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두 얼굴

박문규 사회에디터

# 차한성 전 대법관의 로펌행(行)을 놓고 법조계가 시끄럽다. 변협이 그의 변호사 개업신고서를 반려한 게 발단이다. 변협이 문제 삼은 것은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전관예우 문제다. 하창우 변협 회장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상고 이유서에 찍는 도장값만 3000만원”이라며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대법관 이력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그간의 악습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다. 따지고 보면 변협이 그의 개업을 막는 것은 과한 측면도 있다. 대법관 출신은 변호사 개업을 못한다는 규정도 없다. 차 변호사는 “공익소송을 하겠다는 것도 못하게 막느냐”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변협은 법조계의 적폐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동에서]변호사의 두 얼굴

# 국회는 지금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논의 중이다. 법안 이름도 난해하다. ‘필요적 변호사 변론주의’ ‘필수적 변호사 대리’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과거 ‘변호사 강제주의’라는 이름으로 냈다가 퇴짜를 맞자 작명을 새로 해서 낸 법안이다. 셋은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다. 민사소송에서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할 때는 변호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하는 게 골자다. 변호사가 없으면 상고를 막는 대신 국선 대리인을 선임할 수 있도록 했다. 새누리당 윤상현·홍일표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자로 돼 있지만 ‘숨은 주역’은 따로 있다. 일반인들은 이런 법안이 있는지조차 생소하다. 변호사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일감 몰아주기 법안의 전형이다. 은근슬쩍 통과되는 날에는 소송 당사자들은 꼼짝없이 당할 판이다.

변협은 이들 2개 사안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다. 속을 들여다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겉으로는 사법개혁을 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골몰하는 변호사들의 이중성 그대로다.

먼저 전관예우 문제를 보자. 차 변호사는 대법관 퇴직 후 1년간 영남대 석좌교수로 강단에 섰다. 그 후 기다렸다는 듯 개업 신고서를 냈다. 현행 규정상 대법관 출신은 1년간 상고심 사건을 맡지 못하도록 돼 있다. 전관예우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돼 있다. 전관예우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판검사 출신 변호사가 개업 2년 만에 평생 먹거리를 챙긴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소송은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다. 한쪽이 값비싼 전관 변호사를 등에 업고 소송에서 이기면 상대는 불공정한 게임의 희생양일 수밖에 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시작이다. 이런 폐해는 사법불신으로 이어진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전관예우는 대법원의 신뢰와 직결된 문제라 사안이 더 심각하다. 대법관 결정이 최고의 판단으로 존중받는 것은 대법원에 부여한 국민적 신뢰 때문이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개업 5개월 만에 16억원을 벌었다는 이유로 총리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다. 법조계에는 “대법관 출신은 어떻게든 변호사 개업을 자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지 오래다. 변협의 이번 조치가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변호사 강제주의(필수적 변호사 대리)는 정반대 경우다. 변호사 선임은 당사자의 선택권 문제다. 인신 구속을 다투는 형사 사건과 달리 민사소송은 변호사 선임률이 30%가 채 안된다. 변호사가 없다고 소송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초법적이다. 더구나 상고심은 재판장에서 직접 다투는 게 아니라 소송 서류만 주고받는다. 변호사 없이도 얼마든지 소송이 가능한 구조다. 국선 대리인을 선임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할지 몰라도 이는 또 다른 문제다. 값비싼 전관 변호사와 국선 대리인이 대결할 경우 결과는 뻔하다. 변호사 선임료에 따라 민사 재판의 승패가 갈린다면 누가 승복하겠는가.

국선 대리인이라고 공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민 세금과 직결된 문제다. 남의 재산권 다툼에 왜 국민 세금을 갖다 쓰겠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래저래 변호사들만 좋은 일 시키게 돼 있다. 이 제도는 첫발을 뗐을 뿐이다. 지금은 대법원 사건으로 한정돼 있지만 여론 추이를 본 뒤 항소심과 1심 소송으로 확대하자고 할 게 불보듯 뻔하다. 변협이 지난 20년간 여기에 사활을 걸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달 대법원에서는 ‘사도법관(使徒法官)’ 김홍섭 판사의 50주기 행사가 열렸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과 함께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 중 한 명이다. 남대문시장에서 산 군복을 물들여 평생 입고 다녔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반찬이라곤 무 짠지 하나뿐인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처가에서 보내준 쌀가마니마저 돌려보냈다고 한다. 고인이 지금 자기 밥그릇에 눈이 먼 법조계 후배들을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 낯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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