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이 공정하다는 착각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공정이라는 단어가 한국사회의 화두가 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만큼 세인들의 주목을 받은 시기도 없을 듯하다. 코로나19로 어떤 이들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고통을 감수하는데 다른 이들은 서민이 10년 걸려도 모으기 힘든 재산을 부동산투기로 1년 만에 축적하고, 어떤 이들은 사력을 다해도 얻지 못하는 특혜와 자리를 다른 이들은 부모찬스, 권력찬스로 쉽게 얻으니 참으로 불공정한 세상이다. A는 ‘공정과 상식’을, B는 ‘공정과 성장’을, C는 ‘공정과 경쟁’을 이야기한다. D는 법치를, E는 능력주의를, F는 필요원칙을 공정이라 한다. 가히 공정의 백화제방이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렇게 공정의 정의와 개념이 다양한 것을 두고 뭐라 할 바는 아니다. 다만 다른 시대 다른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 시대 우리사회에 독특한 공정론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획일이 공정이라는 주장이다. 코로나 피해로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도, 코로나 시기 청년들을 벼락거지로 만들어 버린 부동산 투기꾼도, ‘차별 없이’ 똑같이 대우해야 공정하다. 일자리를 뺏기고 실업상태에 빠진 사람에게도 10만원, 연봉상승률이 경제성장률을 초과한 대기업 임원에게도 10만원을 나눠 줘야 공정하다. 휠체어가 필요한 장애인에게도 20만원, 신체가 멀쩡한 비장애인에게도 20만원을 나눠 주는 게 공정이고 보편이다. 20만원으로 휠체어를 살 수 없는 장애인은 ‘실질적 자유’를 박탈당하는 데도 말이다.

내일 2021년 2차 추경안에 대한 발표가 이루어질 예정인데 여기에 소상공인 손실지원과 5차 재난지원금이 포함될 듯하다. 획일이 공정이라고 믿는 이들은 진작부터 재난지원금을 모두에게 똑같은 액수로 나누어 주라고 아우성이다. 코로나라는 재난으로부터 소상공인과 실업자만 피해를 본 게 아니라고 한다. 막대한 이득을 올린 부동산투기꾼과 대기업임원들도 피해자들이니 ‘차별하지 말고’ 똑같이 나눠 주어야 보편이고 공정이라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민들이 처한 피해상황이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재난으로부터의 피해에 대해 지원하는 돈을 획일적으로 똑같이 나누는 것은 공정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차등지급이 공정한 것이다. 보편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는 획일지급이 아니라 ‘필요가 발생하면’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혜택의 크기는 상황에 따라 차등적이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필요가 발생하지 않은 사람에게 한 푼도 지급하지 않더라도 이는 보편의 원리를 위배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충분한 액수의 보험금을 받기 위한 것이지 사고 유무와 관계없이 매달 일정액의 푼돈을 돌려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보편복지인 건강보험은 모든 국민을 가입자로 포괄하지만 모든 가입자에게 매달 동일한 액수의 의료비를 나누어 주는 게 아니라 아파서 병원에 간 사람에게, 병원을 이용한 만큼에 상응하는 보험료를 지급한다. 아프면 필요한 만큼 차등지원해 주지만 아프지 않으면 한 푼도 지원해 주지 않는다. 보편적 공공서비스인 소방서비스는 우리 국민 누구의 집에라도 불이 나면 소방관들을 대거 투입하지만, 불이 나지 않은 집에는 단 한 명의 소방관도 파견하지 않는다. 내가 보편급식에 찬성하는 이유는 내 아이가 언제든지 필요하면 친구들과 어울려 질 좋은 점심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지, 밥 한 숟갈과 멸치 한 마리가 전부인 저품질 도시락을 모든 아이들에게 획일적으로 나눠 주기 때문이 아니다.

기획재정부가 어떤 방식의 재난지원방안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차등지급을 하고자 한다면 작년 종합소득세 신고자료와 건강보험자료를 종합하여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조금씩 감액하는 방식을 취하면 된다.

이번 추경에서 획일적 재난지원금의 액수나 지급방식보다 정작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일자리 예산의 확대편성이다. 특히 한시적 일자리가 아니라 상시적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사업, 사업의 공익성과 사회적 영향력이 높은 사업, 전후방 연관효과가 높은 사업,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는 데 유용한 사업, 청년일자리 사업에 대한 예산은 이번 추경에 꼭 포함되거나 확대편성되어야 한다. 고용지원센터를 확대하고 활성화한다든지 산업안전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인력을 보충하는 사업, 보육 및 유아교육 시설에 대한 보건 및 영양인력 배치사업, 서민들의 금융을 도와주는 금융지원서비스사업 등이 그 예일 것이다. 일자리 예산이 늘어야 회복이 빨라지고 질 좋고 공정한 회복이 이루어진다. 일자리 예산에서도 획일적 예산편성은 공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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