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시인
[詩想과 세상]대학 시절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기형도(1960~1989)

1987년 6월, 대학가는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했다. 연일 교문을 사이에 두고 민주와 독재가 대치했고, 강의실은 텅 비어 있었다. 기말시험은 연기되거나 거부됐다. 거리도 다르지 않았다. 제대한 지 6개월 만이었다. 군생활 내내 충정훈련과 좌경사상에 대한 정신교육을 받은 난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그렇게 시(詩)로 도피했고, 여름방학 동안 상계동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등록금을 벌었다. 그때 누군가 물었다. “대학생이 왜 여기에 있냐”고. 참 부끄러웠다.

1980년 ‘서울의 봄’은 짧았고, 정권을 탈취한 신군부에 의해 광주는 피로 물들었다. 대학 교정은 아름다웠지만, “총성이 울”릴 만큼 살벌했다. “나뭇잎조차” 시인의 양심을 찔러댔다. “존경하는 교수”는 무자비한 탄압과 “감옥과 군대”로 끌려가는 제자들을 보고도 침묵했다. 투쟁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던 시인은 “외톨이”가 됐다. 그때 끌려간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80년 한국을 닮은 미얀마에도 봄이 찾아오길….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