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의 실패학

오관철 경제에디터
오관철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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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 4주년 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부동산정책의 성과는 ‘부동산 가격의 안정’이다. 이 잣대로 보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실패다. 바닥에 떨어진 신뢰 등을 감안하면 남은 임기 안에 집값이 잡힐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음 정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심정은 편치 않다. 여야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 본격 논쟁이 시작되겠지만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되돌아보고 반면교사로 삼지 않는 한 누가 집권하더라도 시장 안정을 장담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이 실패한 주요 원인은 보유세 강화를 걷어찼기 때문이다.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보유세 강화에 첫발을 뗀 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한 참여정부였다. 하지만 종부세는 이명박 정부 때 강만수 전 경제부총리로부터 ‘질투의 산물’이란 비난을 들으며 종이호랑이가 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부동산정책은 “빚내서 집 사라”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초이노믹스’가 떠오를 뿐이다. 당연히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무력화된 보유세가 과연 정상화될 것인지 여부가 주요 의제로 부상했다. 집권 초부터 부동산시장은 불안조짐이 나타나던 차였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에서 보유세 강화 목소리는 예상외로 약했고, 결국 ‘문재인 정부도 별수 없다’란 신호가 시장에 전달됐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시장이 요동치면 부랴부랴 급조한 대책이 나오다 보니 부동산 세제는 누더기가 됐다. 종부세 최고세율을 2.0%에서 점차 올려 현재 최고세율이 6%에 달하지만 핀셋 증세, 시장 조절을 위한 일회용 대책에 그쳤다. 양도세 세제는 ‘양포세’(양도세 상담을 포기한 세무사)라는 말이 나오게 할 정도로 복잡해졌다. 보유세 강화 없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시행해 ‘똘똘한 한 채’로 투기 수요가 집중되는 결과도 낳았다. 지난 4월 재·보선에서 참패한 여당이 최근 종부세 과세기준선을 공시가격 9억원에서 11억원으로 완화한 것은 보유세 강화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선 주자들이 부동산 공약 중 가장 신경을 쓰는 분야는 공급으로 보인다. 일부 야권 주자들 사이에서는 종부세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거나 양도세와 보유세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보유세 강화는 부동산 공화국의 해체를 위해 보수도 외면해선 안 되는 과제다. 종부세를 폐지하고 재산세 체계로 통합하든, 국토보유세 같은 다른 형태의 보유세를 도입하든 다양한 논의가 앞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난달 이재명 경기지사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 원인으로 ‘관료들의 저항’을 언급한 것은 가벼이 흘려 넘길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초기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종부세 최고세율 인상, 공제 축소를 주문했지만 기획재정부가 반대한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관료들은 전통적으로 재정건전성과 낮은 세율에 집착한다. 보유세 강화와 관련된 관료들의 저항은 노무현 정부 때도 있었다. 건설 경기 침체를 이유로 종부세 도입 연기를 주장한 것은 당시 재정경제부였다. 부동산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는 근시안적 부양책에 집착해선 부동산 거품을 뺄 수 없다. 관료집단과 정치권에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경제 문제 전부를 챙길 수 없지만 한국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있어야 해결될 수 있는 대표적 분야가 부동산이다.

결과론적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시장과의 소통에도 문재인 정부는 실패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지방으로 부임하는 수령에게 “오늘에 들떠서 날뛰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곳곳에서 비정상이 바로잡히고 개혁이 이뤄질 것처럼 떠드는 소리가 들리기 마련이다. 돌아보면 “불로소득을 척결하겠다” “투기와의 전쟁” 등 책임지지 못할 말은 신중했어야 한다. 절제된 용어로 시장과 소통하되, 우직하게 원칙대로 밀고 나가는 정부를 경제주체들은 더 신뢰한다. 과도한 차입에 의한 부동산 투기도 경제적 행위일 뿐이다. 이를 제도적으로 제어해야 할 책임이 바로 정부에 있는 것이다.

최근 어지러울 정도로 쏟아지는 공급확대 방안도 따지고 보면 소통 실패의 산물이다. 솔직히 어떤 정부가 공급대책 없이 수요억제책만으로 부동산정책을 펴겠는가. 그럼에도 이 정부는 공급에 무신경한 정부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보유세 강화를 일관되게 시행하고 적절한 공급대책과 균형을 맞추는 것, 그리고 시장을 존중하되 아부하지 않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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