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시인
[詩想과 세상]가을비

저 일몰 끝, 씻으면서 씻기는 것이 있다

쌍무지개 띄워 놓고

반지르르한데 까끌까끌한 몸을 가진 것이 있다면

하동 긴 골짜기

금모래 먹고 자란 재첩 채는 소리, 아닌가

손바닥을 개켜 문대니까 두껍고

손등으로 냅다 쓸어 문대니까 얇다

물큰 가을비 냄새, 와글와글하였다

북쪽 상류에 있는 아버지 무덤까지

잘도 가닿는다 그러나 안온하게

일렁이는 물비늘 미간에 잔뜩 붙여 놓은 어머니

오므라진 손으로 눈가를 닦고 저녁을 내다본다 이병일(1981~)
섬진강을 옆에 끼고 걸은 적이 있다. 강가의 나무들이 색을 갈아입던 어느 가을, 평사리에서 화개장터까지 걸었다. 하얀 모래톱과 벚나무 사이로 난 길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랐다. 걷다 힘들면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잔물결 이는 강물을 오래 바라보았다. 흐르는 강물에 세속의 찌든 때를 다 흘려보냈다. 맑아진 마음을 일으켜 근처 식당으로 재첩국을 먹으러 갔다. 재첩의 몸이 “반지르르한데 까끌까끌한” 줄, “개켜 문대”면 두껍고 “쓸어 문대”면 얇은 줄 미처 몰랐다.

한바탕 가을비 쏟아진 뒤 쌍무지개 뜬 “일몰 끝”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정희성 시인이 노래한 저문 강에 삽을 씻듯, 어머니는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손을 닦으며 재첩을 씻는다. 집에서 어머니를 애타게 기다리는 배고픈 자식들 먹일 저녁거리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몸으로 어린 자식들을 키우는 고단함이 묻어난다. “오므라진 손으로 눈가를 닦”는 건 혼자 강가에 앉아 있을 때만이다. 자식들 앞에서 울 순 없지 않은가. 참 밉고도 그리운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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