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을 보셨다면 안녕하세요, 독자님. 12월이 시작되었네요. 이번 주 큐레이션을 마무리하는 김지혜 기자입니다. 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기사에 관심이 많아요. 퇴근길, 오랜만에 영화관에 들렀습니다. 달콤한 팝콘 냄새와 쉴 새 없이 음료를 내리는 기계음, 사람들의 들뜬 말소리까지 문을 열자마자 훅 덮쳐오는 활기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어요. 어느덧 극장의 침체에 익숙해졌나봐요. 영화관에 잃어버린 활기를 돌려준 건 영화 <서울의 봄>이었습니다. 빈자리 없이 빽빽한 상영관에서 <서울의 봄>을 봤습니다. 간략한 후기는 이렇습니다. 이 영화를 볼 계획이 있으시다면, OTT보다는 극장 관람을 추천합니다. 특히 저처럼 다혈질이거나 화가 많은 독자님이라면 더더욱이요. <서울의 봄>은 1979년의 12·12 군사 반란을 극적으로 재현합니다. 전두환·노태우 등 실존 인물은 전두광·노태건처럼 이름을 바꾼 채 등장하고요. 흡인력과 몰입도가 상당한 영화예요. 하지만 만약 제게 스크린을 끄고 켤 수 있는 리모컨이 있었다면 상영 도중 참지 못하고 정지 버튼을 눌러버리는 사고를 쳤을지도 모릅니다. 화를 견디기 힘든 순간이 몇 번 있었거든요. 스크린 속의 이야기가 그저 허구가 아니라, 현실과 이어지는 역사라는 것을 알기에 그랬습니다. 제가 진짜로 정지하고 싶었던 건 아마 영화가 아니라 역사였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흘러간 역사를 멈출 수는 없어서, 영화라도 멈추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 셈이죠. 어찌할 수 없는 역사 대신, 영화로 손을 뻗고 싶은 욕망은 저만의 것이 아닌가 봅니다. 문화부장인 백승찬 기자는 <서울의 봄>을 보며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영화로 히틀러를 죽여버린 타란티노라면 전두광을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과 함께요. 3분 분량의 칼럼에 담긴 이야기를 같이 읽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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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2차대전을 다룬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역사를 제멋대로 각색해 히틀러를 불에 태워 죽였다. ☑️ 1979년 12·12사태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은 영화 속 묘사된 하룻밤 사이 역사의 변곡점들이 조금만 달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념을 일으킨다. ☑️ 반성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히틀러를 죽음으로 벌하는 영화 <바스터즈>를 두고 독일의 영화평론가 게오르그 제슬렌은 "부당한 현실 그 자체를 복수한다"고 분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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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식은 뒤 먹으면 맛있는 음식" 2023.11.29. 백승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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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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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2차대전 당시 미군 특수부대를 다룬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시나리오를 쓰면서 '히틀러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던 경험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옛날 영화를 재탕하고 싶진 않았어요. 영화가 그러면 실망스럽잖아요. (암살 위기의) 히틀러를 뒤로 빼내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럼 어떻게 할까. 새벽 4시쯤에 시나리오를 쓰다가 결심했어요. '그냥 죽이자.' 그래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렇게 썼어요. 'X발 그냥 죽여.'"( 2019년 5월 <지미 키멜 라이브>) 역사는 나치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가 연합군이 베를린을 점령하기 직전인 1945년 4월30일 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전한다. 오랜 연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한 직후였다. 2차대전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따른다. 전투의 세부묘사를 부풀리고 등장인물을 가공하기는 하지만, 전쟁의 승패를 바꾸거나 히틀러의 죽음 정황을 각색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실제 있었던 히틀러 암살 시도를 다룬 <작전명 발키리>(2008) 역시 정의로운 독일군 장교가 히틀러를 거의 죽일 뻔 하다가 실패한 뒤 사형당하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타란티노는 자신의 말대로 <바스터즈>에서 나치 선전영화를 보던 히틀러를 불에 태워 '그냥 죽였다'. 역사적 사실에 개의치 않고 영화로 '대체역사'를 쓴 것이다. 타란티노는 이후의 영화에서도 역사를 제멋대로 각색하곤 했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에서는 흑인 총잡이가 백인 노예상을 응징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2019)에서는 임신 중인 배우 샤론 테이트를 죽였던 살인마 찰스 맨슨 일당이 배우 매니저 클리프(브래드 피트)에게 역으로 당했다. 