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은 온통 우상혁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2021년의 여름은 올림픽으로 남을 듯하다. 코로나19 시국에 더해 일본에서 개최된다는 묘한 불편함까지 겹치기는 했으나, 그리고 순위가 이전보다 높은 것도 아니었으나, 이전의 어느 올림픽보다도 더욱 특별했다. 진심이 되었던 저마다의 여러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여자배구의 4강 진출이라든가, 양궁을 하는 내내 들려온 파이팅 소리라든가. 나에게는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의 웃는 모습이 그랬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1983년생인 나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가 기억에 남는다. 외할아버지와 함께 안방에서 한국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했다. 레슬링이었든가 유도였든가, 한국 선수가 결승에서 지고 은메달을 획득해서 나는 “와아” 하고 박수를 쳤는데, 외할아버지는 “에이, 금메달을 따야지 은메달이 무슨 소용이야”라고 말했다. 그는 몹시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의 분위기가 대개 그랬다. 선수들은 곧 국가였고 그들의 패배는 국가의 패배를 의미했고 그래서 그들은 죄인이 되었다. 금메달이 유력했던 종목에서 은메달이나 동메달 혹은 순위권 바깥으로 밀려나고 나면 반드시 국민에게 속죄해야 했다. 그들은 언제나 “죄송합니다”라며 눈물짓거나 그럴 만한 인터뷰 기회도 얻지 못했다.

높이뛰기 결승에 진출한 우상혁 선수의 모습은 생소했다. 어떤 사명감이나 긴장감도 없다는 듯 싱긋 웃어 보였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독려해 나갔다. 성공하고 나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와아, 상혁아 잘했어!”라고 외쳤고, 실패하더라도 “상혁아, 괜찮아!”라고 외쳤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그들에게 먼저 해주었어야 할 말이다. 그러나 그는 기다리지 않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칭찬과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를 보던 나는 왠지 그를 닮은 표정으로 싱긋 웃다가,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다. 대체 어떠한 삶을 살아왔기에 저렇게 단단하게 한 개인으로서 서 있을 수 있을까. 그러한 진심은 주변의 사람들마저도 진심으로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를 넘어 우상혁이라는 개인을 응원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우상혁 선수는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가장 높은 곳에 태극기가 걸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대한민국 선수가 당당하게 시상대에 오르는, 그런 모습은 실로 가슴 벅차는 것이겠다. 우리가 이만큼 멋진 국가이고 국민이야, 하는 대리만족과 우월감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진심이었던 우상혁 선수의 그 모습이 우리가 금메달보다도 더욱 세계에 내보여야 할 모습이라고 나는 믿는다. 금메달을 위해 한 개인에게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게 하고 그 운동에서 국가와 국민만을 표상케 하는 일, 그렇게 해서 금메달 개수가 하나 늘어나는 게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꾸준히, 오래 해온 한 개인의 모습을 나는 모두에게 더욱 보여주고 싶다. 대한민국에는 자신의 일에 진심이면서 이처럼 국가의 기준이 아닌 스스로의 기준에 울고 웃는 멋진 사람들이 많다고, 이만큼 멋진 개인이 많은 국가라고 내보이고 싶다. 어느 이웃 국가는 국제대회에서 1위를 하지 못한 선수들을 역적 취급하기도 하고, 선수들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보다는 조롱을 일삼기도 했다. 오히려 이것이 가장 부끄러운 일이다.

올림픽 기간 내내 우상혁 선수를 비롯해 자신의 코트에서 진심이었던 여러 선수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어느 때보다도 그런 젊은 선수들이 많았다. 그 젊은 세대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조금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있음을 알았다. 3년 뒤, 스스로에게 진심인 다음 세대가 우리를 또 어느 곳으로 데려다줄 것인지 벌써부터 설렌다. 8월24일부터는 패럴림픽이 시작된다. 그들의 진심도 있는 그대로 전해질 것이다. ‘보치아’라는 경기를 꼭 챙겨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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