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사람 ‘찔끔’ 내려보낼 게 아니라…살고 싶게 ‘균형의 틀’ 짜라

배문규·최민지·박채영·문광호 기자

정치에 묻는다

내년 3월9일은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간의 ‘두 번째 분단’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공화국’이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제작: 이제석 광고연구소 ⓒ www.jeski.org

내년 3월9일은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간의 ‘두 번째 분단’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공화국’이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제작: 이제석 광고연구소 ⓒ www.jeski.org

■“과감한 혜택으로 대기업 ‘제2 본사’ 지방 유치를”

경향신문은 지난달 6일부터 9차례 연재한 창간기획 ‘절반의 한국’을 통해 가속화하는 수도권 팽창과 소멸 위기감이 커지는 비수도권의 실태를 다각도로 짚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한국의 수도권 쏠림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의 ‘불균형 발전’이 수십년간 누적돼온 탓이지만 2010년대 들어 본격화된 산업구조 재편이 이런 흐름을 가속화했다. 그 결과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은 이제 남북 분단이 아니라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두번째 분단’이라고 할 만한 상태가 됐다.

“수도권의 흡인력이 너무 강해져 한 정권이 온 힘을 다해야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상황”(성경륭 초대 국가균형발전위원장·한림대 명예교수)이라고 할 정도로 풀기 어려운 과제다.

이 흐름을 끊지 않으면 지방소멸이 현실화되고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도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경고음은 지나치지 않다. 국가 균형발전은 차기 정부가 경각심을 갖고 추진해야 할 국정과제가 됐다. 경향신문은 다음 정부가 다뤄야 할 과제들을 전문가들의 제언으로 종합했다.

공공기관 2차 이전 ‘출자기업 동반’ 필수

공공기관 2차 이전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으나 끝내 이행되지 못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26일 “차기 정부에서 이전을 시작할 토대를 마련하겠다”며 차기 정부로 공을 넘겼다. ‘혁신도시 시즌2’의 성공을 위해서는 공공기관뿐 아니라 “공공기관 출자·재출자기업을 한데 묶어 이전하는 것은 물론 대기업의 ‘제2본사’도 지역에 유치해야 한다”(진종헌 공주대 교수)는 주장이 나온다. 2차 공공기관 이전은 지역안배보다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진 교수는 기업 지방이전을 위해 “법인세나 전기요금의 지역 차등화 등 과감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했다.

‘비수도권 제조공장, 수도권 연구·개발’이라는 공간분업의 마지노선이 허물어지고 판교, 기흥에 ‘취업 남방한계선’이 그어진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수도권 입지규제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성경륭 교수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이 많이 허물어졌는데, 과도하게 완화된 수도권 입지규제를 다시 손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정부와 자치단체가 ‘사회적 임금’을 보전해주는 광주형일자리가 비수도권에 추가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비수도권은 땅값이 수도권에 비해 싼 만큼 임대주택을 충분히 지어 사원들에게 제공한다면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지역 여성 청년들의 수도권 유출 흐름을 멈추도록 하기 위해 “지역에서도 여성들이 경력 개발을 통해 ‘커리어’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메가프로젝트형 문화 기획을 지역에서 추진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했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일자리만이 아니라 조직문화, 양성평등 면에서도 지역과 농촌이 여성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방 대학을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라 지역 인력 체제를 지탱하는 중심축으로 재인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초의수 신라대 교수는 “지방 대학은 지역 청년 유출을 막는 ‘인재의 댐’ 개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지방 대학들을 연구중심대학, 교육중심대학, 평생교육·직업교육 대학 등 기능별로 재편하고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정록 전남대 교수는 “지역인재 할당제의 적용 범위도 전남 소재 공공기관이 채용 대상을 호남권 전체로 넓히는 식의 광역 선발을 통해 지역에서 고교와 대학을 나온 청년들이 지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저녁 차량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 도로를 가득 메운 채 움직이고 있다. 수도권에 치우친 국가 정책이 초래한 ‘두 번째 분단’ 상태를 해소하려면 정치가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지난달 26일 저녁 차량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 도로를 가득 메운 채 움직이고 있다. 수도권에 치우친 국가 정책이 초래한 ‘두 번째 분단’ 상태를 해소하려면 정치가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메가시티, 수도권에 대항하는 새 구심

