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젤리나 졸리의 유전자 검사

김훈기 | 홍익대 교양과 교수

2013년 5월 세계적인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유방암 절제수술을 받은 이야기가 새삼 국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당시 졸리는 브라카(BRCA1) 유전자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예방 차원에서 유방을 절제했다. 브라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80세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졸리의 모친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졸리는 자신의 경험을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렸고, 유전자 검사 결과만으로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과학 오디세이]앤젤리나 졸리의 유전자 검사

졸리는 2015년 3월 한 차례 더 수술을 받았다. 이번에는 난소 제거 수술이었다. 돌연변이 브라카 유전자를 보유한 여성은 80세에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50%이다.

당시 세간의 논란은 좀 더 심각하게 벌어졌다. 일단 50%라는 확률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였다. 87%는 상식적으로 봐도 높은 수치다. 하지만 병에 걸릴 확률이 절반이라면 느낌이 다르다. 30%라면 어떨까. 더욱이 난소는 유방에 비해 제거됐을 때 후유증이 크다. 여성호르몬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폐경기가 곧바로 닥칠 수 있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보면 실제로 졸리는 난소 제거 수술을 두고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현재 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 유전자 검사의 결과를 알게 됐을 때 혼란스러워질 수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인 것이다.

그럼에도 졸리는 국내외 많은 여성들의 수술 결정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최근 한국유방암학회는 졸리가 수술을 받은 2013년을 기점으로 국내 여성의 브라카 유전자 검사 건수가 3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여성 중에 유방절제 수술을 받은 건수도 5배 늘고 난소 제거 수술도 많이 증가했다.

이 같은 증가의 원인이 과연 언론에서 표현하는 ‘졸리 효과’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유전자 검사가 우리의 일상에 상당히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유전자 검사의 타당성이나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주로 유전자 검사의 긍정적 효과만 소개되는 것 같다.

졸리는 전문의료인과 상의하면서 어렵사리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의료인의 도움 없이 일반인 스스로 브라카 유전자와 같은 질병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에 대한 검사를 간단히 할 수 있다. 의료기관이 아닌 민간기업이 일반인의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는 ‘비의료기관과 환자 간 직접검사(DTC·Direct-To-Consumer)’가 수년 전부터 미국과 영국 등에서 활발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DTC 업체인 ‘23앤드미(23andMe)’는 이미 브라카 유전자를 검사하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만일 자신의 브라카 유전자가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DTC 업체들은 유전자 검사를 예방적 차원에서 시행하는 것이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는 있다. 하지만 졸리의 수술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의 내용이 충분히 소개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하고 개인적으로 수술을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에서는 더욱 싸고 간편해진 유전자 검사 상품이 앞다퉈 출시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미국의 한 생명공학회사는 브라카 유전자를 비롯한 19개 질병 관련 유전자를 타액으로 분석할 수 있는 키트를 30만원 정도의 가격에 내놨다. 현재 가정에서 간단히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조만간 누구나 자신의 유전자를 손쉽게 검사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국내의 상황은 어떨까. DTC 검사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 지난해 말 개정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6월 말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23앤드미가 벤치마킹 대상이긴 했지만, 국내에서 브라카 유전자에 대한 검사가 허가되지는 않았다. 대신 중성지방 농도,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등 질병의 예방과 관련된 12개 항목에 대한 46개 유전자의 검사가 가능하다. 한편에서는 모발 굵기, 피부 탄력 등의 항목이 과연 질병과 관련된 것인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보다는 DTC 업체들의 유전자 검사 항목이 점차 늘어나 어느 순간 질병 유전자에 대한 검사까지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과학계와 일반인 모두가 별다른 사회적 논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되는 분위기라면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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