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 오는 가정 밖 청소년들, 코로나 이후 불안·충동 성향 커졌다

이예슬·전지현 기자

‘경계성 인격장애’ 크게 늘어
“10명 중 3~4명은 병원 치료
고립이 정신건강에 악영향”

전문기관 전국 2곳 ‘역부족’

국민통합위 자립준비청년 청년정책지원단 활동가 신선씨(왼쪽)와 손자영씨가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아름다운재단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예슬 기자

국민통합위 자립준비청년 청년정책지원단 활동가 신선씨(왼쪽)와 손자영씨가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아름다운재단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예슬 기자

“최근에 경계성 인격장애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쉼터에 오면 저희도 긴장도가 확 높아져요. 갑작스러운 액팅 아웃(행동화)을 보일 수도 있고요.”

서울의 한 청소년쉼터 관계자 A씨는 30일 최근 몇 년 사이 쉼터를 찾아오는 청소년들의 유형이 바뀌었다고 얘기했다. 그는 “예전에는 폭력이 문제였다면 요즘은 정신건강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쉼터는 청소년이 입소하면 심리검사를 가장 먼저 하고, 필요하면 의료기관에 연계해 치료를 받도록 한다.

가정 밖 청소년들이 머무는 쉼터 및 보육원 관계자들 사이에선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계성 인격장애’로 보이는 아동·청소년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말이 나온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자아상·대인관계·정서가 불안정하고 충동적인 특징을 갖는 성격장애다.

4개월 전 서울의 한 청소년쉼터를 찾은 최모씨(18)도 쉼터에 입소한 뒤 우울 및 경계성 지능장애 진단을 받았다. 최씨는 “다 착한 아이들이지만 예민해서 친구들이랑 싸우는 아이들도 종종 있고 우울감 있는 친구들도 많다”면서 “10명 중에 3~4명은 병원 치료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6년까지 15년간 보육원에서 자란 신선씨(30)도 “요즘의 보육원은 제가 살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자립 후 보육원 아동·청소년들의 멘토링을 하고 있다. 신씨는 “요즘은 아동학대로 오는 아이들이 확 늘었다”며 “이런 아이들 중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례도 많아 보육원 선생님들이 자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밝혔다.

시설 관계자들은 코로나 시기의 고립이 아이들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 신림청소년 쉼터 박윤희 소장은 “가정에서 방치되면서 게임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장기 노출된 아이들 중 생각이 극단화되거나 성격적으로 문제가 생긴 아이들이 꽤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신림 청소년쉼터에 입소한 아이들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본 건수는 2018년 51건에서 2021년 162건으로 세 배 이상 늘었다. 2022년에는 111건, 2023년에는 올해 9월까지 122건의 정신과 연계 치료가 이뤄졌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청소년쉼터. 출입문에 ‘청소년 보호시설로 외부인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구가 쓰여 있다. 신림청소년쉼터 제공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청소년쉼터. 출입문에 ‘청소년 보호시설로 외부인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구가 쓰여 있다. 신림청소년쉼터 제공

전문가들은 가정 밖 청소년들이 온라인을 통해 범죄에 노출되는 일이 빈번해진 영향도 있다고 했다. 2009년부터 시설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을 진료해온 배승민 길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경계성 성격장애는 트라우마와 연관성이 매우 높다”면서 “최근 가정 밖 아이들이 사기 등 온라인을 통한 각종 범죄에 취약해졌는데, 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 밖 청소년들의 심리건강에 적색불이 들어온 지 오래지만, 그들의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시설은 여전히 부족하다. 상담과 치료가 전문적으로 이뤄지는 ‘디딤센터’가 있지만 현재 운영 중인 곳은 2012년에 개소한 경기 용인시의 국립중앙청소년디딤센터와 2021년 개소한 국립대구청소년디딤센터, 단 두 곳뿐이다.

결국 의료 및 정신건강 전문가가 아닌 쉼터, 보육원 직원들이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돌볼 수 있는 의료전문 인력과 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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