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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링크) 2월 2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 뉴스레터에는 해당 주제에 대해 추가로 읽을만한 책과 글 소개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편의 글로 하나의 깊은 영감을 드리는 <인스피아>를 구독해 주세요. 혹시 링크가 연결되지 않으면 괄호 안의 주소(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07426)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혹시 ‘내 인생의 책’(구 <책읽기 365> <책읽는 경향> <오늘의 사색>)이라는 코너를 들어보셨나요? 근래 종이신문을 구경하신 분은 많지 않겠지만, 그간 경향신문에는 독특한 연재 칼럼이 있었습니다. 국밥집 주인부터 교수, 고등학생, 소설가, 연주자, 방송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영업’하는 코너였습니다. 특히 최초로 신문 1면에 책 추천 칼럼을 실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코너에는 2007년부터 15년 간 무려 3235권의,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책이 매일매일 소개되었는데요. 지난달 28일자를 마지막으로 코너의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15년 3525권...“고맙다, 인생을 열어준 책들아”)

신문 1면에 책 추천 칼럼이 실리는 게 그렇게 대단해? 싶지만, 직접 이런 지면을 보는 건 꽤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위는 대선을 12일 앞두고 후보들 간의 공방이 첨예했던 2007년 12.7일자 신문 1면 한켠에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책 소개(“평면 사진 속 고요, 일순 생각이 멎다”)가 실린 모습입니다. 아래 사진은 2012년 12월19일 대선 당일자 신문인데, 우측 하단에 <인문학의 즐거움> 책 소개가 실려있습니다.

신문 1면에 책 추천 칼럼이 실리는 게 그렇게 대단해? 싶지만, 직접 이런 지면을 보는 건 꽤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위는 대선을 12일 앞두고 후보들 간의 공방이 첨예했던 2007년 12.7일자 신문 1면 한켠에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책 소개(“평면 사진 속 고요, 일순 생각이 멎다”)가 실린 모습입니다. 아래 사진은 2012년 12월19일 대선 당일자 신문인데, 우측 하단에 <인문학의 즐거움> 책 소개가 실려있습니다.

[인스피아] 2007년 ‘신문 1면 서평’ 시작…15년 <내 인생의 책>들

이 코너의 뜬금없는 점은 단지 기자 아닌 사람들이 신문 1면에서 신간 아닌 책을 다룬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1면에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지나가는 차에도 혼자 도도하게 흐르는 실개천처럼 자기가 사랑하는 책에 대해 꽤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는 점이 진짜 이 코너의 뜬금없는 점이었죠. 마치 술병과 마른 오징어가 허공을 날아다니는 떠들썩한 축제 와중에 구석에 앉아 “술이란 무엇인가”라고 구시렁대고 있는 사람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저는 사실 기자가 되기 전엔 그닥 기사를 열심히 읽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볼 때 쓴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는 글을 좋아하는데 신문에선 그런 글들을 찾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럼에도 문득문득 신문을 거들떠볼 때 ‘내 인생의 책’이 실린 구석만은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신문 1면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자기 얼굴을 내밀고서 이런저런 책을 추천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특히, 가끔 신성한(?) 신문 1면에서 ‘진지한 책’ 말고 영 뜬금없는 책 혹은 달아오른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는 책을 추천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적어뒀다가 두고두고 좋아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죠.

매일같이 비슷한 사건사고들이 오가는 곳에서 책이 낸 작은 틈새는 썩 크고 깊은 해찰을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2007년, 처음 이 ‘1면 서평 기획’이 시작되었을 때 도정일 교수는 “독자여, 당신에게서 희망을 찾는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독자여, 당신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17대 대선(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약 1년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국민은 극단적인 분열과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풍비박산 쪼개져 있으나 정치는 이 분열을 치유할 힘이 없다. 정치 자체가 분열의 조장자이자 분열을 먹고 사는 독버섯 같은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판은 진지한 토론과 숙고 대신 막말, 욕설, 비방, 험담으로 날 새는 저열하고 잔인한 정쟁의 지옥이 되어 있다. 금년은 우리에게 대선의 해다. 우리에게도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정치문화가 필요하고 정치과정의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하다. 희망의 메시지도 그립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를 가능하게 할 궁극적인 힘은 ‘시민’에게서 나오므로 그 시민의 판단력과 자질이 또다시 요긴해지고 있다. 시민적 자질을 강화하는 첩경 중의 첩경은 누가 뭐래도 책 읽기이고 독서를 통한 숙고의 능력 키우기다.”

