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 의한 검열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요즘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어느 예능 작가가 모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 제안한 성인 예능을 거절했다며 한 말이다. 방송국도 아니고 OTT다. 심의에서도 자유롭고 제작사의 압력도 없다. 게다가 타깃이 성인층이니 지상파나 케이블의 예능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다. 제의받은 페이도 꽤 짭짤했다. 그런데 왜? 짐작할 수 있었다. 시청자, 또는 소비자의 압력이 너무 크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관에 의한 검열은 대부분 반기를 든다. 독재 정권 시절의 검열은 조롱의 대상이었다. 이를 회피해서 메시지를 숨겨놓는 경우도 있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이선희의 ‘한바탕 웃음으로’를 비롯해 적지 않은 인기곡들이 5·18에 대한 노래였다. 관에 의한 검열은 공연윤리위원회 폐지와 함께 1996년 사라지는 것 같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청소년유해매체물, 청소년유해약물, 청소년유해물건, 청소년유해업소 등의 심의 및 결정 등에 관한 사항’을 주요 업무로 내걸었다. 공연윤리위원회 못지않은 촌극이 벌어졌다. 동방신기의 ‘미로틱’이 성행위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유해곡 판정을 받았다. 그뿐인가. 가사에 ‘술’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유해 판정을 받는 노래들이 이어졌다. 심지어는 10㎝의 ‘그게 아니고’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감기약’이 다른 약물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유해 판정을 받기도 했다. 당시 나는 어느 방송국의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 해당 위원회의 심의위원들과 토론을 했었다. 거대한 벽이었다. 시청자 게시판에서도 그들의 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검열은 사라졌는가. 아니다. 모두가 모두를 검열하고 퇴출을 요구하는,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진화한 것처럼 느껴진다. 언젠가부터 정치 풍자 코미디가 사라졌다.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재미없는 혐오만 남았다. 과거에 정치 풍자가 금기시됐던 이유는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극단화된 정치 팬덤의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서 정치를 소재로 삼는 게 금기시됐다. 젠더 갈등이 표면화된 이후, 어느 한쪽의 비위도 거스르지 않는 콘텐츠가 제작진의 필수 덕목이 됐다. 섹슈얼 코드를 삽입하면 해당 연예인의 상대편 성별로 구성된 집단으로부터 퇴출 운동이 일어난다.

정치, 젠더 같은 큰 주제가 아니더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현실에 존재하는 일을 소재로 가져와도 불편하다는 이유로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SNS에 동조자를 구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만 봐도 불편으로 넘쳐나는 세상이 됐다. 관으로부터 받는 압력은 그 순간만 넘기면 그만이다. 동조자도 생긴다. ‘불편함’이란 꼬리표는 평생의 낙인이 된다. 소수의 강성 스피커가 끊임없이 자신의 강성 메시지를 전파하고, 동조자 집단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며 어뷰징에 목마른 언론들이 이를 ‘여론’으로 굳히는 흐름. 한국뿐만 아니라 SNS의 보편화 이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 풍경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의 문화적 역량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후퇴시킨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은 자신이 진정한 혁명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마오쩌둥조차 예상하지 못할 만큼 증폭되는 광기에 결국 그 자신이 또 다른 숙청으로 이를 저지했을 정도니까. 사회 전체에 거대한 판옵티콘을 세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저격하며 끌어내리는 지금과, 문화대혁명 당시의 중국과 본질적으로 다른 게 무엇인지 나는 떠올리지 못한다.

문화대혁명은 지금 중국에서 언급이 금기시되는 소재다. 흑역사라는 걸 뒤늦게 인지하게 돼서다. 모두에게 주어진 자유가 모두에 의한 검열이 되는 이 시대를, 후대는 어떻게 평가할까. 역시 나는 예상하지 못하겠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