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코로나 시대를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펠로

9월 말,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왔다. 올해 연구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지체됐다가 가을 학기를 맞이해 출국하게 됐다. 뒤늦은 미국행은 사회학을 공부하는 내게 코로나 시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출국하기 직전 코로나 검사를 받아 음성인 결과를 제출했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후 곧바로 학교에 갈 수 없었다. 대학은 5일간의 출입 금지와 코로나 검사를 요청했다. 가을 학기부터 전면적 대면 강의를 시작했기에 캠퍼스 내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펠로

김호기 연세대 교수·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펠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 벌써 2년이 다가온다. 지난해 초 코로나 시대가 시작됐을 때, 나는 이 시대의 성격을 세 개의 키워드, ‘이중적 뉴노멀’, ‘글로벌 위험사회’, ‘국면사’로 규정한 바 있다. 이중적 뉴노멀이 ‘경제적 뉴노멀’에 ‘의학적 뉴노멀’이 결합된 것을 뜻한다면,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주조한 글로벌 위험사회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테러리즘, 금융위기, 기후위기와 함께 민족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은 지구화된 위험의 또 하나의 사례임을 함의한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이 개념화한 국면사도 코로나 시대의 특징을 적절히 설명한다. 국면사로서의 코로나19 팬데믹은 개별 사건들을 아우르는 ‘바이러스 폭풍 시대’다. 이 팬데믹의 국면사에서 백신 개발은 첫 번째 분수령이었다. 설령 코로나에 감염됐더라도 백신 접종은 중증으로의 전화를 막아 상당한 안전을 제공했다. 그런데 어느 나라든 접종률이 높아졌는데도 확진자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팬데믹이 강제한 일상생활에의 압박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디 대면적 존재다.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언택트의 시간이 늘어났더라도 비대면이 대면을 모두 대체할 순 없다. ‘위드 코로나’를 거쳐 ‘포스트 코로나’로 가더라도 이 바이러스 폭풍은 긴 꼬리를 남길 것으로 봐야 한다.

우리 인류는 움직이는 역사 안에서 그 움직임 전체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파도라는 사건들을 넘어선 해일이라는 국면의 역사로서의 코로나19 팬데믹은 2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 왔다. 어느 나라든 대내적으론 플랫폼 비즈니스의 경이로운 약진을, 대외적으론 글로벌 거버넌스의 사실상의 붕괴를 목도하고 체험해 왔다. 정보사회의 만개가 진행되는 가운데 민족국가의 장벽이 높아져 온 것은 이 팬데믹이 낳고 있는 국면사의 낯선 풍경이다.

이 가운데 사회학을 공부하는 내게 유독 눈에 띈 것은 불안의 정체성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건드린 것은 인류의 심층 안에 놓인 안전과 생명에 대한 즉각적 불안의 감각이다. 21세기 우리 시대 불안의 기원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경제에서 비롯됐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경쟁력을 극대화하더라도 언제든 몰락할 수 있다는 퇴출의 공포가 경제적 불안을 구조화시켰다. 이 ‘경제적 퇴출의 공포’가 계층과 지위의 하락을 의미하는 ‘사회적 퇴출의 공포’로 전이되고, 이 사회적 퇴출의 공포가 타인에의 관용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자신이 속한 집단에의 충성을 강화시키는 ‘혐오와 적대의 부족주의’를 중핵으로 삼는 사회적 불안을 부추겼다. 안전과 생명에 대한 불안인 ‘코로나 공포’가 우리 시대 경제적·사회적 불안을 공고히 해 온 셈이다.

비관적 전망만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백신 접종과 함께 코로나 공포는 서서히 완화되고 있다. 여기 캘리포니아에서도 더디지만 일상으로의 단계적 회복이 진행되고 있다. 적잖은 이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활동하며, 식당들은 상당한 활기가 돌고, 대학 캠퍼스는 특유의 유쾌함이 넘쳐흐른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확진자 증가라는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한 채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갈 것인가, 일상회복에 앞서 거리 두기 등 강력한 방역정책을 계속 고수할 것인가에 있다. 단계적 일상회복과 강력한 방역정책 사이에서 우리 사회도 위드 코로나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언젠가 포스트 코로나로 가더라도 우리 인류가 코로나 시대 이전으로 그대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나와 같은 사회학 연구자들에게 부여된 과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삶과 사회의 새로운 조직화에 대한 거시적 방향과 전략의 탐구일 것이다. 경제적·사회적 퇴출의 공포에서 벗어날 정책 개발에 주력하고, 혐오와 적대의 부족주의를 넘어선 포용과 통합의 민주주의 문화 구축을 모색해야 한다. 낯선 타국에서 코로나 시대를 지켜보는 한 사회학자의 생각을 여기에 적어둔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