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 폐허

손홍규 소설가

내가 사는 지역은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버려지다시피 한 공터가 제법 많다. 개발이 이루어진 택지라 해도 드문드문 공터가 있고 상업지의 경우 건물이 들어섰다 해도 빈 점포가 많아 차라리 없느니만 못할 만큼 을씨년스러운 경우도 있다. 공터는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쓰레기가 쌓여 악취를 풍기게 되고 그러면 민원이 들어가서인지 당장 뭔가를 짓지 않는다 해도 울타리를 둘러 사람들의 출입을 막게 된다. 그런 울타리에 경작금지, 출입금지 등의 경고문구가 붙은 걸 볼 수 있는데 경고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섬세하게 이랑을 내어 밭을 갈아먹는 이가 꼭 몇씩은 있게 마련이다. 심지어 옥수수나 콩 따위로 부룩까지 치며 알뜰하게 가꾸는 손길에서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온 혈통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처럼 작은 밭에서 무성해지는 채소들을 보고 있노라면 원래 거기가 논과 밭이었음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수런거림이 들리는 것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터는 무엇보다 폐허에 가깝다. 불법 경작자와 공무원들 사이의 숨바꼭질, 울타리를 넘어 와 새로이 쌓여가는 쓰레기들, 그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무심한 시선들, 무엇이 될지 스스로도 알 수 없어 잔뜩 웅크리고 있는 듯한 공터 자체의 침울한 분위기들이 뒤엉켜서 그렇다. 폐허란 문명의 결과다. 자연 상태 그대로인 곳을 폐허라 부르지는 않는다. 폐허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반드시 문명이 있던 곳이며 그런 점에서 볼 때 조금 과장한다면 모든 도시는 자기 내부에 폐허라는 미래를 품고 있는 셈이다. 폐허가 되기 위해 세워지는 도시는 없겠지만 폐허라는 운명을 영원히 피해갈 수 있는 도시도 없을 것이다. 공터는 아직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폐허보다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가까워야 하지만 거기에서 무엇이 실현되든 언젠가 다시 그 공터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으리라는 예언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고 그곳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나 역시 언젠가 그처럼 폐허가 되고 말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문화와 삶]가슴속 폐허

내가 종종 다니는 식당 옆에도 그런 공터가 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 철제 울타리 옆에 서서 담배를 한 대씩 피우면서 그처럼 불편한 마음으로 나의 폐허를 연상시키는 공터를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곳 역시 일반적으로 공터가 겪는 변화를 겪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무심히 공터를 바라보다 내게 다가오는 파문을 지켜보면서, 방금 그 파문을 일으킨 바람이 나를 맴돌아 사라지는 걸 느끼면서, 차분히 허리를 굽혔다가 흔들거리며 몸을 곧추세우는 개망초들을 보면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저 공터는 내버려두면 이처럼 개망초가 무성한데, 아무리 지천에 흔한 개망초라 해도 작고 하얀 꽃들이 몸살이라도 앓듯 흐드러지게 피어나 온통 꽃밭을 이루는데, 왜 사람은 내버려두면 폐허가 되고 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마른세수를 한 뒤 뜻밖의 꽃밭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폐허를 가꾼 건 불법 경작자도 아니었고 나와 같은 구경꾼도 아니었다. 비와 바람과 햇살이었다. 사람을 키우는 비와 바람과 햇살은 무엇일까를 헤아리다가 나도 모르게 찔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폐허라고만 여겼던 그 공터에 비와 바람과 햇살이 다녀갔듯이 사람의 가슴에 다녀간 것들, 내가 알지 못한 사이에 나를 다녀간 모든 이들, 지금까지 나를 키워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지 못했던 그이들이 순식간에 그리워졌다. 언젠가 저 공터는 무참히 갈아엎어져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고 그 자리에 얼마나 높은 건물이 들어서든 이 기억은 언제까지고 사람의 빈 가슴은 꽃밭이 되어야 하며 거기에 꽃씨를 뿌리는 일이야말로 사람이 해야 할 일임을 증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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