교통인프라 연결, 균형발전 도모
문화·의료 등 ‘패키지 구축’ 필요

메가시티는 행정구역이 다른 도시들을 연결해 하나의 경제·생활권으로 묶는 ‘초광역권’을 의미한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21일자 ‘절반의 한국’ 6회에서 부산·울산·경남(부울경)에서 구체화되고 있는 메가시티 논의와 이를 위한 교통인프라 구축 필요성을 다뤘다. 정부도 지난달 14일 부울경, 대구·경북, 광주·전남, 대전·세종·충북·충남 등 4개 권역을 초광역권으로 묶어 지원하는 구상을 발표했다. 메가시티는 일부 지역의 소외 우려, 풀뿌리 자치강화론과 상충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수도권에 대항할 수 있는 광역경제권이 있어야 ‘수도권 일극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현실론에서 나온 구상이다. “도농 간 격차는 과거부터 있었지만,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부울경 같은 산업지역까지 쇠퇴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또 다른 성장 거점이 있어야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기에 차선책으로라도 메가시티를 하자는 것이다.”(정준호 강원대 교수)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메가시티에 대해 “싱가포르 같은 지역국가를 (적어도) 2개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 교수는 앵커기업의 비수도권 유치가 메가시티 성공의 관건이며, 인재들의 지역 정착을 위해 복지·문화·의료·상업 인프라를 패키지로 구축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지방에 내려가는 대기업에 택지개발권을 주고, 지역대학 아파트를 지으면 일부 물량을 사원들에게 배분하는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지역대학은 기업이 내려오는 지역에 공유캠퍼스를 만들어 산학연계 기반을 강화하고, 앵커기업에서 경륜이 있는 직원이 대학에 참여할 길을 열어주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진종헌 교수는 “메가시티가 성공하려면 동남권, 호남권 등 권역을 빨리 확정할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고, 권역 내에서도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박용철 부산대 교수는 “강원도 등 메가시티로 묶이지 않는 지역도 철도, 정주 여건, 산업 등에서 맞춤형 발전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며 “부울경 메가시티가 부울경의 요구로 시작됐듯이 다른 지역도 스스로 전략을 세워 추진력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압축도시’ 위한 설계도면 필요

거주지 흩어지면 정주 여건 퇴보
결합 개발식으로 집적도 높여야

인구 감소에 아랑곳없이 중소도시 외곽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거주지역이 흩어지면 교통·교육·의료·문화 인프라도 함께 분산되며 정주 여건은 오히려 나빠지고, 지자체들은 인프라 유지 비용이 늘어나 재정부담이 커진다. 중소도시 쇠퇴를 막기 위한 전략으로 ‘도시 압축’이 부상하고 있다. 인구와 인프라를 한곳으로 모아 집적도를 높이는 방향이다. 버스터미널 같은 교통 결절점이나 공공시설이 있는 중심지에 인구가 최대한 모일 수 있도록 유인책이 구체적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마강래 교수는 “핵심은 중소도시에도 주거 환경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라며 “신도시를 개발하더라도 원도심에 가까운 곳에 하고, 택지개발 이익을 원도심의 빈집 정비나 문화유산 보전 등에 사용되도록 하는 ‘결합개발’ 방식이 도입돼야 한다”고 했다.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선 지역 의료 시스템 구축도 필수적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공공병원 건립은 지방정부만으로 될 일은 아니기에 차기 집권세력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소도시와 거점도시 간의 연결망 확충도 필요하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중소도시는 문화, 교육 기능이 가능한 소거점을 만들고 더 큰 도시들과 네트워킹을 해야 인구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실권있는 균형발전 ‘컨트롤타워’ 구축을

‘수동적 지위’ 제약에 갇힌 지자체
정부와 협력 시스템 제도화돼야

전문가들은 수도권 쏠림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하부 단위’라는 수동적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정부가 사업목적을 정해 자치단체에 예산을 주는 구조로는 지자체가 중앙정부의 예산을 더 많이 따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지방정부는 예산을 따낸 사업을 알차게 추진하기보다 또 다른 사업을 따내는 데 힘을 쏟게 된다. 이런 구조로는 지방정부에 책임감도 기획역량도 생길 수 없다”고 했다.

