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씨를 찾습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청춘직설]“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페이스북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항공권을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서른다섯을 먹도록 아직 해외에 나가본 일이 없어서 무척 큰 결심을 하고 후쿠오카행 항공권을 예매했는데,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출발하기로 한 그 주에 아이의 수술 일정이 잡혔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서 벌어진 급작스러운 일이었다. 의사는 수술 다음 날 어린이집에도 갈 수 있을 만큼 별것 아니라고 했지만, 아버지라는 인간이 혼자 해외로 떠나기에는 염치가 없었다. 마침 이런저런 일정들도 생겨서 티켓을 취소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끊은 항공권은 후쿠오카까지 왕복 8만원, 일명 ‘땡처리 티켓’이었다. 예약을 하면서도 0이 하나 덜 붙은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만큼 취소 수수료가 비쌌다. 50%까지는 예상했는데, 2만원이 좀 안되는 돈을 환불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몇 자리 남지 않은 것을 간신히 구했으니 예약대기를 걸어둔 누군가가 곧 그 자리를 다시 채울 것이었다. 그러면 항공사와 여행사는 누군가가 그 티켓을 취소할수록 오히려 이익을 얻는다. 왠지 그것이 얄미워진 나는 티켓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 그러자 담당자는 “여권에 등록된 영문 이름이 같은 대한민국 남성이면 출발 3일 전까지는 가능합니다” 하고 답했다. 그러니까 김민섭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한민국 남성을 우선 찾아야 하는 것이고, 그의 여권에 나와 같은 ‘KIM MIN SEOP’이라는 영문 이름이 적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김’을 GIM으로, ‘섭’을 SEOB, SUB으로 등록해 두었으면 양도가 안된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하는 글을 올렸다.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워서, 800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렸고, 저마다의 ‘김민섭’을 호출(태그)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반응은 “내 이름은 왜 김민섭이 아니란 말인가, 개명하고 오겠습니다”라는 것이었고, ‘김민서’라는 친구를 태그하고는 “ㅂ 만들어 ㅠㅠㅠ” 하는 댓글을 다는 이용자도 있었다. 현실 감각이 높은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이름이 김민섭인 사람이 하필 영어 이름이 KIM MIN SEOP이어야 하고, 평일에 2박3일 남자 혼자 자유여행을 갈 수 있어야 하고,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10만원, 그런 사람을 찾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고 말했다. 실제로 그들의 예상이 틀리지 않아서 태그된 ‘김민섭’들도 저마다의 이유로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어느덧 이것은 “김민섭씨 후쿠오카 보내기 프로젝트”가 되었다. 누군가는 “그냥 2만원 환불 받으시지요” 하고 댓글을 달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나 즐거운 일이 되어 있었다. 좋아요든, 공유든, 댓글이든, 그 어떤 수단으로 여기에 참여한 모두가 이 이벤트에 즐거워했다. ‘아, 이런 게 되는 거야? 우리 힘으로 김민섭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두근거림이 서로에게 전해졌다. 내가 후쿠오카에 가고 못 가고, 하는 것보다도 김민섭씨를 찾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되어 있었다. 공유된 어느 글에서는 “엇 저와 영문 이름이 같으신데 이런 일이 있으면 서로 양도할까요?”, “아이고 좋죠” 하는 그들끼리의 연대가 일어나기도 했다.

싸이월드의 미니홈피가 지금의 페이스북 역할을 하던 불과 10년 전에,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과 친구를 맺는 유행이 잠시 있었다. 나의 미니홈피에도 김민섭들이 들어와서 글을 남겼고 “우리 김민섭 운동회라도 만들어 볼까요?” 하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곧 사그라들었던 그 유행을, 나는 2017년의 페이스북에서 다시 떠올린다. 이름이 같다는 그 단순한 이유와 인연만으로도 이처럼 재미있는 일들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연대한다는 감각은 별것이 아닌데도, 인천에서 후쿠오카로 가는 일보다도 더 멀고 어렵다. 아직 김민섭씨는 찾지 못했다. 페이스북에서 ‘김민섭’이나 ‘나는지방대시간강사다’라고 검색하면, 공유된 글을 볼 수 있다. 김민섭과, 김민섭을 아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글은 어느 이용자의 가장 다정했던 댓글로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이 글을 읽고 김민섭을 떠올린다. 동네친구 김민섭, 같은 반 김민섭, 같은 과 김민섭, 직장동료 김민섭, 가끔 생각나던 김민섭, 너무 오래 연락하지 않았던 김민섭, 연락이 올 때마다 ‘언제 한 번 보자…’라고 했던 김민섭, 그래서 언젠가부터 먼저 연락하기 너무 미안했던 김민섭, 내가 때렸던 김민섭, 화냈던 김민섭, 싸웠던 김민섭, 술주정부렸던 김민섭, 고백하고 차였던 김민섭,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다시 연락할 찬스다. 다시 오지 않을 김민섭 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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