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평화를 위한 남북관계 활용법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 4월 30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외교를 통한 현실적·실용적 접근을 추구한다는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을 공개했다. 한·미 양국은 21일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정책을 구체적으로 조율했을 것이다. 이제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바탕으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협상을 재개해야 할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2018년 북·미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관계정상화·평화체제·비핵화·교류협력 등을 단계적으로, 동시에 주고받으며 이행한다는 기본 방향에 대해 양국 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비핵화 범위와 신고·검증, 다자협상 등 실제 협상에서 제기될 수 있는 쟁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바이든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핵무기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폐기와 초기부터 완전한 신고·검증을 이행하는 일괄타결 방식을 고집한 결과 하노이회담이 결렬된 사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이란 핵합의 과정에서는 기본적 위협인 이란의 핵개발 차단에 집중하는 실용적 접근을 취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처음부터 모든 관심사를 논의하고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부분 타결, 부분 이행’이라는 현실적 균형점을 찾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또한 북핵 문제를 국제적 비확산의 문제로 보는 견지에서 다자협상을 통한 해결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나, 문제 해결의 근본 열쇠는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북한의 안보 불안감 해소에 있기 때문에, 북·미 양자의 중심적 역할은 불가피할 것이다. 물론 다자협상은 협상 중재 및 대안 제시, 결과이행 보장 등 회담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협상의 지속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북·미 양측은 자기 주장만 고집하지 말고 협상 의제의 범위와 형식 등에 대해 유연하고 실용적으로 접근해 조기에 대화를 재개하고 성과를 하나씩 쌓아가며 신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상대방의 의도를 의심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북한의 핵능력 강화로 인한 안보 위협은 심화될 것이고, 북한의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비핵화 및 평화정착을 견인하기 위한 노력도 필수적이다. 2018년 초 평창 올림픽으로 재개된 남북관계는 4·27 판문점선언으로 결실을 맺었고, 이는 6·12 북·미 정상회담과 9·19 평양공동선언, 그리고 2019년 초 북·미 정상 간 하노이회담으로 연결됐다. 남북관계가 북·미 협상을 추동하고 촉진했던 것이다. 특히 2018년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이 한 차례도 없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남북관계 발전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켜 비핵화 협상의 원활한 진행을 돕는 안전판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 정부는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없는 가운데 남북관계가 앞서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봤고, 결국 북·미 및 남북 대화가 모두 정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남북협력을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여 남북관계 발전과 북핵 문제 해결, 북·미관계 개선의 선순환 구도를 다시 만들어나가야 한다.

현실적으로 대북 제재가 남북협력 진전에 제약으로 작용하는 만큼, 대북 제재 유연화 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할 필요가 있다. 우선 대북 인도적 협력에 대한 제재 면제를 간소화하고 확대해 나가야 한다. 최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대북 지원 NGO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게재했는데, NGO들이 제재위 승인 없이 대북 수출이 가능한 물품 목록(화이트리스트)을 마련하고, 인도적 협력 관련 금융거래를 보장해 줄 것 등을 제안한 것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나아가 비핵화 진전에 따라 남북 간 협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비핵화에 대한 분위기 조성과 상응조치로서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철도·도로 연결 등 남북협력사업 추진은 미국의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특정한 남북협력에 대한 제재 면제는 기존의 제재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이점이 있고, 북한의 지나친 대중의존 심화를 방지할 수도 있다. 제재 완화에 스냅백 조치(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그 보복으로 특혜를 회수하는 것)가 있는 한, 북한이 중도에 합의를 위반해 스냅백이 발동되는 경우 북한은 더 큰 손해를 볼 것이다.

비핵화 협상은 한·미 양국의 노력만으로 결실을 맺을 수 없다. 미국의 실용적 대북 접근에 대한 북한의 전향적 태도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의지와 미국 민주당 정부의 동맹 중시 정책이 만들어낸 소중한 기회를 북한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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