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보고서 삭제’ 경찰에 징역형…이태원 참사 관련 책임자 첫 처벌

이홍근 기자    오동욱 기자
박성민 전 서울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과 김진호 전 용산서 정보과장이 14일 서울서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박성민 전 서울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과 김진호 전 용산서 정보과장이 14일 서울서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태원 핼러윈 축제 인파 사고를 예측한 정보 보고서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이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한 경찰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는 14일 증거인멸교사와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교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부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를 받는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김 전 과장의 지시로 보고서를 삭제한 곽영석 정보관은 징역 4개월의 선고유예를 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은 국가의 형사사법 기능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서 죄질이 상당히 좋지 않다”면서 “초유의 피해가 벌어진 핼러윈 참사의 진상규명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저버린 채 경찰이 책임을 축소하고 은폐했으므로 엄중한 처벌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 전 부장에 대해 “고위간부 중 한 사람으로서 적극적으로 수사 및 감찰에 협조할 책임이 있었음에도 사고의 원인 파악보다는 책임소재가 경찰로 향할 것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다만 추가 증거인멸의 우려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면서 법정 구속하지 않고 보석 결정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김 전 과장에 대해선 상급자인 박 전 부장의 지시를 어기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직접적인 범행 동기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범죄전력이 없는 점을 양형에 유리한 점으로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곽 정보관에 대해서도 “지시를 어기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서 선고를 유예했다.

박 전 부장은 2022년 10월31일 핼러윈 참사를 예견한 보고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이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박 전 부장은 보도된 보고서 외에도 사고 위험을 지적한 보고서가 3개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4차례에 걸쳐 삭제 지시를 내렸다. 박 전 부장의 지시를 받은 김 전 과장은 용산경찰서 정보관들에게 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곽 정보관을 포함한 일선 정보관들이 지시를 이행해 이 문서들은 컴퓨터에서 삭제됐다.

10·29 이태원 참사 경찰 특수본 수사 보고서. 권도현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경찰 특수본 수사 보고서. 권도현 기자

재판에서 곽 정보관은 혐의를 모두 인정했으나, 박 전 부장과 김 전 과장은 혐의를 부인했다. 이들은 정보보고서는 열람 후 파기가 원칙이며, 목적을 다 해 파기 예정인 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했을 뿐이라고 했다. 또 해당 보고서는 증거 가치도 없고 수사기관이 복원해 증거인멸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보경찰의 임무는 공공안전에 대한 위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정보의 수집 작성”이라면서 “상부에 보고가 완료되었다 하더라도 위험의 예방과 대응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면 보고서의 목적이 달성되어 불필요하게 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삭제된 보고서가) 경찰이 사고에 충분히 대비했는지 여부를 따져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증거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면서 “삭제 이후 해당 증거가 다른 경로를 발견되었다는 후발적인 사정도 죄의 선고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박 전 부장이 참사 직후 책임을 회피 방안을 논의한 점을 들어 삭제 지시에 사건 축소·은폐 의도가 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 전 부장은) 사고 발생 다음 날부터 사고의 주된 책임을 지방자치단체로 유도하고 경찰의 책임을 회피하며, 오히려 이를 기회로 안전 유지에 관한 경찰의 책임 범위를 축소하고 경찰의 지휘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했다”면서 “정보보고서를 특정해 삭제하라는 명시적인 지시는 없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보보고서를 염두에 두고 (삭제) 지시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참사 이후 경찰 관계자에 대한 첫 실형 선고가 나오자 유가족들은 “환영할만한 판결”이라면서도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다.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증거인멸이 인정된 만큼 상부에서 지시가 있었는지 파헤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고 이상은씨 아버지 이성환씨는 “조직적으로 은폐·축소하려 한 게 인정됐다”면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의 책임 여부까지 전체적인 진상이 재판을 통해 드러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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