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근로공시’ 강화…고용·임금 불평등 구조 개선책은 없어

유선희 기자
<b>“여가부 폐지 공약 철회를”</b>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열린 성평등 정책 강화 요구 선언문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공약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가부 폐지 공약 철회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열린 성평등 정책 강화 요구 선언문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공약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한 노동환경 강조하면서
임금격차 공개는 언급 안 해

새 정부 여가부 폐지 의지에
성평등 컨트롤타워 부재 우려
“결국 경제불평등 심화” 지적

성범죄 무고 가중처벌 신설도
피해자 더 움츠리게 만들어

“성별 불평등 원인 분석해서
시스템 구축 등 대책 세워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성별 갈라치기와 젠더 갈등을 부각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윤 당선인은 당선 이후 “젠더, 성별로 갈라치기 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당장 여성가족부 폐지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여성 배제와 성평등 정책의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윤 당선인은 또 “성범죄와의 전쟁”을 약속하면서도 ‘성범죄 무고 조항 신설’을 앞세우면서 성범죄 피해자들의 신고를 더 위축시키고 입을 막을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결혼과 육아 등을 이유로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여성들의 ‘구조적인’ 고용 불평등에 대한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젠더 정책이 집권 내내 분열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국정을 이끄는 것이 윤 당선인의 주요 과제가 됐다.

■여가부 폐지 기조 재확인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단 일곱 글자로 올렸던 ‘여성가족부 폐지’는 그대로 대선 공약이 됐고, 차기 정부의 국정과제가 됐다. 여성계에서는 “젠더 공약은 여가부 폐지밖에 없다”는 냉소 섞인 반응이 나온다. 윤 당선인은 당선 후에도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않았느냐”고 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공식 출범 이후에도 추진 의사를 거듭 밝히고 있다.

특히 인수위원 중에는 여성정책 경력을 갖춘 인사가 전무하다. 인수위 전문·실무위원에 여가부 공무원은 한 명도 없다. 지난 25일 정부 부처 중 가장 후순위로 이뤄진 여가부의 인수위 업무보고는 단 30분 만에 끝났다. 인수위는 여가부 업무를 쪼개 여러 부처로 나누거나 다른 조직을 신설해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가부는 2001년 1월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라는 이름으로 신설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6월 보육과 가족 업무를 총괄하는 ‘여성가족부’로 조직을 확대했다.

여가부 폐지를 꺼내든 이명박 정권 때 여성부로 조직을 축소했다가 2010년 3월 다시 여가부로 개편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양성평등가족부로 변경을 시도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국내외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성평등 정책 추진기구가 설립돼 있는 국가는 194개국이다. 2015년 대비 3개국, 2008년 대비 24개국 늘었다. 조직 형태는 우리나라와 같이 독립부처(부·청) 형태가 160개국으로 가장 많다. 194개국 중 기구 명칭에 여성이 포함된 국가는 70개국, 젠더는 22개국, 성평등은 8개국 등이다. 여성이 포함된 기구 명칭은 2015년(84개국) 대비 줄었다. 이는 국가 전반에 젠더 차원의 관점이 강조됨에 따라 여러 분야와 접목된 기구를 활용해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성계는 컨트롤타워 없는 성평등 정책은 후퇴할 것이라 우려한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여가부에서 하던 업무를 다른 부처에서 진행하면 일이야 되겠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고, 정책에 젠더 관점을 반영해야 할 필요성을 말할 때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성평등 정책 추진체가 있다는 건 국가가 성평등 의제를 국가 정책, 어젠다화한 거다. (여가부 폐지는) 그걸 안 하겠다는 것으로, 세계적 흐름과도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명칭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기능을 추가하거나 뺄 수도 있다. 다만 그 논의를 개방적·발전적으로 하자는 것인데, 폐지는 발전적 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정현백 전 여가부 장관은 “역사적으로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김대중 대통령 때 여가부를 만들어 여기까지 온 건데 이를 무효화하고 각 부처에서 성평등 혹은 젠더 정책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에 불과하다”며 “성평등 정책 후퇴는 성별 임금격차 등 경제불평등의 심화”라고 했다. 정 전 장관을 포함해 8000여명이 이름을 올린 ‘성평등 정책 강화를 요구하는 여성과 시민모임’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담부처의 총괄과 조정이 없는 개별부처의 성평등 정책은 부처 내에서 주변화되거나 고립되며, 특히 지방정부의 성평등 노력을 견인해 내기 어렵다”며 “성평등 정책을 전담할 정부 부처는 필요하다”고 했다.

당장 윤 당선인이 양성평등 정책으로 내놓은 양육비 이행강화조치는 담당 부처가 여가부다. 여가부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2015년부터 양육비 이행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이혼·미혼 한부모 지원과 함께 양육비 이행 강화방안을 모색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들의 명단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또 지난 17일부터 출국금지 요청 양육비 채무액 기준을 당초 5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강화하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출국금지 요청 양육비 채무기준을 낮춘 것은 윤 당선인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여가부의 2020년 예산 지출내역을 보면 총 지출액 중 87%가 국고보조금으로, 한부모가족 지원을 포함해 아이돌봄이나 청소년 안전망 구축, 여성경제활동 촉진지원 등에 쓰였다. 지출된 국고보조금 예산 중 70% 정도는 한부모가정이나 학교밖 청소년, 다문화가족,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등으로 사용했다. 여가부 폐지를 놓고는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다.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1일 SNS에 “여가부 폐지라는 공약, 다시 들여다보십시다”라며 “차별, 혐오, 배제로 젠더의 차이를 가를 게 아니라 함께 헤쳐나갈 길을 제시하는 게 옳은 정치”라고 썼다.

