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의 ‘슬의생’을 기대하며

6월이 되면 TV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가 시작합니다. 시즌1을 재밌게 봤기에 기대가 큽니다. 드라마 속의 의사는 성실함과 헌신을 통해 큰 감동을 줍니다. 환자의 간절함도 누구나 한번은 느껴봤던 심정이기에 눈물과 웃음을 끌어내죠.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을요.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인천 21세기병원에서 의사가 아닌 행정직원이 허리 수술을 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들이 절개하고 뼈를 깎고 나서야 의사가 처치했습니다. 봉합도 그들 몫이었죠. 엎드려 누운 환자를 속이기 위해 의사만 말을 했고, 환자는 등 뒤의 일을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도 나왔습니다. 내부고발자는 수익 극대화가 그 배경이었다고 밝혔죠. 대리 수술은 충격적이지만 드물지 않게 일어납니다. 2018년 한 의사는 의료기기 판매업체 직원에게 100차례 의료행위를 시켰습니다. 2014년부터 3년 간 울산 한 병원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수술을 700번 넘게 했습니다.

의사의 만행은 이뿐 아닙니다. 처방전을 몰아준다며 근처 약국에서 수천만, 수억원을 뜯어내기도 합니다. ‘지원비’를 상납한 약국에 환자를 보내고, 처방전에 쓸 약을 알려주는 수법을 이용하죠. 처방전 수입이 큰 몫을 차지하는 약국으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원비 요구를 거부하면 의사는 보복을 하니까요. 지원비를 뜯어내고 입을 싹 씻는 의사도 있습니다.

약사법 24조는 이런 행위에 징역형, 벌금형을 명시하고 있지만 처벌받은 의사는 거의 없습니다. 돈을 준 약사도 처벌을 받으니 억울하고 답답해도 신고하기 힘든 구조 탓입니다. 대리 수술도 비슷합니다. 적발을 당하는 일도 드물지만, 적발돼도 자격정지 3~4개월에 그치고 말죠. 적발이 힘든 이유는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알 도리가 없으니까요.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가 필요합니다. 인천 21세기병원 경우도 내부자가 몰래 찍은 동영상을 통해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대리 수술이 극소수 의사의 짓이라지만, CCTV가 없는 이상 이 또한 알 수 없습니다. 다수의 정직과 성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CCTV 설치가 시급하죠. 하지만 의사들은 자기 보호를 위해 응급실 CCTV 설치만 받아들였습니다. 수술실 CCTV 설치는 거부하고 있습니다. 의료과실 발생 시 증거로 쓰일 테고, 대리 수술도 힘들어질 테니까요.

의료서비스가 공익을 깡그리 무시한 채 사익만 추구하다 보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계속 이어지는 겁니다. 대리 수술은 환자를 많이 볼수록 수입이 증가하는 한국 의료체계와 직결돼 있습니다. 환자를 빨리빨리 보다 못해 이런 일까지 저지르는 것이죠. 그 대가는 온전히 환자 몫입니다. 지원비 갈취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가 약사와 약속을 지켜도 불필요한 약 처방으로 이어지고, 결국 의료비 증가로 환자 부담이 커집니다. 이를 위해 의사는 정치권력도 휘두르고 있습니다. 철밥통을 지키려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고, 코로나19 사태 중 집단휴진도 불사했습니다. 시험 거부로 동조한 의대생들은 추가 시험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뻔뻔하게 받아냈죠. 정부와 국회는 매번 의사 눈치만 보며 공익 추구의 임무를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의사는 견제도 제한도 없는 절대권력을 누리고 있는 셈입니다.

수술실 CCTV 설치 관련 법안 처리가 국회에서 다시 논의되고 있습니다. 통과되더라도 의사 권력은 큰 상처가 나지 않겠죠. 공공의료 강화 등 큰 틀을 바꿔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와 가족의 목숨을 담보 잡힌 일반 시민은 의사의 뻔한 횡포에도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드라마 속 의사들이 아무리 슬기로워도 현실의 그들만큼 슬기롭지 못함을 비웃어야 할까요. 아니면 분노해야 할까요.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는 마음 편히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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