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 투쟁 20년과 민주주의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시선] 이동권 투쟁 20년과 민주주의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를 계기로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올해로 꼭 20년이 되었다. 이동권 투쟁 20주년을 맞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다양한 행사와 직접행동을 진행 중이다. 특히 광주민주항쟁 41주년이던 지난 5월18일에는 옛 전남도청 앞 금남로사거리에서 버스 다섯 대를 점거하고 “장애인에게 민주주의는 없었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몇몇 활동가들은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점거한 버스 위로 올랐다. 내게는 그 광경이 41년 전 그날의 모습을 실천적으로 재현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장애인 이동권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듯했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때마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전장연을 제4회 ‘6월 민주상’ 대상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20년간 꾸준히 장애인 이동권 개선 활동을 전개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을 선정 이유의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만큼 그 권리는 제도적으로도 잘 보장되고 있을까?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라 2007년부터 수립되고 있는 5개년 계획의 이행 성과는 이에 대한 답변을 제공함과 동시에,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을 보여준다.

애초 법 제정 이후 처음 마련된 ‘제1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계획’상으로는 2011년까지 전체 시내버스의 31.5%를 저상버스로 교체해야 했지만, 당시 저상버스 보급률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2%였다. 그리고 ‘제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계획’상으로는 2016년까지 41.5%를 저상버스로 교체해야 했지만, 지금도 저상버스 보급률은 28.4%에 머물러 있다.

즉 한국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국가 계획에 따라 5년 전 달성했어야 할 목표는 고사하고, 이미 10년 전 제시했던 목표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정당과 의회를 통해 어렵사리 관철된 국민의 의사조차 행정 과정에서 무력화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수준은 지역에 따라서도 매우 큰 격차를 나타낸다. 서울시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56.9%이지만, 울산시는 12.3%, 충남도는 9.8%에 불과하다. 이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한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방자치의 공백과 한계를 드러낸다.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 기본권이 균등하게 보장되는 것을 전제로 지역의 조건과 특색에 맞는 정책을 활성화하는 게 지방자치의 지향일 터이다. 그러나 현재는 각 지역 사회운동의 역량과 지자체의 재정적 여건 등에 따라 불균등함이 발생하고 있다.

정치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에 따르면 민주주의란 ‘봉기로서의 민주주의’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에 갈등적으로 기입되는 과정, 혹은 양자의 변증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20년간 치열하게 전개된 장애인들의 투쟁과 직접행동에서 민주주의의 희망을 찾을 수 있지만,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전면적인 재점검과 변환을 요구받고 있는 듯하다. 이 역시 궁극적으로는 ‘democracy’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데모스(민중)의 힘’에 달려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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