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과 엘리트 체육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나는 <슬기로운 음악대백과>라는 유튜브 콘텐츠를 진행한다. 레드벨벳의 슬기와 MC를 맡아 음악인들을 심층 인터뷰하는 콘텐츠다. 얼마 전 이날치가 게스트로 나왔다. 이 밴드의 네 소리꾼은 중학교, 늦어도 고등학교 때 국악 엘리트 코스에 들어섰다. 보통 사람이면 장래 희망은커녕 가고 싶은 학과도 막연할 때 인생을 거는 선택을 했다. 옆에 있는 슬기 또한 10대 초중반부터 SM에서 연습생으로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근대 교육은 예술 엘리트를 만들어냈다. 어릴 때부터 명인의 레슨을 받고, 관련 학교에 진학한다. 유수의 클래식 콩쿠르에서 수상하는 청년들이 대부분 그런 코스를 밟았다. 현대 대중 예술에는 그런 ‘영재 코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에 관련 학과가 있다는 점은 같지만 10대에는 모두 취미의 영역에 머문다. 친구들끼리 밴드를 결성해서 동네에서 활동하는 전통적인 방법이 있었고, 지금은 유튜브에 자신의 연주 및 노래 영상을 올리며 SNS 스타를 기대한다. 20세기 초반 팝이 탄생한 이후, 큰 흐름에서 달라진 적이 없다. 예외가 있다면 가족 단위에서 이뤄진 훈육일 것이다. 마이클 잭슨, 재닛 잭슨을 배출한 잭슨 파이브가 대표적이다. 한국도 같았다. 다운타운에서 노래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발탁, 정식으로 데뷔하던 시대가 있었다. 조용필, 김현식 같은 가수들이 그렇게 스타가 됐다. 대중음악 산업은 스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지만 이 시스템 바깥 단계에서는 개인의 재능, 또는 가족 단위의 훈육이 성장의 연료였다.

1990년대 중반, 미국과 일본을 모방한 한국 아이돌 시스템이 등장했다. 기획사의 콘셉트와 트레이닝 시스템에 의해 스타를 만드는 이 시도는 H.O.T.를 탄생시켰고 한국의 10대 문화를 일거에 바꿔 놓았다. 한국 음악 시장이 아이돌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산업계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10대 초반의 아이들을 시스템의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려놓는 것. 이 시도의 첫 성공 사례는 보아였다. SM에 캐스팅된 보아는 10대 중반의 나이에 데뷔했다. 일본 진출에 성공, ‘아시아의 별’이 됐다. 이후 스타를 꿈꾸는 어린 아이들이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고, 더 빨리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어느 기획사에서나 중·고등학생 연습생들이 땀을 흘린다. 정식으로 계약을 맺으면 암암리에 학교 수업은 열외가 된다. 오직 데뷔를 위해 모든 걸 바친다. 한국의 체육 시스템과 같다. 체육 유망주가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히면 선수촌에 입소해서 하루 종일 체육 훈련을 받고, 프로 리그가 없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실업팀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스포츠 팀에서 체육 엘리트로 활동하는 것 말이다. 국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게 곧 국위선양이며 대중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이라 믿었던, 정책에서 나온 시스템이다. 이런 엘리트 체육 정책이 빠른 속도로 국제 대회 성과로 이어졌듯, 아이돌 시스템 또한 한국을 넘어 세계로 진출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를 시작으로 유럽, 그리고 이제는 대중음악 시장의 에베레스트인 미국에서도 정상에 올랐으니 말이다. ‘강남스타일’ 이후 단 10년도 걸리지 않은 파격적 속도다. 이는 산업적·문화적으로나 대단한 일이지만 그 성과의 이면에는 ‘성적’에 집중하는 무의식이 있다.

BTS가 파죽지세를 이어가는 지금, 빌보드에서 보지 못했던, 미국시장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엇이 있다. 팬덤의 스트리밍 또는 다운로드 ‘총공’이다. 팬들이 뭉쳐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수치를 올리는 이런 행동은, 당연히 한국에서 시작됐다. 다른 나라보다 빨리 시장이 스트리밍으로 전환됐다는 환경적 요인과 좋아하는 가수의 차트 성적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심리적 공감의 결과다. K팝 시스템이 태릉 선수촌의 그것을 닮았듯, K팝 스타를 소비하는 무의식 또한 엘리트 체육에 투사되는 국민 정서를 따라가고 있다. ‘K’의 연결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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