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는 나만의 것

이범준 사회에디터

변호사들이 법관들에게 점수를 매기는 법관평가가 10년 전쯤 시작됐다. 법관을 평가한다며 뿌듯해하는 변호사도 있었다. 하지만 평가라고 부르기에는 신뢰성에 문제가 있었다. 너무 적은 변호사가, 충분치 않은 경험에 기반해 점수를 줬다. 첫해인 2009년 서울변호사회 변호사 6272명 중 491명이 참여했다. 이들이 법관 연인원 1039명, 1인 평균 2.11명을 평가했다. 호평이든 악평이든 5건 이상 받은 법관은 47명에 불과했다. 변호사회는 법관평가를 대법원에 제출하고 인사에 반영하라고 했다. 상황은 여전해, 지난해 서울변호사회 법관평가 참가자는 회원의 7~8%이다.

이범준 사회에디터

이범준 사회에디터

법관평가가 시민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법관이 사건을 고르지 못하듯 시민도 법관을 고를 수 없기 때문이다. 게으른 판사도, 불친절한 판사도 거부하지 못한다. 무작위는 공정한 사법의 중요한 기반이다. 변호사회는 자신들의 평가를 법관 인사에 반영하라는데, 사법독립을 위협하는 시도일 수 있다. 신분이 보장되는 법관에게 인사불이익을 준다면 소액사건 담당이나 시골로 보내라는 정도일 테다. 하지만 소송액이 적은 사건에 인생이 걸린 경우가 많고, 시골에서 소송까지 갈 때는 인간관계를 건다. 오히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변호사가 없다는 점이다.

변호사들이 법관의 무엇을 평가할까. 결국 친절함이다. 그 외에는 달리 평가할 기준이나 근거가 적다. 결론에 당사자만큼 신경 쓰지 않는다. 승소도 하고, 패소도 하는 게 변호사다. 내가 이기면 네가 지고, 오늘 지면 내일은 이긴다. 그렇지만 법관이 친절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는다. 상대가 전관 변호사이고 그쪽에만 친절하기라도 하면 영업에 지장이 생긴다. 그런데 이 친절함이 당사자에게는 보이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평생에 한 번 하는 재판에서 불친절한 판사를 만나도, 원래 그런가 생각할 뿐이다. 재판에서 당사자들은 결론만 중요하다. 이기면 당연한 결론이고, 지면 부정한 재판이다.

사건 당사자는 법관보다 변호사가 중요하다. 변호사가 실력이 있어야 제대로 주장하고 그래야 억울하게 지지 않는다. 내 사건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설명해줄 사람도 변호사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변호사에 관해 별다른 정보가 없다. 변호사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수임료를 낸다. 변호사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판사다. 법관 한 사람이 1년에 600건 정도 처리하며, 민사사건에서는 변호사가 양측에 있다. 어떤 변호사가 기록을 꼼꼼히 읽고 오는지, 사건을 새롭게 구성해 승기를 잡는지 안다. 법관이 변호사를 평가해 그 자료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이도 있다. 변호사시장 개입이라 실현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변호사시장은 정보 비대칭 상황이다. 정보 비대칭 시장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가 조지 애컬로프다. 1970년 ‘레몬마켓’이란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품질이 일정하지 않은 중고차시장을 연구했다. 자동차 품질이 양품과 불량품 절반씩인 상황을 가정한다. 중고차 상태를 판매자는 정확히 알지만, 구매자는 이용해보지 않는 이상 모른다. 양품인지, 불량품인지 판단할 수 없는 소비자는 중간 가격을 제시한다. 손해를 봐야 하는 양품 판매자는 시장에서 사라지고 횡재를 하는 불량품 판매자만 남는다.

변호사시장과 중고차시장은 다르다. 하지만 시장이 기능하지 못하면 오염된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변호사 업무는 서비스이고 상품이다. 공소를 제기하는 검찰청 이름조차 영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기소 서비스(Prosecution Service)이다. 최근 시민과 변호사에게 인기라는 법률 플랫폼의 본질은 서비스 정보가 유통되는 시장이다. 한 달 순방문자가 100만명이고, 상담 건수는 2만2000건 정도다. 변호사 단체들이 이 플랫폼을 공격하며 운영을 중단시키려 하고 있다. 수사기관도 감독기관도 문제가 없다는데도, 생소한 논리로 기술과 법률을 부정하고 있다.

변호사단체가 플랫폼을 문제 삼는 이유는 이렇다. “변호사에 대한 평점, 리뷰 등은 변호사의 지위를 격하시키고 변호사를 해당 매체에 종속시킬 수밖에 없음. 또한 소위 악성 소비자들로부터 큰 피해를 받을 수 있음. 이에 평점과 리뷰 등의 기능은 있어서는 안 됨.” 이런 변호사단체가 법관평가를 독려하는 문구는 이렇다. “더 많은 회원들이 법관평가에 참여하여 제도의 실효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법관평가표 제출 1건당 1시간의 공익활동을 하신 것으로 인정해 드리고 있으며 1건당 200점씩 최대 5000점의 회원포인트를 지급해 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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