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의 잘못된 두 가지 전제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기본소득의 핵심 아이디어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현금을 지급한다는 것이지만 ‘모든 사람’의 범주나 ‘현금’의 수준에 대해서는 다양한 각론이 경합한다. 기본소득의 모양만큼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바람이나 주장의 근거도 하나는 아니다. 모든 제도는 실제 구성되고 실행되는 과정과 공간 속에서 역동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최근 기본소득이 기대고 있는 두 가지 전제는 우려스럽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먼저 부자들도 기본소득을 통해 급여를 받을 때 납세의 유인이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사회보장의 기존 합의를 후퇴시킨다. 우리가 세금으로 실현하는 것은 단지 소득 보충이 아니라 공동의 가치를 달성하거나 위험에 대처하는 모든 것이다. 빈곤층에게 소득을 보장하는 것 또한 실업과 빈곤이라는 현대 사회 고유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함이지 복지수급자가 세금을 독점하는 일이 아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에 대해 ‘중산층과 부자는 죄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금은 벌금이 아니다. 현금 급여를 받지 않는다고 하여 고소득자가 사회로부터 돌려받는 게 없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수도와 도로, 치안은 거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높은 소득조차 함께 일군 사회에 기댄 결과가 아닌가.

두 번째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경고다. 기술 변화에 따라 일자리의 종류가 달라질 수 있지만 일자리 전체가 완전히 줄어든다는 결론은 성급하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사라지는 일자리들이 대개 좋은 일자리, 새롭게 제안되는 일자리는 나쁜 일자리라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나쁜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확대할까, 나쁜 일자리를 참을 만하게 만드는 ‘저임금의 보충수단’으로 전락할까?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따지지 않는다면 기본소득은 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전제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은 ‘따져 물을 힘’을 해체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 이유는 단연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만연하게 발생시킨 시장의 실패와 빈곤이라는 최종적 위기 국면에도 전혀 작동하지 않은 사회보장제도의 실패다. 이 두 가지 실패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중대한 과제지만, 잘못된 전제에 기댄 기본소득은 그 대안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소득 보충은 다양한 사회보장제도의 한 축에 불과하다. ‘동일한 현금’을 넘어 포용적인 소득 보장과 무상 혹은 누구나 지불 가능한 수준의 주거, 의료, 교육, 교통, 돌봄을 비롯한 튼튼한 사회서비스 그리고 모든 이들의 노동권과 생태적 삶을 향한 길을 위한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 빈곤층을 돕는 것이 아니라 빈곤이라는 덫을 해체하는 것, 단지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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