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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① 강원 춘천 고탄리

많은 농촌 학교들이 해마다 신입생 수를 걱정한다. 학생이 20~30명뿐인 작은 학교들은 분교나 폐교 결정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이미 전국 1184개 면 중 31곳(2018년 11월 기준)에는 초등학교가 한 곳도 없다. 초등학교가 딱 한 곳인 면 단위 농촌은 666곳에 달한다. 농촌에 사는 아이들은 다른 면으로 장시간 통학하거나, 아예 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 젊은 부부들이 농촌을 떠나게 되면 마을에는 고령의 어르신만 남는다. ‘학교의 부재’는 마을의 소멸로 이어진다.

강원 춘천 고탄리 송화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12월 9일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마당에 모여 마시멜로를 굽고 있다. 송화초 전교생 41명은 학교 수업을 마치면 이곳에 모여 저녁 7시까지 돌봄을 받는다. | 채용민 PD

강원 춘천 고탄리 송화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12월 9일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마당에 모여 마시멜로를 굽고 있다. 송화초 전교생 41명은 학교 수업을 마치면 이곳에 모여 저녁 7시까지 돌봄을 받는다. | 채용민 PD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리기 위해 주민들이 나선 지역들이 있다. 도시 아이들이 한 학기 이상 농가에서 지내며 농촌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농촌 유학’을 진행하는 마을도 있고, 도시에서 온 초등학생 가족들에게 공공임대주택과 장학금을 주는 마을도 있다. 대안학교나 혁신학교로 전환해 학생들을 유치하는 작은 학교도 있다. 농촌의 학교들은 분명 매력적이다. 농촌이라고 해서 코로나19가 피해가는 건 아니지만, 온라인 수업을 듣는 도시의 아이들에 비해 농촌 아이들은 수업에 큰 제약을 받지 않고 친구들과 뛰놀며 공부할 수 있다. 학생 수가 적다보니 교사들이 학생들의 특성을 잘 살피며 지도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있을까. 아이를 함께 돌보기 위해 주민들은 어떤 일들을 벌이고 있을까. 경향신문은 폐교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작은 학교와 농촌 마을들의 모습을 4회에 걸쳐 전한다. 먼저 지난 12월 9일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13년째 이어가고 있는 강원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를 찾았다.

강원 춘천 사북면 고탄리 전경 |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제공

강원 춘천 사북면 고탄리 전경 |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제공

■농가에서 ‘홈스테이’하는 도시 아이들

고탄리는 춘천 시내에서 북한강을 따라 차로 30분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나오는, 춘천호 인근의 농촌 마을이다. 송암·고성1·고성2·인람·가일리를 합쳐 ‘고탄 6개리’로 불리기도 한다. 고탄 6개리에는 1934년 개교한 송화초등학교가 있다. 2009년만 해도 입학생은 1명, 전교생이 20명뿐인 폐교 위기 학교였다. 고탄리 주민들은 2010년부터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도시 아이들 4명이 고탄리 농가 2곳에서 지내며 송화초에 다녔다. 농촌 유학이 활성화되고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나면서 현재 송화초 전교생은 41명(6개 학급)으로 늘었다. 이 중 11명이 도시에서 온 유학생들이다.

도시에서 온 5학년 주현과 4학년 민체는 춘천 고탄리 토박이 이석희·김화림씨 부부 집에서 살면서, 인근 송화초등학교에 다닌다. | 채용민 PD

도시에서 온 5학년 주현과 4학년 민체는 춘천 고탄리 토박이 이석희·김화림씨 부부 집에서 살면서, 인근 송화초등학교에 다닌다. | 채용민 PD

5학년 주현(12)은 2년 전 경기 성남에서 고탄리로 ‘유학’을 왔다. 주현은 고탄리 토박이 이석희(80)·김화림(73)씨 부부 집에서 살면서, 도보로 5분 정도 걸리는 송화초등학교에 다닌다. 아침 8시에 일어나 김씨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룸메이트인 4학년 민체(11)와 함께 등교한다. 아이들은 농가에서 룸메이트와 놀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는다.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한다. 김화림씨는 “두 노인네만 살다보니까 서로 얘깃거리가 별로 없었는데, 애들이 있으니까 재잘대고 노래하고 춤추고 재밌게 보낸다”고 했다. 아이들의 휴대전화는 농가가 보관하고, TV도 거의 보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둘째·넷째 주말에만 아이들에게 휴대전화를 내어준다.

