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4월8일 ‘유해식품 최고 사형까지’

박문규 사회에디터

얼마 전 ‘쓰레기 계란’ 파동이 불거져 충격을 줬다. 양계농협의 한 계란 가공공장에서 폐기 처분해야 할 썩은 계란을 제과·제빵업체나 학교에 공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외신에서는 몇 년 전 중국의 ‘가짜 계란’ 사건도 화제가 됐다. 합성소재와 공업용 색소를 넣어 일반 계란과 흡사한 짝퉁 계란을 대량 생산·판매해오다 당국에 적발됐다. 가격도 일반 계란의 반값에 불과했다. ‘짝퉁 천국’ 중국의 실상을 여지없이 보여준 사건이다. 값싼 계란마저 짝퉁을 만들어 팔 수 있다는 식품업자들의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정불량식품은 국민의 안전한 식탁을 위협하는 최대 적이다.

1988년 4월8일자 경향신문 10면에는 ‘유해식품 제조·판매 최대 사형까지’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보건사회부가 부정불량식품을 뿌리뽑기 위해 국민들이 즐겨 먹는 생필품을 대상으로 집중단속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기사에는 “단속에 걸린 유해식품 제조·판매업자는 최고 사형의 법정 최고형으로 무겁게 다스리기로 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를 위해 전국 16개 부정식품 전담 특별기동반을 편성했다고 보도했다. 국가 주요 스포츠 행사인 88올림픽을 불과 몇 달 앞둔 시기였다.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를 앞두고 부정불량식품으로 인한 국가적 망신살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경향으로 보는 ‘그때’]1988년 4월8일 ‘유해식품 최고 사형까지’

무엇보다 불량식품을 사형으로 다스리겠다는 ‘엄포’가 이채롭다. 당시만 해도 정부의 말 한마디는 곧 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후 27년이 흘렀다. 하지만 부정불량식품을 만들었다고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뉴스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불량식품 단속은 새 정권이 출범하면 으레 나오는 단골메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2004년 송광수 검찰총장은 전국 부정식품사범 특별단속 전담 부장검사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부정식품을 팔다 걸린 재범자에 대해서는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가중처벌조항을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오랜만에 다시 등장한 사형 엄포다. 박근혜 정부도 불량식품을 4대 악(惡)의 하나로 규정하고 발본색원을 다짐했다.

하지만 겉 다르고 속 다른 게 불량식품 단속이다. 정권 초면 전담반 편성이니, 엄중한 처벌을 외치지만 그때뿐이다. 식품위생법상 불량식품 제조·판매업자에 대한 법정 최고형은 징역 7년이다. 그나마 검찰이 기소해봤자 법원 가면 99%가 다 빠져나온다. ‘쥐꼬리 새우깡’ ‘쓰레기 만두’ ‘대장균 분유’…. 그동안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부정불량식품 파동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정부의 엄포와 달리 잊을 만하면 또 충격적인 뉴스가 줄을 잇는다. 식탁 안전은 정부가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먹거리 갖고 장난치면 패가망신한다’는 본때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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