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직병사를 보호하라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당직병사 현씨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장관이 현씨의 말을 거짓말로 치부했기 때문인데 사과하면 취하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돌멩이 하나밖에 쥐지 못한 현씨가 혼자 힘으로 실세 장관에 맞서고 있다는 얘기다.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현씨는 추 장관을 공격하려고 혹은 집권 정치세력과 맞서 싸우기 위해 고소한 게 아니다. 그가 지키려는 것은 거창한 대의나 명분이 아니다. 단지 자신이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힘으로써 추 장관을 비롯한 위정자와 현 정부의 열혈 지지자들에 의해 난도질당한 자신의 명예를 지켜내려는 것이다. 친구에게 우연히 털어놓은 말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그 말은 친구의 지인을 통해 기자에게 전해졌고 지난해 12월 말 한 주간지에 보도된 뒤 정국을 뒤흔들었다. 이 과정에서 현씨는 다윗으로 불리기도 했고 ‘불장난으로 온 산을 태워 먹는 철부지’ 또는 ‘허위창작물을 쓴 거짓말쟁이’에 ‘국정농간세력’이 되기도 했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판단을 미루며 보호를 망설이고 있지만 현씨는 틀림없는 공익제보자다. 그의 제보가 군부대 인사행정의 공정성 담론에 불을 지폈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공익제보를 자처했던 것은 아니다. 집권정당과 싸우려고 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출발은 우발적인 사적 발화였다. 다만 그 발화가 여야 정쟁의 도구로 비화하면서 현씨 또한 국회 증언을 자처할 만큼 스스로의 발언과 주장이 갖는 무게를 인식해갔다.

야당에서는 현씨의 제보를 여당 공격에 사용하고 있고 반대로 여당의 일부 의원과 지지자들은 현씨를 반민주당 세력으로 몰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당초부터 친여(親與)도 아니었고 친야(親野)도 아니었다. 한 병사의 미복귀와 비정상적인 휴가 연장에 문제의식을 가진 당직병사에 불과했다. 그리고 미복귀한 병사가 사건 발생 당시 여당 대표의 아들이었을 뿐이다. 문제의 병사는 돈 많은 재벌의 아들일 수도 있었고 야당 유력 정치인의 아들일 수도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

현씨의 제보 대상이 야당과 관련이 있었다면 그때는 여당이 아닌 야당이 현씨를 공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민주당이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 1987년 민주화운동이 일어나 대통령직선제가 실시되고 1992년 마침내 문민정부로 정권교체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현씨와 같은 공익제보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5년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의 보도지침 폭로, 1987년 황적준 교수의 박종철 고문사 증언, 1990년 이문옥 감사관의 재벌 부동산보유실태 고발, 같은 해 윤석양 이병의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양심선언, 2016년 박헌영-노승일의 국정농단 제보가 없었다면 지금의 민주당이 가능했겠는가.

그밖에도 한국 사회를 밝힌 여러 공익제보자가 있었지만 이들을 추동했던 것은 거창한 명분이나 공명심이 아니었고 이들이 고발을 통해 이루려던 것 또한 상대방의 패배가 아니었다. 단지 상식에 어긋난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런 양심들이 모여 폐쇄된 조직 안에서 벌어지던 부정과 비리, 부패와 음모가 세상에 드러나게 됐고 사회는 그렇게 점점 더 개방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공익제보자가 늘고 사회가 이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폐쇄사회에서 개방사회로 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이에 역행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2018년 말 기획재정부 사무관 신씨가 청와대의 KT&G 및 서울신문사 인사개입을 폭로했을 때 여당 의원들은 그를 “돈 벌기 위한 사람”으로 매도했고 심지어 기재부는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고발하기까지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 6월엔 권익위의 잘못으로 대북확성기 납품비리를 신고한 김영수 전 소령이 기무사 조사를 받는 일도 있었다. 권익위가 신고 자료를 국방부에 그대로 이첩했기 때문이다.

1992년 중위 신분으로 군 부재자투표 부정을 폭로했던 이지문씨는 신씨의 폭로에 대한 여당의 태도를 놓고 “정권 입맛에 맞으면 의인이고 안 맞으면 배신자인가”라며 비판했다. 또 김영수 전 소령은 권익위가 국방부에 자료를 넘겨준 것을 ‘고의’보다는 ‘무능’ 때문이라고 했다. 진영논리 때문이건, 무능 때문이건 결과는 같다. 공익제보자 보호 대신 권력 비호를 택한 것이다. 지금 현씨를 둘러싼 상황도 그렇다. 현씨의 보호를 방기하는 것은 정권을 비호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개인을 구속하고 위압하는 폐쇄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된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