 가지 확실한 건 귀농을 한다고 해도 쉬지도 못하고 매일 일만 하는 농사는 어려울 것 같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농한기가 있는 편이 낫겠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 샛별을 보며 일해야 하는 농사는 피하고 싶다.그런데 이 모든 걸 해야 하는 농사가 젖소를 키우는 ‘낙농’이다. 하루도 못 쉬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젖을 짜야 하고, 매일 소들을 돌보고 건강 상태를 살펴야 한단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이런 노동을 감내하며 젖소를 키울까. 낙농가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일은 고되지만 수입... -
저 많은 사과를 언제 다 따지? [밭]
사표 쓰고 귀농⑦ 22년 넘게 1000회 이상 이어진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를 아내와 두 바퀴째 ‘정주행’하고 있다. 같이 보고 있지만, 두 사람의 관전포인트는 다르다. 아내는 “도대체 저런 시댁에서 어떻게 살지?”라며 며느리에게 감정이입을 하는데, 사표 쓰고 귀농할 꿈을 꾸는 나는 극중 배우들이 직접 논을 매고, 나락을 수확하는 모습만 보인다. “20년 넘게 드라마를 찍으면서 농사일도 했으니까 진짜 농부와 진배없을 거야.”김 회장(최불암) ‘일가’는 벼농사에 사과·배 과수원까지 한다. 수확한 사과가 저장 중 썩어버려 손해를 보기도 하고, 배를 쪼아대는 까치를 쫓아내기 위해 폭죽을 터뜨리다 이웃과 갈등을 겪기도 한다. 그 많은 등장인물들이 농사짓느라 고생하지만, 그래도 돈 걱정 안 하고 사는 집은 김 회장네뿐인 듯싶다. 지금의 과수원은 20~30년 전 드라마 속 모습과 얼마나 다를까. 부부가 땀 흘려 농사짓고 먹고살 만큼 벌 수 있다면 농촌에서도... -
하얗게 익는 벼, 까맣게 타는 속 [밭]
사표 쓰고 귀농⑥ 아내의 고향인 강원 철원에 갔더니, 할아버님께서 햅쌀과 묵은쌀 몇 포대를 가져가라 하셨다. 장조부님은 평생 해온 벼농사를 그만두고, 인근 마을 사는 사촌에게 그 논을 빌려주셨다. 추수 때마다 임대료로 받은 쌀 포대들이 집 지하실에 가득 쌓인다. 장인, 장모와 처삼촌 등 자식 세대들은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는다. “농사지어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잘 아니까….” 아내가 말했다. ‘기자 그만두고 그 땅을 좀 부쳐볼까’ 찔러봤더니 “그 논은 눈독도 들이지 마, 농사 아무나 짓나” 하는 핀잔만 돌아왔다.귀농하자고 몇 년 전부터 설득하고 있지만 아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귀농해서 농사를 짓는 건 어떨까요?” 농촌 취재를 하며 만난 농부님들조차 고개를 젓는다. “농사짓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책임지고 선뜻 오라고 말은 못하겠다.” 수확철인데도 요즘 농촌 분위기가 녹록하지 않단다. 기후변화로 병충해는 극성이고,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 구하는 일도 난망... -
도서관 사서들이 '씨앗 마실' 가는 이유는?
밑줄 치며 읽는 농업·로컬 ④홍성 씨앗 도서관 <우리 동네 씨앗 도서관> “헨리 키신저를 제외하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가장 큰 살인자는 아마도 ‘녹색혁명’ 밀 품종으로 수백만 명의 농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노먼 볼로그일 것이다.”(미국 저널리스트 알렉산더 콕번)20세기 중반 수확량을 비약적으로 높인 밀 품종(소노라64)을 육종했던 미국의 농학자 노먼 볼로그(Norman E. Borlaug, 1914~2009)는 숨을 거두기 전까지 이런 비난을 들어야 했다. 소노라64는 멕시코, 인도, 파키스탄 등 개발도상국에서 재배됐고 이들 국가의 밀 생산량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질소 비료 등 화학 비료가 충분히 투입돼야 생산성을 담보할 수 있었고 물도 많이 필요했다. 제초제와 농약, 트랙터가 본격 사용됐다. 농사 짓는 비용과 부담이 상당히 높아진 셈이다. 많은 농민들이 빚에 허덕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볼로그는 ‘녹색혁명이 세계를 유토피아로 바꾸지는 않... -
어떤 놈이 밭에 소금을 뿌렸어? [밭]
텃밭일기⑤ “뭐야? 어떤 놈이 텃밭에 소금을 뿌렸어?”텃밭에 심은 배추 주변으로 흰 알갱이들이 흩어져 있었다. ‘밭에 소금과 락스를 뿌리면 고추 탄저병을 막을 수 있다’는 엉터리 유튜버들의 ‘가짜 뉴스’ 영상이 돌고 있던 터라 덜컥 겁이 났다. 우리 애들 다 말라 죽겠네. 사색이 돼 하얀 알갱이들을 걷어내려는데, 어라, 소금이 아니다. 옆 텃밭 들깨에서 떨어진 들깨꽃이다.옆 텃밭은 들깨를 늦게 심었는지 이제서야 꽃이 피기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텃밭들은 이미 지난달부터 들깨 씨가 영글고, 잎들이 누렇게 말라가기 시작했다. 며칠만 더 지나면 성인 키만큼 큰 들깨들을 잘라내 말리는 텃밭러들도 볼 수 있을터다. 그때 쯤이면 우리 배추들도, 옆 텃밭 들깨의 긴 그림자에서 해방될 수 있겠지···. 탕수육에 ‘부먹파’와 ‘찍먹파’가 있다면, 깨에는 ‘참기름파’와 ‘들기름파’가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향 진한 참기름이 더 좋다고 말할지 몰라도, 내겐 값싼 들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