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행사 꼭 필요한가요

이융희 문화연구자

1979년 출간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SF소설의 주제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작품은 주인공 아서 덴트가 1인 시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건설회사 사람들이 우회로 건설을 위해 아서 덴트의 집을 철거하고자 방문했고 아서 덴트는 그에 불응하며 건설차량 앞에 드러눕는다. 우스꽝스러운 대치가 이루어지는 그때, 갑작스럽게 친구인 포드 프리펙트가 나타난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이융희 문화연구자

포드는 자신이 베텔게우스 근처 작은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며, 지구가 곧 은하계 지역 발전계획에 의거하여 4차원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철거되어야 함을 알린다. 아서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곧 전 세계에 울려퍼지는 외계인의 방송이 나오고, 지구가 폭파된다. 소설은 주인공이 우주선에 히치하이킹을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처럼 과학기술과 그를 통한 상상력은 지금 우리의 삶에서 익숙하게 여겼던 수많은 구조와 사건을 다른 공간, 다른 시각에서 낯설게 전개하고 그를 통해 은폐되어 있던 문제를 끄집어낸다. 이런 기능과 상상력의 극단에 존재하는 것이 최근 떠들썩한 메타버스(Metaverse)다. 메타버스는 단순히 가상세계에서 아바타를 통한 놀이나 게임 또는 인터넷 특강을 보는 것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메타(Meta)라는 단어의 의미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무엇인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며 우리가 익숙하게 여겼던 삶의 현상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끔 하는 것이다.

최근 메타버스와 관련된 좋은 사례 하나가 있다. 지난 6일 과기정통부에서 열린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 행사이다. 그날 행사는 메타버스 플랫폼 ‘개더타운(Gather Town)’에서 진행되었는데, 해당 행사에 수많은 난항이 있었다고 한다. 발표를 못 들은 사람이 속출했고, 참가자들의 컵라면 먹방 등이 송출되기도 했다. 회장 내에 사물 빌드를 하는 사람들부터 스도쿠 게임을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하니 행사가 얼마나 산만했는지는 짐작할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가득한 보도자료는 메타버스를 이용해 여러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것에 대한 긍정적 자평으로 가득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댓글에는 개더타운은 고사하고 메타버스를 위한 기초적인 이해조차 없는 상태에서 억지로 행사를 개최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평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디지털 리터러시의 문제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과연 이러한 ‘행사’ 자체가 얼마나 의미를 가지는지 되묻는 것이다. 과연 개더타운 안에서 산만했던 사람들이 아날로그의 행사장에서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행사에 집중하고 있었을까? 우리는 수많은 행사에서 휴대폰을 보고, 딴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목격하지 않는가. 개더타운은 죄가 없다. 단지 메타버스가 그러하듯 행사 주최자들이 한 걸음 물러나 행사 자체를 메타적으로 바라보게 해준 것이며, 요식행위들이 가지고 있던 허례허식을 디지털 공간에서 재현해 목격시켜준 것뿐이다.

최근 수많은 행사들이 이러한 ‘메타버스’ 열풍에 한 발 얹으려고 수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된다는데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근원으로 돌아가 질문하기 좋은 듯하다. 그 행사가 꼭 필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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