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지키는 사람들

미하엘 엔데의 동화 <끝없는 이야기>는 비가 억수로 퍼붓는 11월의 아침, 한 어린이가 책방에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책방 주인은 이곳에는 애들이 볼만한 책이 없고, 우리 책방의 책은 너한텐 절대로 팔지도 않을 거라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책방 주인이 전화를 받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간 사이에 아이는 주인이 읽다가 내려 둔 책을 집어드는데 표지를 보자마자 매료된다. 책의 제목은 <끝없는 이야기>였다. 어린 바스티안은 값이 얼마가 나가더라도 그 책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주인은, 여기 있는 책은 아이들에게 팔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한참 망설인 끝에 바스티안은 책을 외투 안에 집어넣고 꼭 감싸 안은 뒤에 책방을 빠져나와 쏟아지는 빗속을 그대로 달린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애들이 볼만한 책”이란 무엇일까.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야만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던 시절, 책은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 같은 것이었다. 사람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책을 볼 수 있도록 내놓거나 볼 수 없도록 감추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예로부터 어떤 책은 각별한 대우를 받았다. 은행 직원이 육중한 금고를 열 듯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몇몇 특권층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백성들이 볼만한 책”이 지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금서는 역사적으로 권력의 전횡과도 관련이 깊었다. 진시황 하면 떠오르는, 세상에서 그 책의 존재를 없애기 위해 불태우는 ‘분서’로부터 배포를 금지하는 반포금지, 개인 소장을 금지하는 사장금지(私藏禁止), 학교와 도서관의 구입이나 반입을 금지하는 구래금지(購來禁止), 유통, 열람 금지까지 다양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금지된 책도 있다. 중국 명나라 때 기록에는 사대부들이 경학공부를 뒷전으로 하고 밤낮 어느 책만 읽어서 그 책을 금서로 지정한다는 구절이 있다. 우리도 독재체제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금서를 읽다가 고초를 겪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대학 때 한 선배 언니는 등굣길 버스에서 시집을 읽다가 형사에게 연행되어 수업에 오지 못했다. 언니가 읽다가 잡혀가게 만든 책은 지금 어느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으며 그 언니는 노래를 훔치는 세계에 대해서 노래하는 시인이 되었다.

이제는 금서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나다움을 찾는 어린이책’ 중 일곱 권을 금하라는 의회의 압력과 일부 민원이 있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회수를 결정했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서 폭력적인 불법 콘텐츠에 노출된 어린이에게 정확한 성교육을 펼치기 위해 전문가가 연구하고 검증했으며 세계의 어린이들이 학교와 도서관에서 편하게 읽고 있는 책들이다. 이 책을 회수하라는 사람들은 논의와 추천의 이유에는 귀를 막은 채, 읽어보니 불편하고 유해하다는 말만 쏟아낸다. 어린이책을 만들고 그중에서도 좋은 책을 찾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설마 어린이를 해롭게 하려고 이런 책을 내놓았을까.

어떤 책을 책장의 높은 곳에 올려둘까 말까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면 한 번쯤 하는 고민이다. 그러나 어린이는 의자를 놓을 줄 알고 책은 그 책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은 디지털 기기로 거의 모든 정보를 어린이가 입수하는 시대다.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휴대폰 앞에 고립된 아이들을 표적 삼아 달려드는 잔혹하고 폭력적인 콘텐츠에 대해선 이만큼 빠르고 강력하게 분노가 조직화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 콘텐츠는 너무 방대해서 어쩔 수 없다고 방관하면서 왜곡된 호기심을 바로잡고 몸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알려주려는 책은 금지된다. 어둠의 성, 공포의 성 안에 아이들을 가둬두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책으로 아이들과 대화하며 안전한 곳으로 어린이를 데려오려는 교사와 작가의 노력은 무력하게 제압당했다. <끝없는 이야기>를 품고 뛰쳐나갔던 바스티안은 소멸의 위기에 처한 세계를 구한다. 과연 누가 아이를 지키는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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