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족들 “국민 안전 위해 국가는 뭘 했나, 답하라”

윤기은 기자

첫 입장 발표

<b>평생 가슴에 품고</b> 이태원 핼러윈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희생자의 사진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문재원 기자

평생 가슴에 품고 이태원 핼러윈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희생자의 사진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문재원 기자

희생자 영정 안고 기자회견 “정부 총체적 안전불감증에 의한 간접 살인”
윤 대통령 진심 어린 사과·유족과 생존자 소통 공간 등 6가지 공식 요구

“억장이 무너지는 원통함에 가슴 치며 통곡해보지만 눈물 채운 가슴에 그리움과 아련함이 가득하구나. 네가 태어나 아빠 가슴에 처음 안겼을 때 따스했는데 재가 되어 따뜻해진 너를 가슴에 안고, 너를 보내러 가는 버스 안에서 자주 안아주지 못한 게 얼마나 후회됐는지. 이승에서의 모든 고통, 아픔, 슬픔 모두 버리고 힘내서 잘 가거라. 우리 딸이어서 너무 고마웠다. 사랑한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유족들은 22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사 유가족의 첫 공식 기자회견이었다.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이 시작되자 회견장은 유족들의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희생자 이상은씨(25)의 아버지 A씨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읊었다. “미국 공인회계사에 붙어서 ‘아빠, 나 합격했어’ 말하는 네 목소리를 듣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널 보낸 날 너의 휴대폰으로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회사에서 좋은 소식의 문자가 날아왔는데 넌 갈 수가 없구나.” A씨는 “국가에 묻고 싶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가 뭘 했는지 이제 답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희생자 이남훈씨의 어머니 B씨는 “새벽 5시30분이 되면 (휴대전화에서) 출근 알람이 여전히 울려.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 알았다면 더 안아주고 더 노닥거려줄걸. 사랑한다고 매일 말해줄걸. 얼굴 한번 더 만질걸”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이씨의 사망진단서를 들어보인 B씨는 “사망 일시 ‘추정’, 사인은 ‘미상’이라고 쓰였다. 우리 가족은 아들이 죽은 원인을 이제 알아야겠다”며 흐느꼈다. 그러면서 “어떤 순간 죽음에 이르렀는지, 누가 도와줬고, 심폐소생술은 받았는지, 이송 중 사망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냐”고 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온 희생자 김인홍씨의 어머니 C씨는 외국 국적인 아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국내 대학 어학당에 공부하러 왔다가 변을 당했다고 했다. C씨는 “아들 사망 시각 기재와 관련한 공증을 받아야 했는데, 그 절차를 해결하는 데 6일이 걸렸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유족들은 인파가 몰릴 조짐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한 정부와 정부 관계자들을 비판했다. 희생자 송은지씨의 아버지 D씨는 “참사 4시간 전 오후 6시34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 ‘통제해야 한다’ ‘숨쉬기 어렵다’는 112신고 전화가 빗발쳤지만 경찰은 ‘특이사항 없음’으로 상황 종료했다”며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안전불감증에 의한 간접 살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거짓말이나 일삼고 경찰, 소방 인력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떠벌린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보고받은 적 없다고 일관하는 용산구청장 박희영, 용산서장 이임재, 112치안종합상황실장 류미진 등에게 꽃다운 우리 아들딸의 생명이 꺼져갈 때 뭐 했느냐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참사 희생자인 배우 이지한씨의 어머니 E씨도 “이 참사는 초동 대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어난 인재이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사건”이라고 했다. E씨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E씨는 “158명 청년을 구할 수 없다면 5000만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나”라고 편지에 적었다.

참사 유족들의 요구를 수렴하는 과정이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 이민아씨(25)의 아버지 이종관씨는 “참사 이후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유족들 모임 구성, 심리적 안정을 위한 공간 확보도 없었다. 사고 발생 경과 내용, 수습 진행 상황, 피해자의 기본 권리 안내 등 기본적 조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참사와 관련해 가장 공감하고 서로 위안받을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유가족”이라며 “장례비·위로금은 그렇게 빨리 지급하면서, 정작 우리가 필요로 한 유족이 모일 공간은 참사 24일이 넘도록 마련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또 “희생자 명단 공개 문제로 갑론을박하게 만든 것도 결국 유족이 만나는 공간을 (정부가) 제공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고 했다.

이날 참사 희생자 34명의 유족은 윤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 부실 대응 책임자 조사와 문책, 진상·책임 규명 과정에 피해자 동참, 유족 및 생존자 간 소통 기회 마련, 희생자 추모시설 마련, 참사의 정부 책임 공식 발표 등 6가지를 정부에 공식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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