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과 금융자본주의

다들 <오징어게임>이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난리다. 세계인들은 자본시장의 노예로 전락한 자신들을 표출한 것에 열광한다. K드라마로 한국문화는 상종가를 쳤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이 사회에서 출현했다는 것은 비극이다. 자본의 축적이 단기간에 이루어지고, 미국을 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진격방식인 “돈 놓고 돈 먹기”식 카지노자본주의의 횡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유포되는 것 또한 거대자본의 힘이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게임의 말에 불과한 인간의 목숨 값으로 천장에 매달린 통에 쏟아지는 돈은 과연 악마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1900년에 게오르크 지멜은 <돈의 철학>(김덕영 옮김)에서 “돈은 가장 추상적인 것의 구체화다. 돈은 근본적으로 초개별적인 것에서 의미를 갖는 개별적 구성물이다. 그러므로 돈은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적절한 표현이다”라고 돈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돈에 대한 신뢰는 전 인류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 그러니 종이와 쇳덩어리에 불과한 돈을 죄의 근원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좌든 우든 돈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쏟은 인류야말로 물신의 통일 왕국을 지구상에 최초로 건설했다.

문제는 왕국의 통치이념인 돈이 가장 비생산적인 금융자본의 무기라는 점이다. 산업과 상업자본에 비해 금융자본은 이자놀이에 기반한 기생계급이다. IMF체제에서 겪었던 것처럼 단기적 이익만 취하고 빠지는 바람에 수많은 실업자가 일상에서 추방당해 겪은 트라우마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포획당하지 않기 위해 개인이든 국가든 돈을 끌어 모은다. 게임의 참여자들은 자본의 먹잇감으로 신체포기 각서를 쓴 벼랑 끝 인간이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가 <부채인간>에서 말하듯 자본시장에서 인간은 부채를 감당하는 자일수록 부자가 된다. 이미 인류는 지구 자원의 한계를 넘어선 무한대의 화폐를 찍어냄으로써 지구에 대한 빚쟁이이자 약탈자가 되었다. 화폐 속으로 인간의 감정과 유대, 그리고 존재의 의미마저 종속시키고 있다. 삶의 다양성은 화폐의 동일성으로 용해되어 단순명료해진다.

사실 돈은 환상일 수도 있다. 어릴 때 종이돈을 가지고 놀이했던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화폐 숫자의 가치는 끊임없이 변한다. 가치를 상실하는 순간 불쏘시개로 전락하기도 한다. 발달심리학에서 말하듯 인간 욕망의 변주에 불과하다. 어릴 때는 인형에, 커서는 돈에, 늙어서는 명예에 집착하는 투사된 욕망의 단위에 불과하다. 욕망의 상징으로 신격화된 돈은 모든 갈증을 다 해소해 줄 것 같은 권능이 부여된다.

드라마 속에서 게임 판을 짠 노인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공통점을 “삶에 재미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속임수다. 부자는 돈을 소유했지만 그 권능으로 존재의 신성함에는 영원히 다가갈 수 없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소유와 존재는 등가의 위치에 있지 않다. 소유에 집착함으로써 실존의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돈으로 지구를 소유한 뒤에 욕망은 달과 화성으로 향할 것이다. <오징어게임>은 극한의 스릴을 통해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을 배출한다. 그가 말하듯이 보는 것보다 참여하는 것을 어릴 때의 놀이에서 찾은 것은 욕망의 헛됨을 증명하는 것이다.

게임은 고의 연쇄를 불러일으키는 집착과 정복의 심리를 이용한 교묘한 장치다. 현실에서는 돈의 패권자가 설정한 게임에 욕망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종속된다. 주식, 보험, 채권 등 숱한 금융상품들도 게임에 베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 따게 되면 누군가는 잃게 된다. 화천대유가 그렇듯 ‘쩐주’인 금융은 판돈을 빌려주거나 판을 깔아 이득을 취한다. 그리고 비가시적인 권력의 좌에서 금융자본은 부채인간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며 공포를 내면화시킨다. 절망의 벽 속에 갇힌 현대판 노예의 탄생이다.

게임 판을 뒤엎고 저항해야 한다. 사자가 먹이가 아닌 먹이를 주는 주인을 노리듯 돈의 뒤에 숨은 금융자본에 맞서 싸워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한 바처럼, 돈은 최고선에 도달하는 수단이지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은 문명의 진화과정에서 삶의 편리함을 위해 고안된 기호에 불과하다. 결코 정복될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생활의 도구인 돈을 다루는 방법을 교육에 도입해야 한다. 객체가 주체를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주인이 노예가 될 수는 없다. 물신(物神)은 허약한 우리의 심성이 만든 환상일 뿐이다.


Today`s HOT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