살인마들은 개에 물리고 칼에 찔리고 화염방사기에 불타 죽지만, 현실에서 그들이 얼마나 잔인한 짓을 저질렀는지 아는 관객에게 이 장면은 끔찍하기보단 통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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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한 장면.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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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중인 <서울의 봄>은 12·12사태를 다룬 영화다. 개봉 7일 만에 230만 관객을 모으며 얼어붙은 극장가를 오랜만에 달구고 있다. 등장인물 대다수가 군인이지만 본격적인 전투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오직 전화 통화, 급한 운전, 지도상의 표식으로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도 엄청난 긴박감을 자아낸다. 심지어 '역사가 스포일러'라 결말을 아는데도 서스펜스는 줄지 않는다. 신군부 반란군의 이름을 전두환에서 전두광, 노태우에서 노태건으로 바꿨다곤 하지만 이 영화가 대체로 실화에 기반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연과 필연이 뒤섞여 역사는 신군부의 집권과 군사독재의 연장으로 이어졌다. 민주화를 위해 이후로도 오랫동안 수많은 시민들의 희생과 노고가 필요했다. 이런 역사를 아는 나는 영화를 보며 상념에 잠겼다. <서울의 봄>에서 묘사된 하룻밤 사이 역사의 변곡점들이 조금만 달랐으면 어땠을까. 하나회 멤버 중 한두 명이라도 전두광의 야욕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국방부 장관이 조금만 더 분별 있고 유능한 사람이었다면, 8공수여단이 회군하지 않고 서울로 진입했다면….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대체역사 장르는 찾기 힘들다. 일본이 여전히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는 1980년대를 그린 복거일의 소설 <비명을 찾아서>(1987) 이후 웹소설을 중심으로 대체역사물이 이어졌다. 영화에선 <비명을 찾아서>와 유사한 설정을 가진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1)가 있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등장인물의 복식이나 먹는 음식만 바꿔도 '역사왜곡'이라는 평가가 나오곤 하니, 아예 가상의 왕조나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을 바엔 역사의 경로를 바꾸는 작품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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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전두광 일당이 최한규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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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는 대체역사를 창조한 타란티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착한 녀석이 이기고 모든 일이 다 잘 되는 영화, 텔레비전을 보며 자란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이 이렇게 되면 좋겠다'고 여겨지는 아름다운 장소에서 온 사람이죠. (…) 그는 좋은 일만 일어나고 나쁜 일은 안 일어나길 바라는 우리의 집단적 소망 위에서 작업합니다."( 2020년 1월 제35회 산타바르바라 국제영화제 대담) 내가 <서울의 봄>을 보면서 대체역사를 꿈꿨던 이유는 타란티노의 심정과 비슷했기 때문일까. 독일의 영화평론가 게오르그 제슬렌은 <바스터즈>를 두고 "이 영화는 히틀러처럼 스스로 죽은 나치범들을 영화를 통해 복수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현실 그 자체를 복수한다고 볼 수 있다"(전유정 논문 'B급 장르와 대체역사적 상상력'에서 재인용)고 분석했다. 만일 <서울의 봄>에 이어 두번째 12·12 영화가 기획된다면, 그땐 전두광 일당이 처참히 패배하는 대체역사물이기를 희망한다. 역사를 뒤틀고도 반성 없이 사라진 악당들에게 어떻게든 복수할 수 있도록. 타란티노의 또 다른 걸작 <킬 빌>이 인용하는 "복수는 식은 뒤 먹으면 맛있는 음식 같다"는 서양 속담을 증명할 수 있도록. 📝 🔎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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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를, 특히 역사 속 악인을 어떻게 재현하면 좋을까요? 물론 어느 한쪽이 옳다는 식의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가지 않은 길'을 상상해 볼 수는 있겠죠. <서울의 봄>이 역사를 비틀고 전두광을 죽였다면 이 영화가 제 마음에 남긴 자국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해집니다. 송혁기 고려대 교수는 칼럼에서 <서울의 봄>을 "참 잘 만든" 동시에 "참 불편한 영화"라 평합니다. 영화가 그려내는 악의 승리는 불쾌하리만치 적나라하고, 그 승리가 영화 밖에서 만든 참혹한 역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란티노처럼 엔딩을 지었다면, 관객은 이 불쾌와 불편 대신 짜릿한 통쾌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그렇게 관객들이 나눠가진 복수의 경험이 역사에서는 행해지지 않은 악에 대한 단죄로서 기능할 수도 있고요. 혹은 타란티노가 꿈꾸는 "착한 녀석이 이기고 모든 일이 잘 되는" 세상을 현실로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도 있겠죠. 영화평론가인 강유정 강남대 교수의 관점은 또 다릅니다. 그는 칼럼에서 <서울의 봄>이 "대안적 결말이나 허구적 징벌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들은 과연 누가 반역자이고, 악당인지 그리고 왜 죗값을 치르지 않았는지 절절히 깨닫게 된다"고 씁니다. 