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속 ‘외고·자사고 정책’

이기정 서울 구암고 교사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인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어떻게 하는 것이 좋았을까? 최선은 외고·자사고의 존립 근거가 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0조, 제91조의3 등의 개정을 통해 일반고로의 전환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다른 정치세력이 반발하지 않을까? 이 공약은 정치권의 합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유승민·심상정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다. 또 시행령 개정이라 그 권한이 정부에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면 외고·자사고를 그대로 두면서 공약의 취지를 살리는 길은 없었을까? 학생 선발을 일반고처럼 오로지 추첨으로만 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안철수 후보의 대선공약이었다. 이도저도 다 버겁다면? 공약 이행을 포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국민에게 피로감만 줄 바엔 차라리 후일을 도모하는 게 낫다. 그런데 정부는 어떻게 했나? 정부의 전략은 무엇이었나?

[학교의 안과 밖]혼란 속 ‘외고·자사고 정책’

먼저 헌법재판소에 의해 브레이크가 걸린 전략이 있다. 학생들의 외고·자사고 지원을 곤란하게 만들어 이들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케 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외고·자사고의 선발 시기를 일반고와 일치시키고, 외고·자사고 지원학생의 (평준화 지역) 일반고 지원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선발 시기의 일치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다. 하지만 효력이 작다. 그래서 함께 시행한 것이 외고·자사고에 지원하는 학생의 일반고 지원을 막는 것이다. 효력이 크지만 비교육적인 게 문제다. 이것은 외고·자사고 지원 학생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는 방식이다. 어린 학생들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도저히 문재인 정부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정책이다.

이에 대한 자사고의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지난 4월11일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헌재는 작년 6월에도 가처분 결정을 내려 효력을 정지시킨 바 있다. 헌재가 개혁의 발목을 잡은 게 아니다. 애초에 정부 정책이 문제였다.

시행을 앞둔 전략도 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있는 교육감 권한을 이용해 이들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행되지 않았지만 교육감들이 의지를 갖는다면 곧 시행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첫 번째 전략보다 더 참담하게 실패할 것이다. 외고·자사고와 교육청 간에 소모적 갈등만 남을 것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존재하는 특목고와 자사고에 대한 교육감의 재지정 심사권은 이들 학교 다수를 폐지할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 아니다. 정부와 교육감이 이들 조항을 외고·자사고의 폐지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이후의 법적 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몇 개 학교만 일반고로 전환한 후 생색내기를 할 거라면 몰라도 이것은 공약 실현의 효과적 방법이 아니다.

승패 여부를 떠나 바람직한 전략이 아니다. 이것은 외고·자사고 구성원들에게 모욕을 주는 방식이다. 외고·자사고 구성원이라 해서 교육적으로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다. 외고·자사고가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기관으로 변질되지 않았냐고?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것은 일반고도 마찬가지다. 외고·자사고가 훨씬 심하기야 하겠지만 그것은 그들 학교에 성적 우수생이 많은 데서 비롯된 면이 있다. 일반고도 성적이 우수한 학교의 경우는 입시에 목매는 정도가 외고·자사고에 뒤지지 않는다. 외고·자사고 공약이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략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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