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한국에서의 학살’

조운찬 논설위원

지난주 서울 예술의전당 미술관의 ‘피카소’전을 찾았을 때 수십명이 줄지어 입장하고 있었다. 하루 관람객이 3000명을 넘는다고 한다. 피카소의 인기는 ‘20세기 현대미술의 신화’라는 명성에 값한다. 전시 이름은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인데, 6·25를 앞둔 시점이어서인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조운찬 논설위원

조운찬 논설위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피카소의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 때문일 것이다.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을 다룬 이 그림은 피카소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지만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도판 소개는 물론 언급조차 금기시되어왔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에야 ‘해금’되었지만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의 학살’에는 군인들의 총검 앞에서 나체의 여성과 어린이들이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공포에 떨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 그림이 공개되었을 때 미국의 한국전 개입을 반대하는 반미 그림인지, 반전 평화라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은 그림인지를 놓고 해석이 엇갈렸다. 전자를 옹호하는 쪽은 피카소가 프랑스 공산당원으로 나토협약 반대, 반미시위 참여 등 친소·반미운동에 앞장서온 점을 부각시킨 반면, 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피카소가 ‘게르니카’ ‘시체구덩이’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면서 생명 평화사상을 일깨워준 점을 강조하며 논쟁을 벌였다.

피카소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18일, ‘한국에서의 학살’을 완성했다. 흔히 전쟁은 정규군 사이의 전투를 말하지만, 피카소는 전투 장면이 아닌 군의 민간인 학살을 화폭에 담아냈다. 이는 그것이 전쟁의 잔혹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는 작가의 정치적 의도가 투영된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학살 전쟁’이 된 6·25의 본질을 가장 적실하게 드러낸 작품이 됐다.

학계는 한국전쟁 기간 남북한 인구의 10%인 약 300만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것으로 추정한다. 주목할 점은 전선의 군인보다 후방의 민간인 피해가 훨씬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피카소 그림이 증언하듯 희생자의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였다. 한국전쟁 직후 남북한이 각각 발표한 피해 상황만을 살펴봐도 전체 민간인 사망자는 약 65만명으로 군인 사망자 44만명을 훨씬 웃돌았다(박찬승, <마을로 간 한국전쟁>). 이처럼 민간인의 희생이 컸던 것은 북한에서 진행된 미 공군의 무차별 공중폭격 탓도 있지만, 전쟁 이전부터 한국 사회에 만연해온 좌우익의 갈등이 공권력의 묵인 아래 집단학살로 비화됐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기간 미 공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북한 내 많은 도시들이 폐허로 변했다. 미 공군의 북한 폭격 양상을 연구한 김태우 교수에 따르면, 1950년 11월 북한 도시 파괴율은 만포진 95%, 삭주 75%, 신의주 60%, 강계 75%, 회령 90%에 달할 정도로 거의 모든 도시가 완전 파괴되었다. 북측 전역이 초토화되자 북한은 미군을 민간인 학살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국내외 선전전에 나섰다. 1951년에는 국제민주여성연맹의 조사위원들을 초청해 국제사회에 전쟁의 참상을 고발했는가 하면, 우익 청년들에 의해 주민 3만5000명이 희생된 황해도 신천군에 ‘신천박물관’을 만들어 반미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북측은 물론 남측 역시 전쟁을 ‘또 하나의 정치적 행동’으로 활용했다. 남한에서 민간인 학살 언급은 오랫동안 금기 사항이었다. 국가 공권력이 학살을 사실상 묵인·방조한 데다 학살자와 피학살자가 신분, 씨족, 마을 간 갈등과 얽히면서 민간인 학살 문제는 반세기가량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일부 학살에 책임이 있는 미국의 비협조도 걸림돌이었다. 1999년 해외 언론이 노근리 사건을 폭로하면서 민간인 학살 문제는 수면으로 떠올랐다. 거창사건, 제주 4·3사건 특별법이 제정되고 2005년에는 정부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만들어 학살 사건의 진상규명에 나섰다. 이후 진실화해위는 4년 동안 활동을 이어갔지만 진실규명, 피해자 배상과 명예회복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고 끝났다.

6·25 발발 73주년이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정전협정이 종전선언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남북은 피카소의 그림 속 군인들처럼 총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민간인 학살 진실규명, 학살자와 피학살자의 화해도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말 제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해 활동을 재개했다. 현재까지 약 300건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 새로 접수됐다. 한국전쟁이라는 과거사 정리는 민간인 학살 문제부터 풀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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