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로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혐오는 그 자체로 나쁘다. 그런데 혐오는 ‘옳지 않다’는 당위와 윤리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값비싼 비용을 치르게 한다는 점에서도 최악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자 한다. 혐오와 차별은 소수자 집단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한다. 인구 집단의 일부가 평등한 기회를 제한당한다는 것은 그들의 역량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된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들은 하나같이 차별금지와 다양성 증진을 강조한다. 윤리적 양심에 기초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기업에 손해라는 합리적 ‘계산’도 깔려 있다. 경영컨설팅회사 매킨지가 2020년 발간한 보고서 제목은 ‘다양성이 이긴다’였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또한 혐오는 우리 사회가 처한 진짜 문제에 눈을 가리고 엉뚱한 곳에서 불필요한 싸움을 벌이게 만든다. 미국과 유럽의 극우들은 ‘먹고살기’ 힘들어졌다며 동유럽,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에서 온 이주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과 유럽이 먹고살기 어려워진 것이 이주노동자 때문일까? 오히려 이주자 덕분에 지금까지 성장했고, 지금도 이주자 없이는 한순간도 사회가 지탱될 수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자들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추방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실행에 옮길 수조차 없는 선동으로 정치적 사기극을 벌이는 사이 진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방안에 집중해야 할 사회적 에너지가 소진되고 있다.

한국의 여성혐오도 마찬가지다. 젊은 남성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런데 어려운 것은 여성도 매한가지고, 여성에게 사회적 자원이 집중되어 남성이 힘들어진 것도 아니다. 여성가족부 예산의 대부분은 가족·청소년 분야에 쓰이며 여성 분야 예산은 17%뿐이다. 성희롱·성폭력·성매매 예방 및 피해자 보호, 아동·청소년 성보호, 경력단절여성 지원 등에 배정된 예산을 줄여 남성에게도 공평하게 분배하면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여성할당제라 불릴 만한 것도 거의 없다. 공무원 양성평등 채용목표제의 최근 수혜자는 주로 남성이었다. 국회의원 비례대표 중 절반을 여성으로 하고,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주권상장법인의 경우 이사 중 최소 1인을 여성으로 두는 조치를 취했지만, 여전히 국회의원과 임원 중 여성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다. 최근 느닷없이 여성 징병 논의가 튀어나왔지만, 남성을 위한 대안인지 의문이다. 군 복무기간 축소, 정당한 임금 지급, 폭력·괴롭힘 금지, 의식주 개선, 충분한 휴식·휴가 보장, 모병제 도입 등 징병 남성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것을 제쳐둔 채 여성을 징병하는 것은 손해와 고통을 분담하고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에게로 확대하는 격이 될 수 있다.

대안 찾기 힘든 사회적 현실에서
문제해결보다 손쉬운 ‘혐오’ 쏠려
사회 불만 동원해 지지 얻는 정치
진짜 문제 외면…갈등·분열 조장
회생 위한 막대한 비용까지 초래

거꾸로 일부에서는 난민과 트랜스젠더가 여성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한다. 다른 소수자와의 연대가 여성의 정체성 정치를 훼손한다는 주장도 있다. 여성의 안전에 무감각했던 우리 사회를 고발하고 대책을 요구하며 싸우는 것은 당연히 정당하다. 여기에 온 힘을 모아도 부족할 판에, 엉뚱한 곳에 전선을 설치하여 힘을 낭비하고, 함께해야 할 사람들을 내치면서 이 힘겨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때문에 나라가 무너지고 교회가 무너진다고 선동한다. 오늘날 교회가 처한 위기를 애써 외면하고 특정 집단을 지목하여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은 ‘교회다움’과 거리가 멀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교회의 위기가 극복되는 기적은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보다 앞서 혐오와 싸우고 대처해왔던 나라들의 경험에 따르면, 결국 가장 중요한 변수는 ‘정치’였다. 시민들은 대안을 찾기 힘든 사회적 현실에서 진정한 문제 해결보다 혐오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게 된다. 사회의 불만을 동원하여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는 이 대중적 혐오에 불을 붙인다. 일시적으로는 지지를 얻기도 하고 심지어 집권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잠시라도 표를 얻는 이익이라도 있었지만, 사회는 갈등과 분열에 신음해야 했고 그 잔재를 청소하기 위한 막대한 비용까지 떠안게 되었다. 진짜 문제를 외면하게 하고, 허상을 만들어 공격하도록 선동하는 정치에 지지를 보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리적인 당위를 제쳐두더라도 나와 우리 사회의 현실적 이익을 위한 합리적 선택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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