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정당의 진짜 정치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장애인운동 진영에서 창당한 정당의 이름이다. “장애인 의제를 알려내고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위성정당”이자, “본선거 시작 전에 산화할 가짜 정당”이라고 홈페이지에 당의 성격을 밝혀놓고 있다. 탈시설 권리, 장애인 포괄적 재난 지원,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이동권, 교육권, 자립생활, 의사소통, 문화예술, 발달장애인, 장애여성, 건강권 등 11개 영역의 정책요구안을 내걸고, 각 요구안을 대표하는 11명의 장애인 후보가 다양한 캠페인과 거리 유세를 벌여왔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그런데 이 당은 지난 2월19일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한 통의 공문을 받게 된다. 정당으로 등록하지 않았음에도 ‘당’이라는 명칭을 쓰고 관련 활동을 하는 건 정당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이니 캠페인을 중단하라는 것이 요지였다. 활동을 계속 이어가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이에 대해 탈시설장애인당은 공식 선거 전 자진 해산할 가짜 정당임을 매번 적시했음에도 과도한 해석과 왜곡을 하고 있다며, “그런 식이면 식당도, 성당도, 불한당도, 서당도 정당이냐”고 유쾌하게 맞받아쳤다. 얼마간의 어려움과 탄압이 예상되지만, 이 정당의 활동은 예정된 시기까지 꿋꿋하게 이어질 것이다.

탈시설장애인당 당원인 나는 이번 일을 겪으며, 지난 총선에서 많은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던 또 하나의 위성정당 사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나라의 양대 기득권 정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해 이미 누더기가 되어버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던 일 말이다.

양쪽 위성정당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양쪽 모두 본질적으로 가짜 정당이라는 것이다. 차이점은 한쪽은 가짜임에도 진짜라고 우겨서 부당한 활동을 인정받았고, 다른 한쪽은 가짜라고 선언했음에도 정당한 목소리가 탄압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전자의 경우 진짜 정당으로 인정받았지만 가짜 정치를 했고, 후자의 경우 비록 가짜 정당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지만 진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자크 랑시에르는 우리가 통상 정치라고 부르는 것이 기존의 나눔 질서와 기득권의 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한 치안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진짜 정치란 바로 그 치안의 체제를 교란시키고 해체하는 일이다.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를 들리게 하며, 기존의 판을 뒤엎고 재구성하는 일이 진정한 정치인 것이다.

장애학에서 쓰이는 조어 중 ‘싯포인트’(sitpoint)라는 것이 있다. ‘서 있는’ 지점을 뜻하는 ‘스탠드포인트’(standpoint)와의 대비 속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존재의 상이한 관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지닌 용어다. 또한 이 용어는 높은 곳에 서서 군림하는 위로부터의 정치가 아닌,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의 눈높이에서 출발하는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함축하기도 한다. 이처럼 낮은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는 정치, ‘몫 없는 이들의 몫’을 창조하는 정치, 진짜 정치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탈시설장애인당(drparty.or.kr)에 여러분의 힘과 목소리도 함께 실어주시길 요청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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