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마다 ‘시스템 미작동’…참사 때 ‘국가는 뭘 했나’ 논란

김송이 기자

① 안전불감증

<b>이태원 참사 희생자 영정 위에 놓인 핫팩</b> 전국에 한파경보가 내려진 18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영정에 핫팩이 놓여 있다. 추운 날씨 속에도 시민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권도현 기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영정 위에 놓인 핫팩 전국에 한파경보가 내려진 18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영정에 핫팩이 놓여 있다. 추운 날씨 속에도 시민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권도현 기자

80년 만의 기록적 8월 폭우에
신림동 반지하 등 ‘약자’ 덮쳐
태풍 힌남노 호우에 8명 사망
이태원 참사에선 총체적 허점

예견된 사고도 못 막은 ‘인재’
정부, 사고 후에 후속책 불구
“재난 체계 작동 않는 게 문제”

올 한 해 한국 사회는 대형 산불부터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 물류센터 화재, 이태원 참사까지 재난이 끊이지 않았다. 충분히 예견 가능한 사고였지만 “이번에도 괜찮을 것”이라는 안전불감증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 전문가들은 “사후약방문 대신 이미 만들어둔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여름에는 80년 만의 기록적 폭우로 침수 피해가 속출했다. 8월 초 수도권에는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일가족 3명이 집 안에 고립돼 사망했다.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50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발달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먼저 희생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9일 호우에 의한 침수로 일가족이 사망한 서울 신림동 다세대주택을 찾아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강윤중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9일 호우에 의한 침수로 일가족이 사망한 서울 신림동 다세대주택을 찾아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인명 피해가 발생한 지역은 침수가 예견된 곳들이다. 서울에서 반지하가 가장 많은 관악구는 2011년과 2018년 집중호우 때도 상습 침수지역으로 지목됐다. 지난해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유역 특성 기반의 서울시 침수위험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관악구는 2011년 7월 집중호우 때도 시간당 최대강수량이 서울시 자치구 중 가장 많았다.

그럼에도 선제적 대응은 없었다. 위기관리기구의 ‘안전불감증’ 탓이다. 관악구를 포함해 서울시 25개 자치구는 침수방지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침수피해 예상지구’를 지정하지 않았다. 행정안전부도 인명 피해가 난 뒤에야 “침수에 취약하지만 (지구로) 지정되지 않은 지역을 적극 발굴하겠다”고 했다. 재난 이후 발표된 ‘안전대책’도 새로운 게 없었다. 서울시는 지난 8월10일 ‘반지하 거주가구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반지하 공간을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2012년 상습 침수지역에 반지하 건축 허가를 제한할 수 있도록 건축법을 개정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9월에는 태풍 힌남노 영향을 받은 경북 포항시의 한 지하주차장에서 8명이 사망했다. 기록적인 폭우에 더해 포항시가 2019년까지 진행한 냉천 정비사업으로 하천 폭이 8m 이상 좁아진 것도 원인으로 거론됐다. 좁아진 하천에서 범람한 물이 사고가 발생한 지하주차장을 덮친 것이다. 정부·여당은 당정협의회를 마친 뒤 “신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대한 차수벽 설치를 의무화하고, 기존 아파트에도 대책을 세울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도 안전불감증이 빚은 것이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 핼러윈 행사 때 다수 인파가 밀집한 점을 감안하면 참사 당일인 지난 10월29일 이태원에 인파가 몰릴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용산구청은 2020년 핼러윈 행사를 앞두고 서울교통공사에 이태원 무정차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며 “대규모 인파가 이태원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참사 발생 2주 전 같은 지역에서 열린 ‘지구촌축제’ 때는 용산구청, 용산경찰서가 함께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했다. 지구촌축제 때는 구청 직원도 150명 현장에 배치됐다. 반면 이태원 참사 발생 당일에는 직원 8명만 현장에 나왔다.

경찰과 소방은 ‘압사 신고’가 들어왔는데도 위험 경보를 울리지 못했다. 행안부, 서울시, 용산구는 각각 재난문자 발송 권한이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참사 발생 1시간41분 뒤인 오후 11시56분이 돼서야 첫 문자가 발송됐다. 재난관리기관끼리 정보를 공유하도록 한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달 11일에야 “재난안전통신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현장 중심 교육과 합동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뒤늦게 “안전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전체적인 조직개편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재난 예방·대응 시스템은 마련돼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두용 한성대 기계전자공학부 교수는 18일 “국가위기관리센터에는 어느 지역에 어떤 식의 문제가 일어난다는 데이터가 쌓여 있다”면서 “이런 체계가 지금 잘 작동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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