마치 글 위에 찍힌 날짜만 바꾸면 지금 당장 나온 글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돈데요.

오늘 글에선 15년간 번잡한 신문 1면 구석에 앉아,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심지 굳게 책을 펴들었던 사람들의 소중한 해찰들을 모아보았습니다.

■책과 정치적 시간의 교차점

2007년은 17대 대선이 있던 해였습니다. 이명박 당시 후보는 2007년 12월 19일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도 일찍부터 이런저런 합종연횡이 날마다 지면에 올랐는데요.

17대 대선을 약 10개월 앞둔 2007년 2월 1일자 신문엔 박제가의 <궁핍한 날의 벗>(▶박제가 ‘궁핍한 날의 벗’)이란 책이 소개되었습니다. 김탁환 교수가 번잡한 가운데서 ‘한결같음’이 그리울 때 펼쳐든 책입니다. 김 교수는 책을 소개하며 이렇게 운을 뗍니다.

“합종연횡의 계절이 왔다. 어제의 적군이 오늘의 아군으로, 오늘의 벗은 내일의 원수로 바뀐다. 중요한 것은 권력을 잡는 것이며 12월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변신도 받아들일 태세다. 유권자는 혼란스럽다. 나 외에 과연 누구를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김탁환, 「박제가 ‘궁핍한 날의 벗’」,경향신문, 2007.2.1

<궁핍한 날의 벗>은 18세기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등이 “함께 분노하고 함께 취해가며” 어려운 정치 상황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버티게 만드는 힘”을 충전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궁핍한 날의 벗”이 되주어었지만, 2007년의 한국에선 집단 탈당 사태 등으로 인해 시국이 혼란했습니다.(▶“넓히자” “말자...한나라 울타리 논쟁)

이런 상황 속에서 200년 전 조선시대 실학자의 산문집을 꺼내든 것은 뜬금없다기보다는, 되레 시의적절하다고 할만 했습니다.

위는 2007년 12월 26일자 1면에 <옥중서한> 책 소개가 실린 모습입니다. 이날 1면엔 ‘경향신문 선정 올해의 인물’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결정됐다는 내용의 기사가 커다랗게 실리기도 했네요. 아래는 2007년 2월 1일자 1면에 <궁핍한 날의 벗> 책 소개가 실린 모습입니다.

위는 2007년 12월 26일자 1면에 <옥중서한> 책 소개가 실린 모습입니다. 이날 1면엔 ‘경향신문 선정 올해의 인물’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결정됐다는 내용의 기사가 커다랗게 실리기도 했네요. 아래는 2007년 2월 1일자 1면에 <궁핍한 날의 벗> 책 소개가 실린 모습입니다.

[인스피아] 2007년 ‘신문 1면 서평’ 시작…15년 <내 인생의 책>들

한편 그해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김상봉 교수는 12월 26일자 신문에서 서준식의 <옥중서한>(▶서준식 ‘옥중서한’)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더러는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낙심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너무 옹졸하고 소심한 것 아닌가? 그도 한 때는 한일회담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가 반년간 감옥살이를 한 운동권 출신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 해서 민청학련 사형수가 철도공사 사장이 되어 여 승무원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것보다 더 나빠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자칭 진보정권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까지 성사시켜 놓았으니, 새 대통령이 기왕이면 북한까지 끌어들여 송두리째 미국의 경제 식민지로 만들면 한반도에 평화도 오고 살기도 좋아지겠지. 6·3이든, 민청학련이든, 386이든, 어차피 이 나라는 왕년의 운동권들이 돌아가며 집권하는 나라이니, 대한민국은 계속 진보하고 발전할 것이다.”-김상봉, 「서준식 ‘옥중서한’」, 경향신문, 2007.12.26

