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쌀이 지켜지는 것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일찍 모내기를 한 이웃 논에는 이삭이 패고 있다. 장마가 지나고 이삭 패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햅쌀 생각도 슬금슬금 피어오른다. 재어 둔 나락을 조금씩 꺼내서 때마다 찧어 먹기는 해도, 한여름을 지난 쌀은 맛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서늘하고 맑은 가을날 먹는 햅쌀밥 생각이 난다.

[시선]좋은 쌀이 지켜지는 것

농사를 지을 때, 어려운 것은 먹을 만큼 짓는 것이다. 논농사야말로 어지간히 작은 논 토막이어도 몇 집 먹을 쌀은 나온다. 처음 농사지을 때부터 쌀을 팔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쌀을 사는 사람들이 묻는 것이 꽤 자세해졌다. 품종이나 농법, 도정에 관한 것 따위를 꼼꼼히 묻는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내 딴에는 조금 아는 것이라고 힘을 줘 가면서 설명을 한다. 이런 질문들이 모여서 결국 좋은 쌀이 지켜지는 밑거름이 된다.

좋은 쌀을 고르는 방법에 대해서라면, 여기저기 자세한 정보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품종을 고르는 것, 농사를 어떻게 지었는가, 보관은 어떻게 했고, 도정은 언제 했는가 따위들이다. 한데 이런 이야기는 아무래도 사람마다 자기 형편에 따라 강조하는 부분이 달라진다. 종자원에서는 품종의 선택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하고, 농사꾼은 어떻게 농사짓는가에 따라 아주 다른 쌀이 된다고 한다. 보관을 제대로 해야만 1년 내내 좋은 쌀이 될 것이라고도 하고, 도정을 직접 해서 파는 사람은 도정한 지 몇 시간만 지나도 쌀은 망가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어떤 땅에서, 어떻게 농사짓는가 하는 것이다. 좋은 땅에서, 농약이나 비료를 안 쓸수록 건강하고 좋은 쌀이 된다. 우리나라는 농사에 농약, 비료 모두 상당히 많이 쓰는 편에 든다. 그래도 벼농사만큼은 농약 쓰는 것이 점점 줄고 있다. 비료를 쓰는 것도 더 줄일 여지가 있어 보이지만, 그것도 차차 바뀌어 가지 않을까 싶고. 유기농이나 자연 재배 같은 농법으로 농사지은 쌀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으니 농사짓는 것도 거기에 맞춰 갈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쌀을 쓴다 하고 써 붙인 식당이 생기고, 늘어나면 더욱 좋겠지만.

품종을 고르는 것은 농사지을 때 신중을 기하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쌀을 사 먹는 입장이라면 혼합미라고 해서 이것저것 섞은 것 말고, 자기 품종을 밝힌 것이라면 다들 어지간히 괜찮은 품종이라고 볼 수 있다. 입맛 따라 고르면 된다. 요즘은 우리 쌀 품종도 고시히카리나 밀키퀸 같은 일본 품종에 견줄 만한 것이 나온다. 고시히카리는 밥맛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인데, 최근에 나온 해들 같은 품종은 밥맛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더 좋다고 골랐다는 조사가 있다. 꽤 비싸게 팔리는 반찹쌀로 나오는 품종들도 비슷한 사정이다. 농사야말로 가장 먼저 다른 나라에 기대지 않고, (특히 일본에) 자급을 해야 하는 것으로 우리 쌀 품종 소식은 더없이 반갑다. 덧붙여서, 저장이나 도정하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피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다. 저장하는 과정에서 큰 문제가 생기기도 하는데, 수입밀에도 쓰이는 알루미늄포스파이드(에피흄) 같은 독성이 강한 약을 훈증처리라면서 쓰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예 사용금지를 시키는 나라도 있는 약품인데, 우리나라는 허용량 자체가 너무 높다. 이것도 쌀에 대해서 꼼꼼히 묻는 사람들이 있어서 알려졌다. 그에 견주면 벼를 도정하고 나서 시간이 지나는 것은 먹는 사람이 밥맛으로 금세 알 수 있으니까 심각한 문제까지는 아닌 것도 같고.

농사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좋은 쌀을 고르는 방법에 대한 여러 얘기가 다 맞는 얘기로 들린다고 했던 건, 과정마다 일을 어떻게 하는지가 쌀을 갑자기 훨씬 더 좋게 할 수는 없어도, 어디 한구석 허투루 하면 한 해 꼬박 농사지은 쌀이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기다란 논둑에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낮은 데가 있으면 그리로 물이 다 흘러버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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