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심사규정 확보 못 한 채 ‘한동훈 딸 논문대필’ 무혐의

이홍근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6일 오전 인천 계양구 카리스호텔에서 열린 2024 국민의힘 인천시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발언하고있다. 2024.01.16 사진공동취재단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6일 오전 인천 계양구 카리스호텔에서 열린 2024 국민의힘 인천시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발언하고있다. 2024.01.16 사진공동취재단

경찰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딸의 논문 대필 등 스펙 부풀리기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경찰은 “논문을 실은 단체가 구체적 심사기준을 갖추고 있지 않아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실제로는 단체의 정확한 심사기준을 파악하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1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달 28일 한 위원장 부부와 딸 A양의 업무방해 등 혐의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2022년 5월 시민단체 민생경제연구소가 고발한 지 1년 8개월 만이다.

경찰 수사결과 통지서에 따르면 A양은 2021년 해외학술지 ‘ABC Research Alert(ABC)’에 ‘Does National Debt Matter?- Analysis Based On the Economic Theories(국가 부채가 중요한가?-경제이론에 입각한 분석)’이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A양은 같은 논문을 2022년엔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 SSRN에도 올렸다.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 A양의 논문을 케냐 국적의 대필 작가 벤슨(Benson)이 썼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문서 작성자의 이름이 벤슨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벤슨도 인터뷰에서 해당 논문은 자신이 2021년 11월 직접 쓴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경찰은 대법원 판례를 들어 A양의 논문 대필 혐의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003도7927 판결은 “업무담당자가 신청인이 제출한 허위의 신청사유나 허위의 소명 자료를 가볍게 믿고 수용했다면 이는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으로,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반면 충분한 심사 과정이 있었으나 허위 자료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의 요지다.

경찰은 이 판례를 인용해 해당 단체들의 충분한 심사 과정이 없었으므로 대필 논문 게재는 A양의 업무방해가 아니라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라는 논리를 폈다. 경찰은 “위 각 단체는 논문 등록과 관련한 구체적인 심사규정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업무 담당자가 충분한 심사를 하지 않는다면 논문 등록이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는 바,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은 근거로 ABC가 동료 심사를 하지 않는 점, 편집 검토만을 거치는 점, SSRN이 특별한 심사·확인·보증 절차를 거치지 않는 점을 들었다.

수사결과 통지서 일부 발췌.

수사결과 통지서 일부 발췌.

경찰은 이 단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심사기준을 적용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결정서에서 경찰은 논문심사 규정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세 차례 단체에 협조 공문을 보냈으나 현재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 사건 고발인 중 한 명인 이제일 변호사는 “확인이 안 됐으면 수사를 계속해야지 답변을 못 받았다고 불송치하는 게 어딨느냐”면서 “수사 자체가 너무 미진하다”고 했다.

불송치이유서에 논문 대필의 실재 여부에 대한 판단은 담기지 않았다. 벤슨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했는지 묻자 경찰 관계자는 “수사 내용에 대해 논할 수 없다”고 했다. 법리상 업무방해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더라도 사실관계는 확인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형식적 판단이 먼저”라고 답했다.

경찰은 A양의 봉사활동 시간 조작 혐의, 전문개발사가 제작한 애플리케이션을 자신이 만든 것처럼 꾸며 제출한 혐의, 수학 문제풀이집 표절 혐의와 한 위원장 부부의 뇌물, 증거인멸 등 혐의에 대해서도 모두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고발인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윤석열·김건희 정권에 장악된 경찰이 1년8개월동안 시간을 끌더니 피의자·관계기관을 소환하거나 압수수색하지 않고 봐주기 처분을 했다”면서 “이의신청과 반박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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