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버스데이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e메일함 속 온라인 쇼핑몰에서 보낸 생일 축하 할인 쿠폰이 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생일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맞혔기 때문이지요. 태어난 지 삼개월이 다 되어 출생신고를 한 부모님 덕분에 주민등록상이 아닌 실제 생일을 알고 있는 분들은 가까운 이들밖에 없습니다. 이런 연유로 통상 가짜 생일에 축하 e메일을 받는 것에 익숙해진 터라 제대로 맞혀 놀란 것입니다. 상술이라 할지라도 제때 생일을 축하해주는 누군가 혹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됩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늦게 등록된 호적 덕분에 평생을 몇개월이라도 어리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해를 넘기지는 않았기에 별달리 손해를 보진 않았습니다. 다음해 1월생 친구는 학창 시절 오뉴월 하루 볕이 어디냐는 말과 함께 항상 동생이라 놀림을 받았습니다. 띠는 음력이라 같다고 주장하는 친구의 항변도 애써 무시하던 그때의 악동들도 이제 나이가 한참 들었습니다. 정년은 물론이거니와 별로 명예롭지도 않은 조기 퇴직이 출생일로 기준되는, 급변하는 산업의 혁명시대를 보내게 되자 어릴 적 놀렸던 친구들은 1월생을 부러워합니다.

그러고 보면 나이에 대한 우리네 집착과 복잡한 계산법은 외국의 사람들에게는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학령의 기준은 3월이었고, 띠는 음력에다가, 태어날 때부터 한 살로 시작하고, 설에 떡국과 함께 모두 한꺼번에 나이를 먹는다는 이야기까지 결합되면 정신이 없습니다. 주민등록번호라는 공개된 정보가 개인의 생일까지도 명시해서 발급되는 나라가 장유유서와 서열에 민감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백신의 신청 기준이 만 나이인지 생년으로 세는 나이인지 묻는 글까지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 혼란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몇년 전부터 카카오톡 친구 리스트에 있는 생일 알람을 보며 기프티콘을 전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며 여러분을 뵙다 보니 몇해가 지나도록 실제로 만나지 못하고 안부만 전하는 사이도 꽤 있습니다. 커피 같은 별것도 아닌 주전부리를 보내며 물리적 거리가 있어도 마음의 거리는 멀지 않은 분들에게 반가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일상이 바쁜데 따로 얼굴을 보자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언제 밥 한 끼 하자 말하며 전화를 끊는 것이 다반사인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공수표가 남발됩니다.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늘 한결같다는 이야기를 객쩍게 말하는 것도 부끄러운 한국 사람들에게 기프티콘은 정말 딱 맞는 발명품입니다.

최근엔 기프티콘이 매력의 바로미터로 쓰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주제를 펼치고 있는 전문가를 만나 차라도 대접하려는데 극구 본인이 사겠다 합니다. 생일에 받은 기프티콘이 100개도 넘게 있어 기간 내에 소진하여야 한다고 실토하는 그를 보며 사회 생활 속 압도적인 인기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팬들에게 선물을 받는 아이돌과 다름없습니다.

오늘도 기프티콘으로 한 분의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아메리카노와 케이크로 할까 텀블러가 들어 있는 세트로 보낼까 궁리하다 어차피 차액을 결제하면 아무것이나 살 수 있음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그분에게 어울릴 메뉴를 골랐습니다. 축하의 메시지를 쓰는 난이 나오자 “생일 축하합니다”와 “생신 축하드립니다”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중 제가 선택한 문구는 “해피 버스데이”였습니다.

부쩍부쩍 커가는 모습이 신기해 온 가족이 축하해주는 어린 시절 생일의 모습에 비하면 이미 자라버려 매해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 어른의 생일은 감동이 줄어듭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들으며 밝혀진 초를 끄던 어릴 적 생생한 마음을 다시 한번 느끼길 바라며 제가 고른 “해피 버스데이”가 그분의 동심을 깨워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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