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하사 떠난 지 1년…그의 승소판결이 남긴 것은?

조해람 기자
변희수 하사가 2020년 1월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군의 강제 전역 조치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눈물을 흘리며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희수 하사가 2020년 1월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군의 강제 전역 조치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눈물을 흘리며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랜스젠더 군인의 성적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고 전역처분한 군의 처분은 위법하다.”

지난해 10월7일, 대전지방법원 행정2부는 군 복무 중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 변희수 하사를 강제전역시킨 군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법원 판결에 따라 전역처분은 취소됐고 법무부는 육군에 항소포기를 지휘했다. 트랜스젠더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중요한 판례임에도 정작 당사자인 변 하사는 승소의 기쁨을 맛볼 수 없었다. 그는 소송이 시작되기 한 달 전인 2021년 3월3일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변 하사 1주기를 앞두고 변 하사의 전역처분 취소 소송 승소판결의 의미와 과제를 짚어보는 토론회가 16일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법원의 전역처분 취소 판결이 트랜스젠더 군인의 인권 보장에 중요한 주춧돌이 된다는 점에 동의했다. 다만 법원이 변 하사를 ‘여성’으로만 판단하고 ‘성소수자 차별’ 자체를 두고는 명시적 판단을 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판결은 경향신문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선정한 ‘2021년 최고의 디딤돌 판결’로도 뽑힌 바 있다.

(관련기사▶올해 최고의 디딤돌 판결은 '변희수 하사 전역처분 취소 판결')

1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로 ‘변희수 하사 전역처분 취소소송 판결의 의미와 과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군인권센터 제공

1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로 ‘변희수 하사 전역처분 취소소송 판결의 의미와 과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군인권센터 제공

법원의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법원이 변 하사 사망 이후 유족의 소송수계를 인정하며 “성전환 수술 후의 피해자들에게 이 사건과 같이 위법한 처분이 반복될 위험이 있다”고 한 점이다. 변 하사 건 소송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 같은 비극의 반복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변 하사 측을 대리한 김보라미 변호사는 “성소수자들의 사회적 약자로서의 지위와 스스로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워 피해가 숨겨지는 사정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사회적 약자로서의 지위를 고려한 점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두 번째는 변 하사의 성적 정체성을 여성으로 판단한 점이다. 법원은 변 하사는 성전환을 마친 여성이라 여성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군이 그에게 남성 군인 대상의 심신장애 판단 기준을 들이대 강제전역시킨 것은 위법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술에 이른 경위와 회복과정, 성정체성의 인식 여부 등 5가지 구체적인 기준을 적시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변호사는 “전역처분 당시 변 하사는 법적 성별정정을 받기 전이었지만, 개인의 성정체성은 법적 성별과는 무관하게 형성되고 존재한다”며 “성정체성에 따른 차등 대우에 정당한 근거가 없다면 그 사안에서는 당사자의 성정체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번 판결은 그런 취지에서 이뤄진 판결로 의의가 있다”고 했다.

법원이 변 하사가 성소수자로서 당한 차별을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 변호사는 “판결에서는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쟁점으로 판단하지 않고 입법적, 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봤다”며 “헌법 등 현행법 기준으로도 차별적 조치라는 점이 적시됐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트랜스젠더 누구나 자신의 성정체성을 존중받고 이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권리로 보장되도록 제도와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이번 판결에 따라 국가가 해야 할 과제”라고 했다.

성소수자를 포함해 군대 내 폭력에 취약한 소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며 지난해 5월 숨진 고 이예람 공군 중사의 아버지는 “변 하사는 저희 예람이와 같이 피해 소수자”라며 “2차~3차 피해를 차단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으면 이런 괴로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 중사 사건의 경우 성고충상담관이 역할을 하지 못했던 지점이 있었고, 변 하사의 경우 수술 전 관련 절차를 모두 밟았음에도 그 이후 상담이나 전역심사 등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지점이 있었다”며 “두 사람이 죽음을 선택한 개연성이 연결된다”고 말했다.

변 하사는 2017년 3월 육군 부사관으로 임관해 2019년 11월 부대의 허가 하에 성전환수술을 받았다. 육군은 그의 성전환을 심신장애로 판단하고 2020년 1월 그를 강제전역시켰다. 같은 해 8월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변 하사는 이듬해 3월3일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변희수 전 하사(가운데)가 2020년 8월1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전역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변희수 전 하사(가운데)가 2020년 8월1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전역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관련기사▶‘강제 전역’ 성전환 부사관 “성별 정체성 떠나 나라 지킬 기회 달라”)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