■‘성범죄와의 전쟁’ 한다면서…

윤 당선인은 성범죄와 관련해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하고, 교제폭력(데이트폭력)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했다. 권력형성범죄는 은폐 방지 3법을 제·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피해자 지원에 대한 공약도 발표했다. 권력형성범죄, 디지털성범죄,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범죄 등 5대 폭력 범죄에 대한 단계별 통합 대응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범죄 무고 조항 신설’ 공약을 내세웠다. 형법상 무고죄 처벌 조항이 있는데 별도 조항을 둬 가중처벌하겠다는 것인데, 피해자들을 지원·보호하기는커녕 침묵하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당선인은 지난 2일 마지막 TV 토론회에서 “성범죄를 세게 처벌하도록 상향하니까 무고도 거기에 맞춰 상향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무고죄 강화는 성범죄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것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2012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성폭력 범죄는 실제 사건의 8.4%만 경찰 신고로 이어졌다. 폭행 사건 신고율(40.5%)과 비교해 크게 낮았다. 다른 범죄와 달리 피해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운 분위기와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정작 성폭력 사건에서 무고로 고소한 사건 10건 중 8건은 증거 부족으로 불기소 처리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대검찰청이 성폭력 무고 사건 통계를 내 분석한 결과, 2017~2018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자가 피해자를 ‘무고’로 역고소한 건은 824건이다. 이 중 불기소 처리된 사건은 693건(84.1%)에 달한다. 기소된 사건 중에서도 15.5%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

대법원은 2019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불기소 처분이나 무죄판결을 받았더라도, 고소내용을 적극적으로 허위로 판단해 고소인을 무고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 ‘진정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점 및 신고에 이르게 된 경위 등에 관한 변소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상담을 진행한 내용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불기소 결정 이후 피고소인의 9.8%가 역고소를 진행했다. 역고소 하겠다고 협박한 경우도 3.9%로 나타났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자가 침묵하도록 오히려 역고소로 무고죄가 악용되는 사례들이 많다”며 “성범죄 무고는 다른 범죄의 무고와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협박의 도구로도 사용되는 성폭력 무고죄는 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성폭력 무고죄 공약은 폐기돼야 한다”고 했다.

■구조 직시 않고 “공정한 노동”

윤 당선인은 공정한 노동환경 구축을 위해 성별근로공시제도를 양성평등 정책으로 내세웠다. 채용 단계부터 근로, 퇴직 단계까지 성비를 공시하겠다는 공약이다. 500인 이상 기업부터 자발적으로 참여를 유도하겠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2014년부터 3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고용형태공시제를 시행해 남녀 근로자 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채용·퇴직 등 각 단계별 정보를 공개하진 않는다.

윤 당선인은 성별근로공시는 공약에 담으면서도 임금격차 공개에 대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고용 불평등 대책과 관련한 공약이 없는 것 역시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윤 당선인은 후보시절 “구조적인 성차별이 없다”고 했고, 당선 후에는 “어느 정도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개별적인 불공정 사안들에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강력하게 보호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여성의 고용지표는 구조적인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결혼과 육아 등의 이유로 경력단절을 경험하면서 30대 중·후반 여성고용률이 떨어져 ‘M자’ 곡선을 보인다. 20대 중·후반부터 40대 중·후반까지 굴곡 없이 상승하는 남성고용률과 상반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여성고용률은 국내 남성고용률과 같은 곡선을 보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통계청 자료를 통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여성들의 경력단절 사유는 2014년 이후 줄곧 육아와 결혼이 1, 2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육아가 경력단절 이유라는 응답 비율이 40%를 넘어선 것은 2020년이 처음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여성의 경제활동 복귀가 더욱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유리천장 지수’를 집계한 결과 한국은 지난해 조사대상 29개 나라 중 꼴찌다. 2016년부터 연속 최하위로, 가부장적 문화가 상대적으로 강한 편인 터키(27위)보다도 낮다. 세부적으로 보면 한국은 성별 간 임금격차가 31.5%에 달해 꼴찌(29위)였고, 관리직 여성 비율은 15.6%로 28위다. 주요 상장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도 8.7%(29위)로 한국이 가장 낮다.

여가부가 지난달 발표한 국가성평등지수는 전년보다 1점 ‘찔끔’ 상승했는데, 국회의원이나 4급 이상 공무원 등 의사결정을 하는 분야에서의 성비 불평등은 여전히 낮았다. 문재인 정부 4년간 공공부문의 주요 의사결정 영역에서 여성 참여율이 상승했지만,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뒤떨어진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성평등 척도를 보는 데에 중요한 것은 임금이다. 경력단절로 발생한 공백은 이후 고위직에서 차지하는 여성 비율로 연결되고, 이는 성별 임금격차를 벌리는 요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임금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공개하기 부담스럽다면 임금격차 비율이라도 공개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이미 주권상장법인은 금융감독원 다트, 공공기관은 알리오, 지방공사와 공단은 클린아이 사이트를 통해 임금정보가 공개돼 있다. 임금공시제 플랫폼을 구축해 정보를 연계하는 방법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임신과 육아는 여전히 여성들 근로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육아휴직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단계별 성별근로공시와 임금격차 공개 등 시스템 구축을 통해 노동시장에서 겪는 성별 불평등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토대로 활용하길 바란다”고 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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