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아줌마들

원익선 원광대 정역원 교무
[사유와 성찰]위대한 아줌마들

어느 정치인이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들”이라고 내뱉은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몇 개월 전 국회의 청소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었을 때, 나는 속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거기에서 이제는 몸의 기능이 하나둘 상실되어 가는 어머니의 예전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머닌 노동자로 이곳저곳 전전하다 마침내 어느 지방대학의 병원 청소부로 20여년 동안 일했다.

철없을 때, 어머니가 벽돌 공장에서 일하느라 발뒤꿈치가 벌어져 밥풀을 이긴 거즈를 주며 붙여달라고 했을 때, 그게 뭐 대수냐고 화를 냈던 일이 지금은 몹시 후회가 된다. 가난이 죄는 아님에도 어머니는 죄인처럼 허리가 부서지도록 병원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그리고 그 병원을 퇴직할 무렵, 자신의 직장에 시신 기증을 하겠다고 가족의 마지막 도장을 내게 요구했다. 순간 그동안 집안의 부처님을 무시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가난은 내가 방황한 원인이기도 했지만, 원불교에 출가한 계기이기도 했다. 수학 시절 산책을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부처가 된다면, 나를 이 길로 이끈 그 어떤 부처님의 도움이 있어서다. 그렇다면 그분은 가난을 통해 나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게 하고, 나를 성불의 길로 가게 한 부모님이다. 그분들이 부처님이다!

실제로 부모님은 우리가 가난해도 남의 것을 도둑질해서 먹고살지는 말자고 했다. 세상에 나와 보니 실로 세상은 도둑질이 횡행함을 알게 되었다. 물건이나 자리만이 아니라 지식과 권력, 그리고 평화를 도둑질해서 사회와 세계를 어지럽힌다.

또한 어머니는 물건을 찍는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집에 데려다가 고기를 구워 먹였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얼마나 불쌍하냐”며 애처로워 데려왔다고 한다. 타국에서 고생하는 그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 것이다. 이야말로 맹자가 이야기한 측은지심이다.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선천적 도덕성을 말하는 사단칠정 가운데 인(仁)의 단(端)이다. 도둑이 도둑질을 하러가다가 우물에 빠지려는 아기를 구해놓고 도둑질하러 간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그냥 청소하는 동네 아줌마”가 이렇게 동서고금의 철리(哲理)를 꿰뚫고 인류의 연대를 생활 속에서 보여주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수많은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은 왜 이런 아줌마의 삶의 철학에도 미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세상을 하나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식은 자신의 무지를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무엇을 아느냐가 중요함에도 많이 아는 것에 집착한다. 이 집착은 세계를 갈수록 분열시킨다. 위대한 사람들일수록 왜 자비의 눈물을 쏟는가. 그들은 박해받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느낀다. 그들은 세계는 하나이며, 인류는 한 가족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통찰이 있다.

태국의 불교개혁가 붓다다사 스님은 일상적인 언어의 이면에 새겨진 궁극의 뜻을 살펴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어둠은 무지이며, 밝음은 지혜이다. 그렇다면 한여름의 비는 무엇인가. 이 비는 하늘로부터 내리는 불보살 성현들의 눈물이다. 세계를 정화시키기 위해 하늘로부터 고르게 내리는 자비의 눈물이다. 그 비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성장하는가. 교육은 이처럼 사물의 이면을 통찰해 자기화하는 눈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지식은 자연과 삶을 의미 있게 해석해주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근현대교육은 종교를 공교육의 장에서 추방하면서 세계를 하나로 통합해보는 시각을 잃어버렸다. 인류를 한 포태 속 가족으로 보는 사해동포,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했으므로 한 형제자매라는 인류가족, 존재 자체가 유일하고도 완전한 모습이자 죄와 복의 권능을 가진 부처들이 사는 낙원세계 등 종교에는 인류를 하나로 보는 생각이 들어 있다. 실제 역사는 경쟁만이 아니라 한 무리의 벌들처럼 서로 돕고 더불어 사는 진화된 삶을 드러낸다.

정치가의 가장 중요한 덕성은 공존하는 인간의 삶에 공감하는 일이다.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은 자신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분열된 눈으로 상대를 파괴하는 것은 곧 자신을 파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을 대표로 뽑아준 민중을 한 가족으로 보지 못하는 정치가는 나라의 살림살이를 할 자격이 없다. 권력을 위해 수집한 지식으로 자신과 세계를 더 이상 분열시키지 않아야 한다.

세상에는 가진 것은 없어도 나의 어머니처럼 가장 낮은 곳에 부여된 삶의 구석을 지혜와 자비로 감싸는 일상의 철학을 가진 아줌마가 수없이 존재한다. 위대한 이 아줌마들이 이 나라의 진정한 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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