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시인
[詩想과 세상]바람

힘들 때는 단어를 거꾸로 부르지 그러면 마음이 조금 고요해져 람바 람바 람바 상처는 오래된 거야 아마 태어나기 직전, 태어나고 바로일지도 아버지는 간디스토마였지 내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 병 낫게 해달라고 빌었대 아버지는 병 나았지 아버지는 병 나았지 나는 평생 그 빚 갚느라 세상의 구덩이란 구덩이는 다 메우고 있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병을 얻었지 그래도 죽지도 않아 아직 더 파야 하는 구덩이가 있대 더 이상 업을 짓지 말자 별을 한 마리 데려다 키우자는 네 말에 람바 람바 람바 사는 건 새벽의 흰 욕조에 기어오르는 흰 아기 거미를 휴지로 돌돌 말아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아슬아슬하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낭만적인 노을의 기지개

송진(1962~)

삶의 색깔과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환경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그 무늬는 많이 달라진다. 가난이나 질병, 불화로 시작된 인생 여정이라면 유년 시절부터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막막할 것이다. 내 편이 돼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어떻게 견뎌야 할까.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거나,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미친 듯 일에 파묻히거나, 먹지도 않고 잠을 자거나…. 시인은 “단어를 거꾸로 부”른다.

‘바람’이라는 말에선 시원함보다 끈끈함이 묻어난다. 반면 ‘람바’라는 말에선 경쾌한 람바다 리듬이 느껴진다. 극과 극의 감정이다. 시인은 아버지의 악업을 상속받아 가슴에 구덩이를 팠다 메우는 일을 반복한다. 언덕 정상에 이르면 바로 굴러떨어진 무거운 돌을 다시 정상까지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의 형벌을 떠올리게 한다. 산다는 건 “아슬아슬하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낭만적인”, 참으로 복잡다단한 일이다. 하루하루가 익숙한 것 같지만, 늘 낯선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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