얼핏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반대자들을 ‘옹졸’한 이로 모는가 싶더니, 그의 글은 “사이비 진보” 인사들에 대한 날 선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는 반성과 비탄의 어조로 서평을 끝맺습니다. “어쩌면 서준식이 비판한 속류 진보주의자들이 바로 우리가 아닌가? 우리는 저마다 기술과 효율과 나름의 명분을 따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2012년 말엔 18대 대선을 하루 앞둔 12월 18일자 1면에서, 당연증 공인회계사는 아나톨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을 소개합니다.(▶자본주의 4.0)

“5년마다 돌아오는 대선철이다. 나 같은 소시민으로서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부푸는 시절이기도 하다. 지난 5년은 국내나 해외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로 인해 그렇게 행복감을 느끼기 힘든 시절로 기억된다. 그렇기에 5년마다 품는 기대감이 이전보다 더 절박하다. 그렇더라도 내 자신이나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은 냉정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아직도 갈 길을 못 찾고 있는 글로벌 경제 환경도 그러하다. 어렵게 버티고 있는 서민들의 삶이 새로운 5년 동안에는 희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희망을 가능케 할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올바른 모색이 절실한 이유다.”-당연증, 「자본주의 4.0」, 경향신문, 2012.12.18

당장 대통령이 누군지를 가려내야 하는 상황에서 신문에서 금융위기와 체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다소 뜬금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문 1면에서 항상 급한 것들만 챙겨묻다보면, 크고 중요한 일들은 영영 거들떠보지도 못한 채 지내야할 수 있습니다.

2017년 초유의 촛불집회, 탄핵, 대선 국면을 앞두고도 독서는 이어졌습니다.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는 2017년 4월 26일자 지면에서 베르다이에프의 <노예냐 자유냐>를 소개합니다.

그는 “대선 정국에서 자주 언급되는 적폐란 상전과 노예를 확대 재생산시킨 모든 구조”라고 말하며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단순하게 창조적으로 살면서 세상과 맞서야”한다고 강조합니다.(▶노예냐 자유냐 |N 베르다이에프)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서, 적폐를 지닌 이들을 상전으로 ‘모시는’ 걸 거부해야 한다는 거죠.

정치인 필자의 경우, 책을 통해 그의 정치관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래리 바텔스의 <불평등 민주주의>를 추천하며 “사회적 빈곤층이 자신의 경제적 상황과 정책 선호도를 일치시키지 못하는 건 정치시스템 일부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며 “원인도 결과도 정치가 문제라면 해법도 결국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불평등 민주주의 | 래리 M. 바텔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정치가 “어떤 대의에 대한 헌신 없이 개인적 영달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순결한 신념만을 추구한다면 정치영역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며 양자의 현실적 균형을 짚었습니다.(▶소명으로서의 정치 | 막스 베버) 이 밖에도 강금실, 안철수, 원희룡 등의 정치인들이 ‘내 인생의 책’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들은 상대 정당에 대한 날 선 공격 대신, 정치인들의 ‘속 깊은 말’을 신문 1면에서 찾아볼 수 있었죠.

신문 1면이라는 번잡하고 치열한 공간 속에서도 어떤 해찰과 궁리들은 당대의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씨실과 날실로 엮여갔습니다.

■‘정치’만 정치인가?

사실 위에서 다소 딱딱한(!) 이야기를 모아둬서 그렇지, 3000여편의 책 소개들 가운데선 정치적인 이야기보다는 ‘해찰’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꼭 정치나 선거, 정당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책을 통해 세상과 함께하고 세상과 맞서는 방법을 즐겁게 궁리해왔습니다.