강유정 교수는 그것이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세상에 필요한 마땅한 결말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이야기의 힘'이라고 강조합니다. "살아생전 세속의 권력과 부를 누렸던 전두환은 이야기 속에서 마땅한 벌을 받을 때까지 거듭 소환될 것"이라면서요. 영화가 남긴 분노와 불쾌가, 결국 현실을 바꾸는 동력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죠. 전두환 같은 이들이 '마땅한 벌'을 받는 사회가 되는 쪽으로요. 독자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다음번에 <서울의 봄>처럼 12·12사태를 다룬 영화가 또 만들어진다면, 그 영화의 결말은 어떤 식으로 맺어지길 바라시나요? 끝으로 <서울의 봄>을 만든 김성수 감독의 말을 전하며 오늘의 레터를 마칩니다. 최민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이 영화의 목표가 '현재성'에 있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현재성이란 '이런 일은 늘 벌어진다'는 거예요. 이런 놈들이 악마고 못됐다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역사가 다 아는데요. 다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언제든 어떤 커다란 일이 벌어질 수 있고 그것이 역사책에 나오듯 멋진 사람들의 합리적 판단을 거쳐 나오는 게 아니란 거예요. <서울의 봄>이 이 시대에 가진 의미라면 그것이라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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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논설실장은 여적에서 "군사정권하에서도 참군인이 있었다는 귀한 사실을 일깨운 것"을 <서울의 봄>의 미덕으로 꼽습니다. 이 시대에도 참군인은 존재합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죽음의 진상을 밝히려다 항명죄로 기소된 박정훈 대령이 그렇습니다. 참군인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박 대령의 수사에 성역이 없었음을 밝히는 해병대 사령관의 발언까지 나왔는데 말입니다. |
남초 커뮤니티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은 넥슨 게임 '메이플스토리' 여성 캐릭터의 '집게손가락' 포즈는 여성이 아니라 40대 남성이 만든 것으로 경향신문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캐릭터의 '집게손' 포즈가 페미니즘의 상징이며, 하청사 소속의 여성 직원이 의도적으로 그려 넣은 것이라는 주장을 앞세워 게임업계 여성 노동자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을 벌여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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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세상에서 사람은 뭐할까? 샘 올트먼. 이제 이 이름을 듣지 못한 독자님이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ChatGPT를 운영하는 오픈AI에서는 닷새 사이에 최고경영자인 올트먼이 해임됐다가 복귀하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이 기가 막힌 일의 배경은 아직 분명히 밝혀진 게 없습니다. 오픈AI는 올트먼 해임 소식을 전하며 "올트먼이 일관되게 솔직하게 소통하지 않았다"라고만 했어요. 다만, 오픈AI 내부에는 일종의 노선 갈등이 곪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어요. 올트먼 해임을 결정한 오픈AI 이사회의 여러 구성원이 '인공지능(AI) 시스템이 급속도로 똑똑해져 통제하기 어렵게 되면 인류에게 재앙이 된다'는 견해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올트먼이 그 반대 노선, 즉 AI 시스템의 급속한 발전을 재촉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죠.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 같은 대립 구도는 AI 개념의 탄생부터 함께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독자님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아래 버튼을 눌러 간단한 퀴즈를 풀고 이어서 생각을 들려주세요. 다음 주 점선면에 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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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한 권을 추천하고 싶어요. 타일러의 <두 번째 지구는 없다>는 기후위기가 진정 경제 문제라 말하며, 발생하고 있고 발생할 수 있는 경제 위기에 대해 말해요. 경제는 물가 등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에요. 기후위기가 바로 우리의 일이고 책임임을 알 수 있으니 많은 사람이 읽어봤으면 해요." (WORLD님) "인간종은 정말 둔한게 맞는 것 같아요. 그냥 초록 낙엽이 떨어지는 게, 추워서 그렇구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거든요. 나무가 일련의 계산을 마치고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탄소중립 실천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감사합니다." (익명의 독자님) 📝 "지난 점선면Lite < 🍃초록 낙엽 사건의 범인은?>을 읽고 남겨주신 의견입니다. 늘 기후위기를 생각하고 또 실천하시는 독자님들께 많이 배웁니다. 기후변화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사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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