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음향’이라는 신기술을 마주하며

신예슬 음악평론가

처음 음반을 손에 쥐어본 건 유년기의 어느 날이었다. 노래와 음악을 좋아하는 엄마 덕에 집에는 축음기 한 대가 있었고, 엄마는 종종 LP로 음악을 틀어주곤 했다. 그러다 문득 어떻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져, 엄마의 지도편달 아래 축음기 커버를 열고, 납작한 LP판을 장착한 후, 조심히 바늘을 얹어보았다. 그러자 이문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건 새까맣고 반질거리는 원형 판일 뿐인데 여기서 소리가 들려오다니. 이문세 아저씨는 우리집에 없는데 그 사람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지금이야 이미 세상을 떠난 가수의 ‘신곡’도 들을 수 있는 시대지만, 처음으로 직접 음반을 재생해본 당시엔 많은 것이 놀라웠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신예슬 음악평론가

그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LP만 들었다면 그 이상의 놀라움은 없었겠지만, 다행히도 세상은 익숙해질 때쯤 어김없이 새 형태의 음반을 내놓았다. 테이프, CD와 MP3 플레이어,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형태와 청취 방법은 모두 달랐지만, 목표는 대체로 유사했다. 현실에서 들려온 소리를 손실 없이 기록하고,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재생하는 것. 거기엔 언제나 ‘더 좋은 재현’에 대한 소망이 배어 있었다. 음반은 분명 무언가를 되살리는 매체였다.

하지만 그 확신은 점차 흐려졌다. 어떤 음반들에서는 결코 현실에서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비틀스의 한 앨범에서는 닭 울음소리가 기타 소리로 바뀌고,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한 앨범에서는 여러 차례 녹음한 테이크가 단 한번에 이루어진 연주인 것처럼 편집되어 있다. 기계음과 사람 목소리가 합성되어 이것이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분간되지 않는 것이 들려오기도 한다. 일찍이 니콜라스 쿡은 레코딩이 “사실주의적이라기보다는 초현실적인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몇몇 사례만 보아도 음반을 기록물의 재현에 국한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했다. 그런 결론에 이르자 여러 질문이 이어졌다. 더 좋은 기록, 더 좋은 재생이라는 가치를 딛고 음반은 앞으로 또 어떤 것을 추구하게 될까. 음반문화를 이끄는 새로운 지향점, 혹은 가치는 무엇이 될까.

단번에 해소될 궁금증은 아니겠지만, 최근 의외의 영역에서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찾은 듯하다. 최근 애플뮤직은 ‘공간 음향’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른바 “사운드가 모든 방향과 위쪽에서 들릴 수 있도록 해주는 혁신적인 몰입형 오디오 환경”이다. 십여년 전부터 3D 오디오, 이머시브 오디오 등 각자의 이름으로 시도되어온 이런 기술을 실제로 들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손실 오디오 음원과 섬세한 마스터링·믹싱이 만들어낸 이 청취 경험은 다른 것들과 정말 달랐다. 혹자는 이 기술을 통해 ‘라이브 공연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극찬하기도 했지만 나는 이것이 꼭 실제로 공연된 음악을 잘 재현하기만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보다, 이건 마치 소리들로 이루어진 가상세계에서 노래와 말소리, 악기소리, 여러 효과음을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음악을 이루는 소리들의 위치를 가늠하고, 소리와 나 사이의 거리를 상상으로나마 매핑해볼 수도 있었다. 음악 안에서 소리의 위치를 찾아가는 감각은 너무도 새로워서 어쩌면 음반문화 중심에 놓일 새 가치 중 하나가 음악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경험하는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청취를 통해 가상세계에 진입하는 것처럼, 꽤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

음반의 역사는 소리를 기록하고 되살리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시작됐고, 이런 바람은 오랫동안 음반문화를 이끌어왔다. 그리고 최근에 등장한 ‘공간 음향’ 같은 기술은 음악을 더욱 공간적으로 체험하고, 소리만으로 이뤄진 공간에 진입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음반 기술이 추구해온 목표와 우리가 음악에 기대하는 것은 함께 관계를 맺으며 변화해왔다. 이런 경험으로부터 또 어떤 새로운 소리와 감각, 음악이 파생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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