“이 코너에 시국을 고려하지 않고 진짜 인생 책을 소개하고 있다”라고 아예 초장부터 선언해버린 고은영은 <IMF키즈의 생애>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IMF 키즈의 생애 - 안은별)

“나는 코로나 세대란 말을 쓰지 않는다. 그것은 돌봄 책임을 바이러스와 개인에게 미루는, 애를 대충 키우는, 훼손을 용인하는 교활한 방식. IMF 때처럼 말이다. 양육과 교육이 ‘사회질서를 결정하는 현장’이 아닌, 수습 대상인 이상 그 방식은 계속되겠지. 우리는 이제 양육자 세대가 됐다. 얘들아 정신 똑바로 차리자. 우리는 우선순위를 바꾸고, 책임을 져야 해. 그게 우리가 새 이름을 갖는 유일한 방법이야.”-고은영, 「IMF키즈의 생애-안은별」, 경향신문, 2021.8.19

IMF 당시 어린시절을 겪은 필자는 ‘XXX키즈’라는 말이 갖는 무책임함에 주목합니다. 사회는 어떤 세대에 쉽사리 이름표를 붙입니다. 역대급 코로나를 맞아 사회는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또 ‘코로나 키즈’란 이름을 붙였죠. 이는 무책임한 일입니다. 왜냐면 어른들에겐 단지 지나가는 힘든 시절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어린이들에겐 “당신이 설계될 즈음의 공기. 당신을 크게 훼손했거나, 당신이 쟁취한 사건일 수도”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IMF키즈’인 필자는 매주 진행하는 초등학생 문화예술 수업에서 ‘코로나키즈’에게 당부합니다. 우리가 남에게 받은 이름으로 살지 않으려면 우리가 우리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요.

고은영은 ‘IMF키즈’와 ‘코로나키즈’라는 남이 붙여준 이름을 넘어 스스로의 이름을 찾기 위해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한다고 당부합니다. 출처 경향신문

고은영은 ‘IMF키즈’와 ‘코로나키즈’라는 남이 붙여준 이름을 넘어 스스로의 이름을 찾기 위해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한다고 당부합니다. 출처 경향신문

어떤 책은 읽어내려가는 과정이 곧 정의로운 용기를 내는 과정입니다. 강은미는 파커 J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펼쳐들면서 우리 사회의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상상했습니다.(▶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파커 J 파머)

“한국 사회가 최근 겪고 있는 수많은 사건은 절망과 분노에 빠져 정치를 혐오하고 사회를 저주하도록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비통한 자들(the brokenhearted)’을 그대로 해석하면 ‘마음이 부서진 자들’이다. 마음이 부서져서 흩어져 버리는 게 아니라오히려 깨져서 활짝 열린 사람들이 정치의 주축을 이룬다면,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자비로운 세계를 위해 서로의 차이를 끌어안을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럴 때 우리의 힘을 더 용기있게 사용할 수 있다.”-강은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파커 J 파머」, 경향신문, 2020.12.4

용기의 바통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내 인생의 책’으로 꼽는 유쾌한 시인의 손으로 이어집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 가운데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아서’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집어들게 되었다고 선언하며 글을 시작하는(▶지하생활자의 수기 - 도스토옙스키) 성기완 시인은 책 속 한구절을 옮겨적습니다.

“2×2는 4식의 수학이 내 마음에 안 드는 이상 자연율이니 수학이니 하는 게 나한테 무슨 상관이냐 말이다! 물론 나는 이마빼기로 이 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만한 힘은 내게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결코 이 벽과 화해하지는 않겠다.”

어떤 잔인함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어떤 이들은 그 잔인함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이득을 얻고 자신의 나쁜짓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한편 그 현실을 무너뜨릴 수는 없어도 화해만큼은 하지 않겠다고 결연하게 다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5년간 역사의 구비구비에서 누군가의 얼굴로 소개되었던 수많은 책들을 훑어보는 일은 분명히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지는 일입니다만, 사실 그냥 좀 웃긴 대목도 많습니다. 왜냐면 책과 사람과의 만남은 가지각색이며, 조금은 운명적이고도 재미난 인연에 의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책 소개들을 훑어보다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린 몇 구절을 옮겨 봅니다.

“대학에서 생화학과 유기화학을 전공했지만 이건 모두 종로학원 수업의 확장에 불과했다. 화학은 주기율표에서 시작해서 주기율표로 끝난다.”