정부 공모사업도 단기간에 이뤄지다 보니 기획이 치밀하지 못하고, 지역 산업기반에 대한 고려 없이 전기차, AI 등 최신 트렌드 사업을 무작정 따라하려는 폐단이 나타난다. 이상호 위원은 “사업공모를 한 뒤 심사위원들이 평가하고 끝내버리거나, 공모사업이 망하면 책임은 지역이 전적으로 지는 식이 아니라 큰 그림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그려 나가는 협력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정록 교수는 “중앙정부에서 지방으로 내려주는 예산이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데 이를 한데 모아 블록(덩어리)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자문기관에 불과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대신 실권을 갖고 균형발전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성경륭 교수는 “자치분권부 혹은 분권균형부를 만들어 부총리급 권한을 부여한다든지, 개헌을 통해 균형발전 정책을 상원이 맡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의수 교수는 내각에 지역대표장관 4명이 참여하는 영국의 사례를 들어 “서울시장만이 배석자로 참여하는 국무회의에 수도권·강원, 호남·충청, 영남(부울경+대구) 등 3개 지역 대표가 배석하도록 해 지역 정책에 의견을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책 결정에 ‘지역인지감수성’ 도입해야

지역 관점, 중요 사안에서 배제돼
미래에 중점 두고 투자 등 지원을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성인지감수성’만큼이나 ‘지역인지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건희 미술관 유치과정에서 나타났듯이 정부 위원회가 수도권에 있는 전문가들로 채워지면서 수도권 편향적인 정책 결정이 잦은 폐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론 무관한 듯 보이지만 지역적 관점이 결여된 정책들이 수도권 집중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예를 들면 입시제도, 부동산 세제, 에너지 정책 등을 설계하는 데서도 균형발전의 관점이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이 집중적으로 지적한 것은 재정 당국의 예비타당성(예타)조사 기준이다. 지방에선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해도 경제성이 기준을 넘기지 못하면 통과가 어렵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고 있는 지방에선 현재 수요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사업을 통해 미래 수요가 얼마나 창출될 수 있을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진종헌 교수는 “수도권 GTX의 경우 수십조원 사업인 데다 수도권 공간구조를 엄청나게 바꿔놓을 사업인데도 별다른 문제제기가 없지만 지방은 1조원 규모 사업만으로도 진보와 보수 모두 비판을 쏟아낸다”고 했다. 그는 “토건사업 자체에 대한 우려를 무시할 순 없지만, 수도권 쏠림이 극심한 상황에서 어떤 게 진보적이고 균형적인 것인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초의수 교수는 영국은 지역에 대한 투자 기준을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 지속 가능 발전,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젠더 등으로 세분화하고 있다면서 “지금과 같은 수도권 쏠림은 기후위기 시대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절반의 한국⑩]돈·사람 ‘찔끔’ 내려보낼 게 아니라…살고 싶게 ‘균형의 틀’ 짜라

<시리즈 끝>

■도움주신 분들(가나다순)

강현수 국토연구원장,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김유화 전국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의 전남 대변인, 남종석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성경륭 한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신우화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안무업 한림대 응급의학과 교수,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 이관후 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이기원 한림대 데이터과학융합스쿨 교수, 이병용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소통협력담당관,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 이정록 전남대 지리학과 교수,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진종헌 공주대 지리학과 교수, 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상철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


특별취재팀 배문규·최민지(스포트라이트부)박채영·문광호(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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