“애들도 처음에는 자기 마음을 다 드러내지 않다가, 한 6개월 지나 자기 집처럼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그래. 민체는 처음 여기 와서 집에 가고 싶다고 며칠 울더니 이제는 완전히 자기 집이 됐어. 언니 주현이가 돌봐준 덕분이지. 처음에 우리 집에 왔던 아이들은 벌써 다 대학생이 됐어. 방학 때는 ‘할머니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라며 올 때도 있다니깐. 그런 게 애들 키우는 보람 아닐까.” 10여년 전 유학생으로 왔던 한 학생은 “아침이면 틀어놓으시던 라디오부터 트럭을 타고 하던 등교, 집에 돌아와 할아버지와 함께 풀던 퍼즐 게임, 허기진 시간에 내어주시던 옥수수·감자·과일, 텃밭에 심었던 작물, 뒷 언덕에 있던 흔들그네까지 정말 많은 소중한 추억들을 저희에게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편지를 써 보냈다.

‘농촌 유학생’ 주현과 민체가 지난 12월 9일 함께 사는 이석희·김화림 부부 앞에서 그동안 연습했던 춤을 보여주고 있다. | 채용민 PD

‘농촌 유학생’ 주현과 민체가 지난 12월 9일 함께 사는 이석희·김화림 부부 앞에서 그동안 연습했던 춤을 보여주고 있다. | 채용민 PD

■전교생이 함께 뛰노는 마을

‘농촌 유학’ 프로그램은 고탄 6개리 주민들로 구성된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한다. 농가들은 ‘홈스테이’를 제공하고, 협동조합은 ‘교육·돌봄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별빛사회적협동조합은 농촌유학센터와 지역아동센터를 함께 운영한다. 유학생만 돌보는 다른 지역의 농촌유학센터와 달리, 유학생과 지역 아동을 구분짓지 않는다. 이날 오후 4시, 학교 수업을 마친 송화초 학생들이 인근의 별빛사회적협동조합 건물로 하교했다. 이곳에서는 모든 아이를 대상으로 저녁 7시까지 방과후 학교를 운영하고 저녁 식사까지 제공한다.

학교에선 하지 않는 교육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외부에서 강사를 초청한다. 캐리커처, 마술, 요리, 목공, 악기, 뜨개질 수업 등이 열리는데 아이들은 자유롭게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협동조합 목장에는 ‘초롱이’와 ‘하나’라는 이름의 말 두 마리가 사는데, 아이들은 말을 타고 교감하는 ‘홀스 테라피’를 받기도 한다. 마을 어르신들은 달맞이놀이, 연날리기 같은 민속놀이를 가르쳐준다. 별빛사회적협동조합의 이순미 유학센터장은 “아이들이 차별을 느끼지 않고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송화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아이가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내 ‘말똥말똥 목장’에서 말 ‘초롱이’의 이마를 쓰다듬고 있다. 이곳에서는 농촌 유학생과 마을 아이들을 대상으로 말과 교감하는 ‘홀스 테라피’를 한다. |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송화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아이가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내 ‘말똥말똥 목장’에서 말 ‘초롱이’의 이마를 쓰다듬고 있다. 이곳에서는 농촌 유학생과 마을 아이들을 대상으로 말과 교감하는 ‘홀스 테라피’를 한다. |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송화초등학교 학생이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에서 황토를 이용한 천연염색을 해 보고 있다. |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송화초등학교 학생이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에서 황토를 이용한 천연염색을 해 보고 있다. |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이날 오후 6시, 협동조합 건물 2층에서는 아이들의 댄스 연습이 한창이었다. 주현네 팀이 팝가수 앤 마리(Anne-Marie)의 노래 ‘2002’에 맞춰 춤을 추자, 이번에는 민체네 팀이 BTS의 ‘퍼미션투댄스’ 안무를 선보였다. 민체가 “이번 크리스마스 때 무대에서 선보일 춤”이라고 설명했다. “그전에 수학학원하고 영어학원하고 논술학원, 미술학원… 학원만 5~6개 정도 다녔어요. 근데 여기에선 학원 안 가거든요. (도시 사는) 제 사촌은 학원에 많이 다녀서 숙제가 10장이 넘어요. 그래서 항상 운대요. 걔는 중학교 과정 들어갔어요. 하지만 저는 여기 있는 게 더 좋아요.”

이날 모두 네 팀이 안무를 연습 중이었는데, 지역 아동인 6학년 ‘왕언니’ 윤서(13)가 네 팀의 안무를 짰다고 주현이 설명했다. “여기는 애들끼리 연령대 상관없이 다 같이 놀아요. 도시와 달리 여기는 무리 짓거나, 왕따를 시키는 일이 없어요. 저는 4학년 때 몸이 약한 편이었거든요. 누가 괴롭히려고 하면 ‘왜 괴롭혀’라며 항상 윤서 언니가 나서요. 킹왕짱이에요.”

