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의 고기잡이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연례행사로 일 년에 한 번씩은 냇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은 통 개울에 들어갈 마음이 없었다. 물이 점점 흐려져 꺼려지기도 했지만 물고기의 종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꺽지며 뚝지, 모래무지와 마자, 미유기와 퉁가리가 사라지고 피라미나 갈겨니만 득시글거리는 개울은 내가 그리던 개울이 아니다. 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스무 종이 넘던 물고기들은 개울이 이른바 하천정비사업으로 말끔하게 단장된 후로 해마다 종수가 줄어 이제는 불과 몇 종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차에 지방의 어느 한적한 시골에 머물다 몇 년 동안 손을 놓았던 고기잡이에 마음이 동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천의 수초가 그럴 듯했기 때문이었다. 논물이 들어와 물은 흐렸지만 미꾸라지와 수수미꾸리쯤은 잡을 수 있겠다싶어 마을의 지인을 앞세우고 족대와 주전자를 들고 호기롭게 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별무소득. 나온 건 다슬기 몇 개가 전부였다. 낙담한 나를 위해 지인은 개울의 상류로 오르며 고기가 있을 만한 곳을 안내했지만 피라미 몇 마리와 각시붕어 한 마리를 잡은 게 전부였다. 개울을 포기하고 우리는 저수지를 공략하기로 했다.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에 갈대와 부들이 가득하고 개개비들이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호수에 된장을 넣어둔 어구를 담가두고 한나절을 지나 건져 보았지만 나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고기잡이 실력이 없는 거라고? 그게 아니라는 걸 장담한다. 십수년 고기잡이의 노하우로 수초와 바위 모양을 보고도 그 밑에 무슨 고기가 사는지를 알 만큼은 되었다고 자부하던 터였다.

[문화와 삶]개울의 고기잡이

동네가 한눈에 들어오는 산 위에 올라 보니 그 지역의 물고기들이 씨가 마른 이유를 알 만도 했다. 농사를 짓느라 곳곳에 저수지를 만들어 놓았고 그로 인해 위아래의 물 흐름이 막혀버린 탓이었다. 우리는 고기잡이를 반쯤 포기한 채 물고기가 살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진출한 곳은 그 지역의 제법 유명한 자연휴양림. 냇물이 시작되는 상류에 위치한 곳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멀쩡한 계곡 곳곳을 헐어내고 축대를 쌓고는 물길에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일부러 물고기들이 사는 곳을 몽땅 없애버리려 한 짓이 아니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튿날, 틀림없이 물고기가 바글바글할 것이라는 장담에 기대 다른 지역으로 원정을 갔다. 편백나무며 소나무, 백합나무 수백만 그루를 심어놓은 인공림 숲. 그곳은 생태를 살려내느라 물고기를 방류하고 물고기 잡이 역시 금지한 곳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곧게 자란 나무들이 장관인 그곳에서 고기를 잡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하지만 그곳 역시 잡으려 해도 물고기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계곡 옆에는 방부목으로 만든 데크가 숲길을 따라 1㎞ 이상 조성돼 있었고 휴양림과 똑같이 계곡을 파헤쳐 축대를 쌓고는 계단식 물길을 만들어 놓았다. 당연히 숲의 상류 쪽은 더없이 맑았지만 인공으로 조성된 계곡을 불과 몇 백 미터 내려오는 사이에 물은 그대로 썩어버리고 말았다. 맑고 깨끗한 계곡조차 손을 대는 순간 여지없이 오염물로 만들어버리는 그 신묘한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생태공원을 표방하고 자연보호를 내세우며 벌어지는 일들이 그렇다. 작금에 아니 오래 전부터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토목공사는 국토의 구석구석을 초토화하는 중이다. 대통령은 큰 강을 파헤치고 지방의 수장은 작은 강을 둘러엎고 이제 그도 모자라 계곡 안 깊숙이까지 관과 업자의 짬짜미로 벌어지는 수많은 공사들이 그치지 않는다. 개울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겠다는 야무진 생각이야 얼마든지 접을 수 있지만, 이 땅의 실핏줄까지 파헤치고 막아버리는 자본과 권력의 끝간 데 모를 야합에는 그저 망연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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