-이정모, 「사라진 스푼-샘 킨」, 경향신문, 2016.9.20(▶링크)

“<미국의 송어낚시>는 국내에서는 수난을 겪은 비운의 책이었다. 번역서의 제목만 보고 낚시코너에 진열한 서점 직원 탓에 책이 전혀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성곤, 「미국의 송어낚시-리처드 브라우티건」, 경향신문, 2016.6.22(▶링크)

“선친에게서 선물받은 이 책은 서가에 꽂힌 채 나를 노려보곤 했다.”

-류동민,「경제학원론-도미즈카 료조」, 경향신문, 2017.5.1(▶링크)

이 밖에도 “100권 산 책”(▶링크) “책을 읽으면서 ‘토 나온다’는 느낌이 뭔지를 알려준 책”(▶링크) 등으로 ‘내 인생의 책’을 거론한 책 덕후들의 기발한 소개에 놀라고 말았는데요.

만약 제가 ‘내 인생의 책’ 코너에 글을 쓰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더 웃긴 책으로 얼마나 더 절묘한 도입부를 쓸 수 있었을까를 잠깐 궁리해봤습니다. 그런데 ‘책을 핑계로 어떤 개그를 쳐볼까’라는 고민 이전에 ‘무슨 책을 고를까’를 먼저 떠올려보니 이미 남이 추천한 책이 3000여권이나 쌓여버린 마당에 앞선 책을 밟지 않는 것만으로도 꽤 큰일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재 회차가 뒤로 갈수록 책 선정에 고민이 깊었을 책 덕후분들의 노고에 심심한 위로와 감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맺음말

오늘 글 내용을 정리하면서 수많은 책들 속 작은 이야기들을 살펴보다보니, 의식했던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인스피아를 쓸 때 ‘내 인생의 책’같은 편지를 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신문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때로 소설책을 읽었다가 시집을 읽었다가, 역사책을 읽었다가, 그러면서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선 아주 눈을 떼지 않고서요.

아니, 어쩌면 책을 보는 건 현실을 더욱 성실하고 치열하게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즉 그 생활은 어떤 틀에 박혀 있다. 그 사람과 접촉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극히 소수의 친구들에 국한되며, 보고 듣는 것은 거의 신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뿐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 감금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러나 한 번 책을 손에 들기만 하면 사람은 곧 별천지에 들어가게 된다. 만일 그 책이 양서라면 독자는 곧 세계 인류의 이야기꾼의 한 사람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꾼’은 단지 재미난 오락거리를 들려주는 이를 일컫는 것만은 아닙니다. 책을 펼친다는 것은 곧 수십년 전 치열하게 살았던 혁명가의 목소리와 만나거나,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와 생김새는 다르지만 같은 문제에 신음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와 만나는 것이기도 하죠. 책은 평소 나와 비슷비슷한 사람들만이 둘러싸고 있는 우물에서 단번에 벗어나, 나보다 아픈 타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기회를 줍니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책을 펼쳐든다면, ‘책 속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 얘기나 탁상공론이 아닌 ‘현재를 바꾸는 힘’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문광훈 교수는 “한 사회의 ‘마음 전체를 부드럽게 하려는(humanize)’ 일은 철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면서 “오히려 건전한 사회란 지배적 물결이 무엇인건 적어도 한쪽에서는 예술과 철학의 얘기가 멈추지 않는 곳”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매일 정신없이 돌아가고 사람은 죽고 죽이고, 서로 싸우고 나쁜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은 어찌보면 시민-독자들이 뜬금없는 책을 펼쳐보는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볼 수 있고, 과거로부터 교훈을 길어낼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런 딴짓의 공간을 만들어놓는 여백이 여전히, 아니 지금이야말로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딴짓답게 가끔은 그냥 시시껄렁한 농담도 해가면서요.

“어쩌면 우리 인류는, 지금 미국 사람들이 그러하듯, 3백년 전에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릅니다. 조지 W 부시는 영국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전쟁에 대한 책들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영국인들의 경험으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길어내지 못했고, 자신의 군대를 사지로 보낸 거지요. 만일 히틀러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대해 공부했더라면, 그곳에 발을 내딛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았을 겁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모스크바에 이를 수 있기에는, 그곳의 여름은 너무도 짧다는 사실을 알았겠지요.”-움베르트 에코-장클로드 카리에르 대담집, <책의 우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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