춘천 고탄리 송화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12월 9일 저녁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건물 2층에서 크리스마스 무대에 선보일 춤을 연습하고 있다. | 채용민 PD

춘천 고탄리 송화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12월 9일 저녁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건물 2층에서 크리스마스 무대에 선보일 춤을 연습하고 있다. | 채용민 PD

아이만 농촌에 보냈던 가족들이 귀촌을 결심하기도 한다. ‘18년차 증권맨’이었던 엄마 손신권씨(44)는 회사를 그만두고 고탄리에 집을 구해 재작년부터 5학년 시후(12)와 함께 산다. 시후는 1학년 때 이 마을에 유학을 왔다. 손씨는 “그동안 아이를 키워준 마을과 주민들이 너무 좋아서 아예 이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시후 아빠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면서 주말마다 고탄리 집에 온다.

“아이 아빠는 고탄리에 계속 있는 걸 걱정하긴 해요. 아이가 중학교에 갈 테니 이제부터라도 서울에 와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아이가 여길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저도 아이가 이곳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맘껏 노는 게 아이에게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민들을 자주 만나고 친해지다 보니 저도 이곳의 삶이 더 행복하다고 느껴요. 아이 아빠도 요즘은 ‘나도 서울 생활 그만두고 이곳에 와서 살까’라고 말해요.”

‘18년차 증권맨’이었던 엄마 손신권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춘천 고탄리에 집을 구해 재작년부터 5학년 시후와 함께 산다. 시후는 1학년 때 이 마을에 유학을 왔다. | 채용민 PD

‘18년차 증권맨’이었던 엄마 손신권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춘천 고탄리에 집을 구해 재작년부터 5학년 시후와 함께 산다. 시후는 1학년 때 이 마을에 유학을 왔다. | 채용민 PD

송화초의 교과 프로그램은 도시의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손씨는 “작은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반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을 수 있다”고 했다. “아이가 서울에서는 한글을 못 뗐어요. 여기 학교 선생님이 보더니 시후가 난독증이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이 난독증 아이 공부법을 따로 배우시고 아이를 붙잡고 가르치더니 아이가 2주 만에 한글을 뗐어요. 아이 성격도 조용했는데 여기 와서 활달해졌어요.” 시후는 처음 본 기자에게도 낯을 가리지 않고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 유학생들은 서울 가기 싫어해요. 서울은 놀 데가 없거든요. 심심하면 아무 때나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돼요. 서울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받지만, 여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여름에는 용화산 계곡으로 물놀이도 가죠.”

송화초등학교 학생들이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송화초등학교 학생들이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제공

■‘농촌 유학’이 만든 변화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의 돌봄·교육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자 귀농·귀촌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2016년 귀농한 세 아이의 엄마 박상순씨(45)는 “농사지으면서 아이들을 돌보기가 쉽지 않은데 센터에서 오후 7시까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줘서 마음 놓고 아이들을 맡길 수 있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마을 안팎에 다양한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시후 엄마’ 손신권씨는 마을 목공소를 운영하는 ‘협동조합 마리’에서 일하면서 마을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목공을 가르친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에게 작은 학교가 맞는 것은 아니다. 이순미 유학센터장은 “부모와 애착 관계가 형성되지 않거나, 분리 불안을 느끼는 아이에게는 유학 생활을 권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부모와 애착이 돼 있다면 큰 문제가 없다고 봐요. 오히려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어요. 아이들은 한 달에 두 번 집에 가는데 그때 부모와 집중해서 만나고, 사랑도 듬뿍 받고 오죠. 부모들은 그동안 아이가 많이 성장했다고 대견해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춘천 고탄리 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다. |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아이들이 춘천 고탄리 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다. |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제공

각 지역의 농촌유학센터가 진행하는 농촌 유학 캠프에 먼저 참여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지원하는 ‘농촌유학센터’는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등 전국에 29곳이 있다. 주현도 3학년 때 4박5일 캠프에 참가한 뒤 유학을 결심했다고 했다. “캠프가 너무 재밌었거든요. 여기 오면 그렇게 놀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공부는 해야 되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여기가 훨씬 좋아요.”


글 이재덕 기자, 사진 채용민 PD duk@kyunghyang.com


도시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로컬에서 다른 삶을 살아 보려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하거나, 가게를 내거나, 농사를 짓습니다.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버티컬 채널 ‘밭’(facebook.com/baht.local)은 로컬에서 어떤 삶이 가능한지를 탐구합니다. ‘서울 말고 로컬’ 연재로 나만의 밭을 일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facebook.com/baht.lo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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